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일·미 점령군 합작” 발언 파장
윤, 공개적으로 이재명 처음 비판
윤석열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해묵은 ‘건국논쟁’ 데자뷔 분석도
윤 전 총장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셀프 역사 왜곡,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 차기 유력후보 이재명 지사도 이어받았다”고 썼다. 그러면서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떤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게 더 큰 충격”이라며 “그들은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국정을 장악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다음 정권까지 노리고 있는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지향하고 누구를 대표하나”라고 했다.
특히 윤 전 총장은 이 지사를 향해 날선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이 지사를 “상식을 파괴하는 세력”이자 “역사 단편만 부각해 맥락을 무시하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국민들 성취에 기생”하고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지사 등의 언행은 우리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라며 “이념에 취해 국민의식을 갈라치고 고통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 저는 역사와 외교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국제사회와 연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는 “1980년대 좌익 역사인식에 여전히 갇혀 있는 강경 민주당 코어 그룹에 대해 비판하기 위한 취지”라고 전했다.
이 지사의 ‘친일, 미 점령군 합작’ 발언은 지난 1일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이육사 선생의 딸 이옥비 여사를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 나왔다. 당시 이 지사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서, 사실은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하고 합작해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대선 1·2위 주자의 역사관 충돌 … 여야 전면전으로 번질 듯
이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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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사는 이어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해서, 이육사 시인 같은 경우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사하셨지만, 지금까지 충분한 역사적 평가나 예우·보상을 했는지도 의문”이라며 “그런 면에서 보면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새로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야권에선 “이 지사가 말한 새로운 대한민국이 설마 러시아·중국·북한과 손잡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냐”(원희룡 제주지사),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점령군 주한미군’을 몰아낼 것인지 묻고 싶다”(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 강한 반발이 나왔다. 이 지사와 당내 경쟁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민주당 대통령들은 단 한 번도 이런 식의 불안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윤석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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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 협공에 이 지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4일 페이스북에 “미군의 포고령에도 점령군임이 명시돼 있고, 이승만 대통령도, 김대중 대통령도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했다”며 "북한 진주 소련군이 해방군이라고 생각한 일도 없고, 그렇게 표현한 바도 없다”고 했다. 이어 “점령군으로 진주했던 미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철수했다가 6·25전쟁에 참전한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다”며 “같은 미군이라도 시기에 따라 점령군과 주둔군으로 법적 지위가 다르다는 것은 법학개론만 배워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친일 세력’에 대해서도 이 지사는 “독립을 방해하고 독립운동을 탄압하며 일제에 부역하던 세력이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반민특위도 이들에 의해 강제 해산되지 않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의) 저에 대한 첫 정치발언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제 발언을 왜곡 조작한 구태 색깔공세”라고 역공했다.
이번 이재명-윤석열의 정면충돌은 해묵은 ‘건국 논쟁’의 재연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친일 세력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주도했다는 이 지사의 발언은 1980년대 대학가에서 유행한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철 지난 민중사관의 답습이라는 게 역사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윤 전 총장 등의 미 점령군 반박도 해방 공간과 6·25 이후의 미군을 혼용해 논점에서 비켜났다는 지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좌우 이념 대결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역사관이기에 대한민국 건국을 둘러싼 두 진영의 공방은 쉽게 물러날 수 없다”며 “여야 지지율 1위 후보가 직접 나섰기에 역사논쟁은 전면전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오현석·성지원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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