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며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비난해 기소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90)가 9일 또다시 광주의 법정에 선다. 이날 오전 8시20분쯤 서울 연희동 집을 출발한 전씨는 오후 2시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항소심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다.
전씨는 2017년 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2018년 5월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씨는 항소했다.
5·18학살의 최고 책임자로 꼽히는 전씨가 형사 피고인으로 광주 법정에 서는 것은 이번이 네번째다. 5·18희생자와 관련단체들은 광주를 찾는 전씨에게 줄곧 “진심으로 사죄하라”고 요구해 왔다. 희생자들의 요구를 번번이 무시해 왔던 전씨가 이날 광주 법정에서는 어떤 말을 남길지 주목된다.
그동안 전씨가 광주 법정에서 남긴 말과 행동들을 정리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90)가 2019년 3월11일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19년 3월11일 첫 출석 “왜 이래”
“왜 이래.”
2019년 3월11일 광주 법정에 출석한 전씨가 광주 시민들에게 남긴 말은 이 한마디였다. 그는 1997년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내란목적 살인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사면된 이후 22년 만에 광주의 형사 법정에 섰다.
대통령 퇴임 이후 처음 광주를 찾은 전씨가 남긴 말 중 5·18 학살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게 전한 말은 없었다. 법원에 도착한 전씨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 “5·18발포를 인정하느냐” 등의 질문을 하자 “왜 이래”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게 전부였다.
당시 전씨는 재판 시작 22분 만에 조는 모습을 보였다. 전씨 측은 2013년 대학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며 재판부에 진단서를 제출했다. 전씨는 변호인의 발언이 길어지자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머리를 왼쪽으로 떨궜다.
재판이 종료되자 방청석에서는 “살인마 전두환”이라는 고함이 터졌다. 법정을 나서려던 전씨는 잠시 방청을 바라본 뒤 말 없이 법정을 나서 서울로 돌아갔다.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가 2020년 4월27일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20년 4월27일 직접 “헬기사격 없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둔 2020년 4월27일 전씨는 두 번째로 광주 법정에 섰다. 1심 재판부가 변경되면서 다시 법정에 서게 된 전씨는 5·18 당시 헬기사격에 대해 직접 부인했다.
재판장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전씨는 “내가 알고 있기로는 (5·18) 당시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만약 헬기사격을 했더라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 것”이라며 “그러한 무모한 짓을 대한민국의 아들인 헬기 사격수가 계급이 중위나 대위인데 이 사람들이 하지 않았음을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고 말했다.
전씨 측은 헬기사격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설(說)에 불과하며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무책임한 주장”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폈다. 전씨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2018년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는 헬기사격은 (계엄군이 시민들을)적으로 규정하고 실시한 소탕작전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결코 사실이 아니다”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부세력의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밝혔다.
방청석에서는 고함이 터졌다. 재판을 지켜보던 5·18구속부상자회 회원은 “광주 시민은 그럼 누가 죽였나. 대한민국 공수부대가 죽였다. 전두환 살인마”라고 강하게 항의하다 퇴정 당하기도 했다.
전직대통령 전두환씨가 2020년 11월30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뒤 5·18부상자회 소속 회원들이 전씨 일행 차량에 계란을 던지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심 선고 날에도 법정서 ‘꾸벅 꾸벅’
전씨는 1심 선고 당일인 2020년 11월30일 다시 광주 법정에 출석했다. 1심 재판부는 국회 광주청문회와 검찰 조사에서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수차례 밝힌 조 신부의 증언은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목격자와 일부 계엄군의 진술, 군 문건 등에 비추어 봤을 때 5월21일 500MD 헬기가 위협사격 이상의 사격을 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청 진압작전이 벌어진 5월27일에도 재판부는 헬기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판단을 근거로 재판부는 전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회고록을 집필하는 과정에서도 헬기 사격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출간을 감행하였으므로, 피고인에게 허위 인식이 있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씨가 5·18을 부정해 또다시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1997년 대법원에서 도청 유혈진압(상무충정작전)이 ‘내란목적 살인’으로 인정돼 무기징역이 확정된 뒤 23년 만이었다.
하지만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피고인석에 앉은 전씨는 재판장이 판결 요지를 밝히는 1시간 내내 눈을 감은 채 꾸벅꾸벅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재판부는 “5·18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 성찰이나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면서 “피해자와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씨가 별다른 입장표명도 없이 광주지법을 빠져나가는 동안 5·18피해자와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민들은 전씨 측 차량에 계란과 밀가루를 던지기도 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경향신문 프리미엄 유료 콘텐츠가 한 달간 무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