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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어제(8월 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허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형이 확정된 이재용 부회장은 형기의 약 62%를 복역한 상태였다.
박범계 장관은 어제 오후 6시 40분쯤 정부 과천청사 법무부 건물에서 진행된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가석방은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 고려 차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대상에 포함됐다."라며 "사회의 감정, 수용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을 종합 고려해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가석방 허가 이유를 설명했다.
사전 준비한 답변 두 가지만 발표하고 브리핑 끝
박범계 장관은 사전에 작성한 발표문만 낭독한 후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뒤를 이어서 박현주 법무부 대변인이 브리핑 이전에 기자들이 물었던 질문 중 대표적인 것 두 가지에 대해서만 간단히 설명하겠다면서 단상 위에 올랐다.
박현주 대변인은 먼저 "과거에 다른 사건으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에 가석방된 사례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박현주 대변인은 "2020년에 추가 사건 진행 중에 가석방된 인원은 67명이었다."라고 답했다. 이재용 부회장 같이 다른 사건으로 수사 중이거나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가석방된 사람이 지난해에 67명 더 있었다는 뜻이었다.
박현주 대변인은 두 번째로 "(이재용 부회장처럼) 형기의 70%를 채우지 못한 가석방자 현황에 대한 문의가 있었다."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대변인은 "최근 3년간 형기 70% 미만자는 244명이었다."라면서 "이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현주 법무부 대변인은 딱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사전 준비한 답변만 발표하고 기자들의 추가 질문을 받지 않고 브리핑을 끝냈다.
이재용 부회장 같은 조건의 사람이 2020년 기준으로 67명, 최근 3년 간 기준으로 244명이나 있다는 박현주 대변인의 말을 들으면 마치 이재용 부회장이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혜택을 받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박현주 대변인이 생략한 수치가 있다. 바로 전체 가석방자 중 이재용 부회장과 비슷한 조건인 사람의 비율이다. 이재용 부회장 같은 사람이 가석방 허가를 받을 '확률'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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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언급하지 않은 '1%의 확률'
법무부 대변인의 두 번째 설명, '최근 3년 간 형집행률 70% 미안의 재소자 중 가석방된 인원 244명'이라는 말도 분석해보자. 최근 3년(2019~2021년) 동안 가석방된 사람은 총 24,682명이다. 244명은 이 가운데 0.98%에 해당한다. 244명이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적지 않은 인원처럼 느껴지지만 '확률'은 이 역시 1% 미만인 것이다.
게다가 '2020년 한 해' 또는 '최근 3년 간'이라는 기준 자체가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을 최대한 평범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선택된 범위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법무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언급한 2020년을 제외한 다른 해에 추가 사건이 있는 사람이 가석방된 통계는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형집행률 70% 미만의 재소자가 가석방된 통계와 관련해 '최근 3년'이 아니라 '최근 10년'으로 분석의 범위를 넓히면 형집행률 70% 미만인 사람의 가석방 비율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최근 3년 간을 기준으로 하면 0.98%지만, 최근 10년을 기준으로 하면 0.46%가 된다.
성인수 가석방 허가자 집행률별 현황(2011년~2020년) / 출처: 2021 교정통계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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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리하게 계산해도 1% 미만에 해당…'특혜'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형집행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나, 다른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재소자라는 관점에서 볼 때나,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통계를 뽑아도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1% 미만의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특혜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역차별'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이재용은 원래 대한민국 0.01%에 해당하는 특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1% 정도의 특혜만 주어졌으니 오히려 억울한 것이라고 주장이라도 하는 것일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이 특혜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탓인지, 법무부와 청와대는 가석방에 대한 실질적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범계 장관은 어제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 결정을 발표한 직후 청사를 빠져나가는 길에 기자들이 '특혜가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저는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존중해서 허가한 것이다. 더 자세히 설명할 여지가 없다. 심사위에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결정권은 실질적으로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가석방 심사위원회에서 행사했으며, 자신은 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 허가한 것일 뿐이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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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미루는 법무부와 청와대…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나
법률상 가석방 허가권자인 법무부 장관이 결정의 책임을 가석방 심사위원회에 돌리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것까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히 가석방 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 9명 가운데 4명이 현직 법무부 고위간부라는 점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법률상 가석방 권한은 법무부에 있다며 입장을 밝히는 것을 거부하는 청와대 역시 책임 회피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5년 국회 토론회에서 했던 공개 발언의 취지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2015년 1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안철수 당시 국회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안철수 의원뿐만 아니라 현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과 주중대사를 역임한 장하성 고려대 교수도 참여한 행사였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바로 전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최태원 SK 회장 가석방과 관련해 한 말에 대해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그에 대한 답변에서 '재벌이라고 해서 이렇게 특혜도 안 되지만 역차별도 안된다', 말씀은 원론적 말씀이지만 뜻은 가석방을 추진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이 청와대 차원에서 재벌 총수의 가석방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이를 비판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같은 기자회견에서 "기업인 가석방은 법무부가 판단할 일"이라며 전제를 달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법무부가 가석방 심사 후보자로 이재용 부회장을 선발해놓은 상황에서도 "법무부에서 진행되는 절차에 대해 밝힐 입장이 없다"라고 원론적 입장만 밝힌 문재인 정부 청와대 역시 2015년 문재인 대통령 주장대로라면 "가석방을 추진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 것 아닌가?
"하하, 청와대 권한 아니라고요?"
게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행정 관련 요직에 기용됐던 법학자들이 남긴 글을 보면 재벌 총수에 대한 가석방에 청와대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지 잘 드러나있다. 얼마 전까지 형사정책법무연구원장을 지냈던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토론회 발언과 비슷한 시점인 2014년 12월 27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기업인 가석방이 법무부 권한이라는 설명에 대해 비웃음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기업인 가석방’ 공방…청와대 “법무장관 권한”이라고. 하하, 청와대 권한 아니라고요? 법적으론 법무장관 권한일지 몰라도, 실제로 청와대와 법무부의 협의를 거쳐 대통령의 의중대로 결정된다고 보면 틀림없어요. 괜히 발뺌하지 말아요. 어느 코미디 대사를 빌자면 "누굴 바보로 아나?"
한인섭 전 원장의 글에 댓글을 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한 술 더 떴다. 기업인 가석방이 "법무장관 권한"이라는 말을 꼬집어서 "(당시 청와대에서 살고 있던) 실세 진도개 권한이 아니라고 한 것이 다행...."라며 다분히 조롱 섞인 글을 올렸다.
한인섭 전 형사법무정책연구원 원장의 페이스북 글 / 2014년 12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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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에서 중용된 대표적 법학자인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주장과 달리 재벌 총수의 가석방에 대한 실질적 권한은 가석방 심사위원회도 아니고, 법무부도 아니고, 청와대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인섭-조국 두 사람이 2014년에 설명한 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가석방에서 또 특혜를 받는다면 경제정의에 반하는 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결정은 최대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통계를 뽑아도 1% 미만의 사람에게만 돌아갈 수 있는 '특혜'다. 가석방에 청와대나 법무부 장관이 실질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2014년 한인섭-조국 두 서울대 법대 교수의 발언에 비춰볼 때 설득력이 부족하다. 차라리 이재용은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고,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원칙을 깨고 재벌에게 특혜를 준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재벌과 정치권의 정경유착을 끊어내는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했다는 정부로서는 정치권력이 재벌에게 특혜를 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도저히 과거의 원칙과 현재의 현실 사이의 화해될 수 없는 갈등을 외면해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이 '정의'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2015년 이런 발언을 했던 인물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그런데 다 아시다시피 이렇게 재벌이나 대기업의 총수나 임원들 쯤 되면 그 동안 국가경제에 기여해온 공로라든지 앞으로 또 국가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 때문에 이미 법원에서 형량을 정할 때 부터 엄청난 고려를 받고 국민들이 볼 때에는 특혜를 받고 있거든요. 지금까지 정말 실형을 선고받은 분이 거의 없을 정도 아닙니까? 아무리 큰 범죄라도 다 집행유예로 석방을 해드리고 했는데 그러면서 보면 이미 형량에서 많은 특혜를 받고 있는데 가석방에서도 또 특혜를 받는다면 그것은 저는 경제정의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들은 경제정의라는 관점에서 더 분명한 원칙이나 그런 기준들을 세워야 우리나라 경제정의가 살면서 기업도 또 발전하고 국민들도 함께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말씀을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 문재인 대통령, '40년 장기불황, 안철수의 한국경제 해법 찾기' 토론회 축사 중에서, 2015년 1월 13일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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