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업체, 납품 계약 해지시 이자·위약금 요구…채권압류·추심 압박도
대출 다 갚아도 '꼬투리'…현행법상 "대부업 보기 어렵다" 제재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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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뉴스1) 조준영 기자 = "빌린 돈 다 갚고 거래처 바꾼다고 하니 효력 잃은 공정증서를 내세워 압류하네요."
충북 청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얼마 전 신용카드 매출 대금 계좌를 모조리 압류당했다.
채권자는 개업 때부터 거래해 온 주류업체였다.
해당 업체는 A씨를 채무자로 카드회사 5곳을 제3채무자로 설정해 법원으로부터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결정을 받아냈다. 청구 채권액은 5000만원이다.
A씨는 지난해 7월 식당 문을 열었다. 신축 건물을 세워 장사하려다 보니 준비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가장 먼저 자금이 발목을 잡았다. 내부 시설 공사를 비롯해 돈 나갈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고민하던 때, 지인으로부터 주류도매업체를 소개받았다. 업체 운영자는 '향후 독점적으로 주류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대출을 약속했다. 무이자로 매월 15일 200만원씩 분할 변제하는 조건이었다.
한 푼이라도 급했던 A씨는 제안을 수락, 영업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초창기 코로나19 탓에 시설공사가 지연돼 개업이 미뤄졌을 때 말고는 주류 납품과 대출금 상환은 제때 이뤄졌다.
이때 역시 '개업이 늦어져 주류를 납품받지 못하고 대출금 변제가 어렵게 됐다'는 사정을 설명했고, 주류업체도 정상 영업 이후 변제하도록 했다는 게 A씨 측 설명이다.
A씨와 주류업체는 줄곧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 업체가 자금 사정을 이유로 월 변제금(200만원) 이상을 요구하면 A씨는 1000만원 이상을 한 번에 갚기도 했다.
그러던 둘 사이 관계가 틀어진 계기는 A씨가 빌린 돈을 모두 갚은 지난달 초 주류 납품업체 변경 의사를 밝히면서다.
A씨는 "지난해 말쯤 기존 납품업체가 다른 곳보다 현저하게 비싼 가격에 주류를 공급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류를 납품받다가 대출금을 다 갚은 뒤 업체 변경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주류업체 측은 A씨에게 별다른 통보 없이 '금전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를 근거로 법원에 채권압류·추심명령을 신청했다.
당시 공정증서는 A씨가 채무 변제를 완료해 효력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법원은 업체 측 신청을 받아들였고, 곧 식당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카드 계좌가 모두 막혔다.
A씨는 부당한 압류라고 주류업체 측에 항의했으나 ‘마음대로 하라’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는 "민사소송을 걸고 싶어도 대법원 확정까지 통상 2~3년이 걸리는 데다 당장 매출 대금 전부를 압류당해 식당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결국 A씨는 주류업체 대표를 사기(소송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주류 대출을 받았다가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가 끊이지 않는다.
주류 대출은 주류 도매상에서 수천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쓰는 대신 납품 독점 계약을 맺는 제도다.
경영난이 심화하는 때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은 돈일 수 있으나 잘못하면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다.
피해는 대개 주류 납품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납품 계약을 해지하거나 폐업하면 대출해 준 주류업체는 위약금이나 이자를 요구한다.
연체 이자율은 통상 법정 최고인 연 25%다. 거래처 한번 잘 못 바꿨다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물어내야 하는 셈이다.
대출금을 모두 갚은 뒤 거래처를 바꾼다 해도 온갖 꼬투리를 잡아 문제 삼는다.
일례로 지난 6월 세종시 한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은 과거 주류 납품 계약을 맺었던 업체로부터 연체금 700만원을 물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체금을 요구한 주류업체는 대출금 첫 상환 월에 이틀 늦게 돈을 보낸 점을 이유로 들었다. 프랜차이즈 매장이 거래를 끊기 전에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류 대출은 경영난을 겪는 자영업자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도 하지만 업체와 관계가 틀어지면 반대로 숨통을 조이기도 한다"며 "대출 약정을 할 때 서류를 꼼꼼히 살펴 불리한 조항을 미리 파악해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법상 주류 대출을 제재할 방법은 없다. 주류 업체가 소상공인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행위는 대부업으로 보지 않는다.
reas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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