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항소심 세 번째 재판 첫 출석
오월단체 등 광주지법서 규탄 집회·충돌 방지 경찰 경비도 삼엄
피고인 호흡곤란 호소 30분 만 재판 종료…다음 기일 30일 예정
5.18기념재단 등 오월 단체가 9일 오후 1시 광주법원 앞에서 "전두환을 적법하게 재판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형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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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박진형·조형주 기자] "전두환을 즉각 구속하라."
9일 오후 1시쯤 광주법원 정문 앞은 오월 단체 관계자와 시민 수십 명이 운집해, 북새통을 이뤘다.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전두환씨가 항소심 세 번째 재판에 출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앞서 전씨가 광주지법 출석 당시 차량에 계란 투척도 있어선 지 경찰의 경비도 삼엄해 긴장감이 흘렀다.
철제 안전 울타리가 겹겹이 설치됐고 경찰차량으로 일부 도로가 막혔으며 경찰이 인간 띠를 만들어 통제하기도 했다.
파란 하늘 아래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때문인지, 그들의 비통한 심정 때문인지 오월단체 회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들은 곧이어 "사법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며 열을 올렸다.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학살자', '전두환 이거 왜 이래' 등 문구가 적힌 손 팻말도 곳곳을 장식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민주화 운동 희생자 영령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고 5·18 추모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집회 참석자들은 팔을 힘차게 흔들며 목청껏 따라 불렀다.
전씨의 재판 출석이 갑자기 정해지면서, 지난해 1심 선고가 있을 당시와 달리 별다른 퍼포먼스 없이 기자회견문 낭독으로 짧게 끝났다.
5·18기념재단 등 오월 단체들은 "국토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본분을 어기고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며 대한민국 주권을 짓밟은 전 씨를 규탄했다.
당시 폭력적인 공권력에 희생된 이세상씨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은 채 수십 년째 '반쪽 세상'에 살고 있다. '한국에 영원한 상처를 남긴 사건'이라는 말이 절로 느껴졌다.
뿔테 안경에 주황색 색종이를 붙이고 실명된 눈을 가리고 있던 이씨는 "사법부가 전 씨를 법정 구속을 시키는 것이 헌정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손에 쥐어진 연극 소품으로 쓰는 '모형 총'에선 총탄이 빗발치던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전해주는 듯했다.
박영순(65)씨도 "발포 명령을 부정하는 것이 믿을 수 없다며 죄를 인정하고 전두환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용서를 구하는 것밖에 없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한 시민은 거리에 세워진 라바콘을 확성기 삼아 입에 바짝 갖다 대고 한탄을 쏟아 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전두환이 발포 명령에 책임이 없다며 뱀의 혀를 놀리고 있다"며 "재판에서 진실이 규명되길 바란다"고 울부짖었다.
전씨는 이날 낮 12시 42분쯤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법원 후문에 도착한 후 경호원의 투명 우산 보호를 받으며 청사로 향했다. 취재진들의 질문에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전두환 씨의 재판이 25분만에 종료되자,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박진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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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25분만에 끝나자 법원 주변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철제 안전 울타리 너머로 전 씨가 탄 검은색 승용차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민들은 무력감을 느끼며 격양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한 할머니가 흰색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오메 나 죽겄네. 오메오메 분한 것"이라고 되뇌었다. 눈은 붉게 충열됐고, 목소리는 떨렸다. 주차장 연석에 앉아서도 발로 바닥을 치며 한동안 화를 참지 못했다.
또 다른 할머니도 피켓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삼엄했던 경찰 경비들도 풀어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고자 배치된 경찰 500여 명이 일제히 철수를 준비했고 주변에 세워진 경찰차량에도 시동이 걸렸다.
이렇게 전씨의 항소심 세 번째 재판은 끝났다. 전씨와 시민들 간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 발간한 회고록에 '5·18 당시 헬기사격은 없었던 만큼 고 조비오 신부가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라며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써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뒤 전씨 측은 '사실 오인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검찰은 '형량이 가볍다'며 각각 항소했다.
이날 전씨는 재판이 시작된 이후 신원 확인 절차에서 부인 이씨의 도움을 받아 대답한 후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 시작 17분 만에 전씨 측은 피고인이 식사를 못하고 호흡이 곤란하다며 휴정을 요구했다. 10분 뒤 재판은 재개됐지만 재판부는 다음 기일을 예고하고 곧바로 종료됐다.
전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30일 오후 2시로 예정됐다.
호남취재본부 박진형 기자 bless4ya@asiae.co.kr
호남취재본부 조형주 기자 ives08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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