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롯데호텔, 코로나 걸린 노동자는 갈 데 없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미얀마 양곤의 공동 화장장에 코로나19 사망자의 관들이 14일(현지시간) 대기하고 있다. 미얀마는 최근 코로나19 환자 폭증으로 병상 부족을 겪고 있다. 양곤|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얀마 양곤 롯데호텔 노동자인 흐닌 흐닌(가명)은 코로나19에 걸린 줄 모르고 일했다. 이틀 정도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흘 뒤 아예 후각을 잃었다. 뒤늦게 받은 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이었다. 그대로 짐을 싸서 택시를 타고 강제 귀가했다. 호텔에는 코로나19 자가 격리에 돌입한 투숙객들이 묵고 있다.

흐닌 흐닌은 27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롯데호텔이 코로나19 격리 시설로 쓰이고 있지만, 정작 투숙객을 상대하는 호텔 노동자들이 코로나19에 걸리면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5성급 호텔인 미얀마 양곤 롯데호텔에 코로나19가 퍼지고 있다. 롯데호텔 측은 “직원 350여명 중 지금까지 감염 의심자 150여명을 검사해서 20~30명이 감염됐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실제 감염자는 그보다 많다고 했다. 호텔 측은 노동자들에게 21일 주기로 호텔 부지 안에서 숙식을 제공하면서 외부 감염은 막았지만, 내부 감염을 막지는 못했다. 청소, 식음료 서비스, 안내데스크 노동자들이 감염됐다. 한 노동자는 “대체인력이 점점 늘어나서 자꾸 모르는 얼굴들이 출근한다”고 말했다.

호텔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의심 환자들을 돌본다. 롯데호텔에는 미얀마 해상 가스 시추 사업에 투입되는 포스코인터내셔널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머물고 있다. 포스코인터는 롯데호텔에서 일주일간 격리 기간을 거친 뒤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노동자들만 해상 가스 시추 현장에 투입한다. 확진자는 원칙상 코로나19 센터나 병원에 보내야 하지만, 그마저 꽉 차서 양곤 롯데호텔에 머무는 경우가 늘었다. 포스코인터 관계자는 “의료시설 부족으로 미얀마 보건당국에서 호텔 내 격리 대기를 요구하고 있어 격리시설과 의료를 지원하고 있다”며 “확진자는 10여명 정도”라고 밝혔다. 양곤 롯데호텔의 최대 주주는 포스코인터다.

호텔 노동자들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직접 접촉하지는 않는다. 하루 세끼 도시락을 객실 문 앞에 두고 가고, 확진자가 떠난 뒤엔 방을 청소한다. 그러나 비상 상황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롯데호텔에서 일하는 아웅 민 탄(가명)은 경향신문에 “감염자 객실에서 긴급한 문제가 생기면 KF94 마스크, 일회용 장갑, 투명 얼굴 가리개를 쓰고 객실 안에 들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일하다가 코로나19에 걸린 사람들은 대책이 없다. 롯데호텔에서 일하는 찬 투(가명)는 요즘 코로나19에 걸린 동료들이 하나둘 ‘귀가 조치’될 때마다 두렵다. 집에는 아이와 부모가 있다. 가족들까지 코로나19에 감염시킬 순 없다. 관리자에게 별도의 격리 시설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흐닌 흐닌은 가족들까지 이미 감염됐다. 귀가 명령을 받고 잡은 택시기사에게도 미안하다.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택시기사를 감염시켰을지도 모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얀마에서 코로나19에 걸리면 코로나19 격리 시설이나 병원에 가면 됐다.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진 건 지난 2월 군부 쿠데타로 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다. 시민들에게 총을 쏜 군부는 병상과 코로나19 격리 시설, 산소통도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다. 아웅 민 탄은 “군부가 민간인 코로나19 환자의 입원을 막고 있어서 군부와 연줄이 없으면 입원하기 어렵다”면서 “이런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이제는 코로나19에 걸려도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롯데호텔 노동자들은 지금이 특수 상황인 만큼, 일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호텔 측이 격리 시설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롯데호텔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자를 집으로 돌려보낸 건 의료시설이 붕괴하다시피 한 미얀마 현실상 미얀마 보건부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며 “호텔 인근의 격리 시설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미얀마 정치 상황 때문에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사 3명을 고용해 유증상 직원의 자택에 산소발생기와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산소실린더 가격이 폭등해 일반인이 거의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미얀마 상황은 현재 매우 열악하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미얀마 매체 미얀마나우가 지난 23일 양곤 롯데호텔의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보도했다. 미얀마나우 화면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코로나 덮친 미얀마…현지 의사들 “군부가 산소통과 병실 독차지”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경향신문 프리미엄 유료 콘텐츠가 한 달간 무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