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21일 서울의 한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열기를 내뿜고 있다. 역대급 폭염이 예고된 이번주 전력수급 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을 통해 이번주 전력 예비율이 4.2%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측했다. 전력예비율이 3.2%(241만kW)까지 떨어졌던 2013년 이후 9년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2021.7.21/뉴스1 |
21일 전국적인 폭염으로 최대 전력수요가 올여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단기간에 전력설비 확충이 어려운 만큼 자칫 수요가 폭증하거나 발전설비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경우 '블랙아웃'(전국단위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정부가 정비를 마친 원전 2기를 조기 투입하면서 급한 불은 끈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력예비율이 연중 최저 수준에 머무는 등 하루하루 전력수급 걱정을 해야하는 상황을 초래한 정부의 안이한 전력수급대책을 놓고 비판이 제기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55분 기준 최대부하는 8만9495MW(메가와트)를 기록했다. 정부가 올해 여름철 전력수급 관리에 들어간 이후 최고치다. 최대부하는 전력수요가 가장 크게 집중될 때 전력계통이 받는 부하를 말한다.
이날 최대부하는 당초 전력거래소가 예상했던 9만1400MW에 비해 1900MW 가량 여유를 보였다. 전력예비율도 11.12%로 전망치 7.6%에 비해 3.5%포인트(p) 가량 높다. 설비용량 1400MW 규모의 신고리4호기가 이날 오전 6시쯤 한국전력공사의 전력계통에 연결돼 전력을 공급하면서 수급에 숨통이 트였다.
전력수급 비상단계는 예비력에 따라 △준비(5.5GW 미만) △관심(4.5GW 미만) △주의(3.5GW 미만) △경계(2.5GW 미만) △심각(1.5GW) 순으로 발령된다.
문제는 이번주 서울 낮 최고기온이 섭씨 35도를 넘어서는 폭염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전력수요가 더욱 늘어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를 내리며 이번주 일부지역의 경우 38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정부는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계획정비 중이던 원전의 재가동 시점을 앞당겼다. 이달 18일부터 전력공급을 시작한 신월성 1호기도 당초 계획보다 한달반 정도 일찍 재가동을 시작했다. 이날 전력공급을 시작한 신고리 4호기의 경우 지난 5월 발생한 화재 사고 수리 이후 이달말쯤 재가동할 예정이었지만 1주일 정도 앞당겨 가동했다. 정비중이던 월성3호기의 경우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을 받아 오는 23일부터 전력생산에 돌입다. 이를 통해 3100MW 규모의 설비 예비전력를 확충했다.
다만 이날부터 고리4호기(950MW)가 계획정비에 들어가면서 실제로 확보한 설비 예비전력은 2150MW 규모다. 이는 이론상 생산가능한 최대치이고, 실제 발전기 출력을 높이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당장 설비 예비전력량 만큼 바로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신고리 4호기의 경우 시간당 3%씩 출력을 올리고 있는 만큼 이번 주말 이후에나 100% 가동이 가능할 전망이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폭염에 따른 냉방 사용 증가와 코로나19(COVID-19) 확산에 의한 재택근무 수요다. 전날 코로나19 확진자수는 역대 최대인 1784명으로 집계됐다. 전날 귀국한 청해부대 장병 확진자가 반영되면 내일 확진자수가 2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재택근무 수요 증가 등에 따라 가정용 전력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예비전력이 부족한 상황인 만큼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전력사용을 최소화하는 정도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중앙부처와 공기업 등 전국 공공기관에 낮 시간대 냉방기 사용을 중단 또는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공문을 최근 발송했다. 이에 따르면 대학교 병원, 대학교 치과병원 및 국공립 대학교를 제외한 전국 954개 공공기관은 최대 전력 예상 주간인 이번 주부터 8월 둘째 주까지 최대 전력 사용 시간인 오후 2시∼오후 5시에 30분간 돌아가면서 냉방기를 끄거나 최소로 사용해야 한다. 최근 수년간 정부가 냉방기 사용 제한을 공공기관에 요청한 적은 없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애초에 정부가 전력수요를 과소 추정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것이 전력수급 불안을 자초했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정부가 앞서 8차 전력수급계획을 짜면서 전력수요가 많이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원전을 많이 지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폈던 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탈원전을 가정해 전력수요를 과소추정한 것이 수급불안의 원인"이라며 "결국 수요예측이 틀리니 급하게 원전을 돌리지 않느냐"라고 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부가 1년 이상을 비행기 충돌사고가 나면 안전대책이 있느냐, 북한 미사일이 날아오면 어떻게 방어할 것이냐는 코미디 같은 이유로 신한울 1호기의 승인을 보류했다"며 "예정대로라면 2018년 4월에 발전을 (시작)했어야 했다"며 "제대로 돌아갔다면 블랙아웃 걱정 전혀 없이 우리 국민들은 편안하게 에어컨 켜고 폭염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는 장기 전력수급계획의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월성 3호기는 22일까지, 신월성 1호기는 26일까지 계획(에 맞춰) 정비하게 돼 있었고 정비 기간이 사실상 거의 종료된 시점이라 '조기 가동'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며 "전력 피크 시점을 고려해 적정 수준으로 가동 시점을 아주 앞당긴 게 아니라 과도하게 해석할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산업부도 이날 설명자료를 내고 "중장기 전력수급계획과 여름·겨울철 단기 전력수급계획은 수립목적, 전망방식, 입력전제 등에 차이가 있으므로 양 계획의 수요전망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올 여름철은 무더운 날씨로 냉방용 전력수요가 증가하고, 국내 경제회복에 따른 산업생산 증가 등이 복합 작용하면서 높은 전력수요 증가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던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세종=안재용 기자 po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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