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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8888항쟁 33년 후에도 "민주화" 외치는 미얀마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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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얀마에서 네 윈 독재정권에 항거하기 위한 ‘8888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 지 3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미얀마 시민들은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미얀마나우는 8일(현지시간) 8888 민주화 항쟁 기념 시위가 미얀마 전역에서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시위대는 ‘미완으로 남은 8888 민중 혁명을 위해 함께 싸우자’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니 조 양곤대 학생회장은 “우리는 군사독재에 맞서 싸웠던 기성세대들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책임은 이제 우리 세대에 있다”고 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일부 시위대는 8888 민주화 항쟁에서 시민들의 희생을 상징하는 빨간색 옷을 입고 나와 “1988년 피의 빚을 2021년에 다 돌려주자”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이날 만달레이 시위에 참가한 고 사이 윈은 “1988년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지만 독재는 아직 살아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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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독재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8일(현지시간) 만달레이에서 미얀마 8888 민주 항쟁 기념 시위를 열고 있다. 만달레이|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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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과 달리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군부 저항 의사를 표시했다. 승려들을 포함한 시민들은 SNS에 8888 민주화 항쟁의 ‘8’을 의미하는 여덟 손가락을 펼친 사진을 올렸다. 한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해외 시민들도 8888 민주화 운동 기념시위를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피터 보울스 주미얀마 영국대사는 이날 트위터에 “영국은 1988년에도 미얀마 시민의 편에 섰고, 2021년에도 그들의 편이다”고 밝혔다.

1988년 8월8일 미얀마 전역에서 일어난 8888 민주화 항쟁은 대학생이 중심이 되어 시민들이 네 윈 독재정권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한 시위다. 당시 군부가 예고없이 일부 화폐 유통을 금지시킨 것이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평화 시위로 시작됐지만 군부가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하면서 약 3000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네 윈 장군은 국가 원수직에서 물러났지만, 소 마웅 장군이 집권했다. 군부는 민정이 들어선 2011년까지 정권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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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888 민주화 항쟁 당시 미얀마 시민들이 양곤 거리에 나와 군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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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쿠데타 이후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반군부 시위를 벌이다 군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AP)는 지난 7일까지 960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5512명이 구금돼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미얀마의 군부 독재 체제는 장기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미얀마의 정치분석가는 민 아웅 흘라잉 총리가 2년 내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군부는 일시적으로 권력을 잡을 것 처럼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은 절대로 권력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미얀마 매체 이라와디에 말했다.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은 불법 통신장비 보유, 총선 기간 코로나19 예방 수칙 미준수, 뇌물수수 등 10건 이상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최대 41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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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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