6월 말 당시 베트남의 코로나19 하루 확진자는 1000명에 육박하며 4차 대유행 초입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그로부터 두 달 뒤 베트남 하루 확진자는 1만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만).
코로나19가 '우한폐렴'으로 불렸던 지난해 초 베트남은 중국과의 국경을 틀어막으며 한때는 한 달 넘게 (공식적으로)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던 글로벌 방역 모범국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둑 잡는 경찰 없다'는 옛말처럼 한 번 방역망이 뚫리자 진압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베트남은 백신이 턱없이 모자라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반강제로 백신 성금을 걷어 구설에 오른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팜민찐 총리는 당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백신을 당장 가져오든지, 성금을 내든지 둘 중 하나를 빨리 해라"고 압박해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백신을 구할 수만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때라는 얘기입니다.
바이오 기업 나노젠의 베트남 본사/사진=스틱인베스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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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날 총리가 간 나노젠이란 곳이 백신을 만드는 기업이었습니다. 나노젠은 베트남 토종 회사인데, 지난해 3월부터 코로나19 백신 '나노코박스(Nanocovax)' 개발에 돌입한 상황이었습니다.
지난해 9월 초기 개발을 마치고 임상 1·2상을 빠르게 돌파한 뒤 3상에 들어간 상황이었죠. 코로나19가 국가를 위협하는 '주적'인 상황에서 베트남을 대표하는 총리가 백신 개발 업체를 직접 방문했다는 것은 두 가지를 시사합니다.
베트남은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베트남 총리가 일선 백신 생산 업체를 둘러본 것은 나노젠이 생산하는 나노코박스 상용화가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 이 백신을 밀어주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트남 정부가 백신 성금 걷기에 매달리고 국제사회에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면서 지금은 6월 당시보다 백신 수급 상황은 조금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물백신' 논란이 있는 중국 시노팜을 수입해 자국민들에게 무료로 놔주겠다고 홍보하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훨씬 엄중했던 6월은 그야말로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팜민찐 총리는 직접 공장 방문에 나서면서 나노코박스가 상용화될때까지 정부가 최대한의 패스트트랙을 동원해 지원해주겠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한 것이었습니다.
실제 당시 호난 나노젠 회장은 "9월까지 생산량을 월 3000만~5000만회분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하면서 다만 "관련 행정 절차를 단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지난해 3월 개발한 백신을 2년여 만에 바로 상용화하는 것은 꽤나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일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기술 수준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베트남 국력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 주무부처인 베트남 보건부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자세를 유지해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정을 책임지는 총리 입장에서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베트남은 출근증이 없으면 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통제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 베트남 주재원은 "세기말 멸망해버린 지구를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거리에 있는 식당과 카페는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를 점령하던 오토바이 부대는 실종됐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재택근무로 일을 보며 아내를 졸라 세끼 식사를 얻어 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까지 얘기만 보면 나와 무관한 베트남의 사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베트남 백신 개발과 한국의 비즈니스는 꽤나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나노젠 지분 약 10%를 한국 기업 넥스트사이언스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회사는 재무제표만 보면 지난 3년간 순이익 기준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올 초 주당 7000원 안팎에 거래되던 주가는 지난 13일 한때 장중 3만5450원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지금은 조정을 많이 받은 상황입니다).
베트남의 코로나19 확산과 백신 개발 사투를 돈의 시나리오로 엮어서 미리 투자한 분은 쏠쏠한 재미를 봤을 것입니다.
또 최근 나노젠은 나노코박스의 글로벌 판매권을 한국 기업 에이치엘비에 넘겨주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이 소식이 주가에 반영된 지난 18일 에이치엘비 주가는 전일 대비 15%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양사는 각각 3명의 대표 과학자를 선임해 3개월 내에 나노코박스 관련 자료를 검토한 후 기술이전 협의를 마칠 예정입니다. 본계약이 체결된다면 나노젠은 인도와 베트남 등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서 판매를 담당하고 그 외 국가는 에이치엘비가 판매와 생산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벤트가 내 주머니 사정과 직결되는 상황이 속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베트남은 한국의 삼성, SK, 롯데, 한화 등 대기업이 미리부터 진출해 한국 자본의 파워가 강한 나라입니다. 항상 베트남에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노이 드리머(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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