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거래소가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는 일이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통화 거래소 검증에 대한 은행업계의 면책 요구를 금융당국이 전면 거부하면서 금융당국이 검증책임을 은행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미 은행 실명 계좌를 확보한 대형거래소 4곳 외에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거래소 업계에서 점점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최근 가상통화 거래소에서 자금세탁 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심사과정에서 은행에 고의 혹은 중과실이 없으면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금세탁 부분에서 1차 책임은 은행에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진행된 ‘햇살론뱅크 협약식 및 간담회’에서도 “테러 자금에 면책을 주는 게 용납이 되겠는가.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통화 거래소들은 계속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오는 9월24일까지 은행을 통한 실명계좌 발급 등을 마쳐야 한다. 실명계좌는 같은 금융사에서 만들어진 가상통화 사업자 계좌와 고객 계좌 사이에서만 금융거래를 허용해 거래 안정성을 보장하는 수단이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면책요구를 거절하면서 앞으로 거래소들이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를 보유한 거래소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곳으로 신한은행, NH농협은행, 케이뱅크 등과 제휴관계에 있다. 현실적으로 9월24일 이전까지 실명계좌를 확보할 수 있는 거래소는 기존 4곳 뿐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시중은행과 거래소들은 1차 검증을 해야할 금융당국이 은행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의견에 입을 모은다. 가상통화 관리 주무 부처로서 금융위가 직접 거래소를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민간기업인 은행이 발급하는 실명계좌를 가장 중요한 특금법 신고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기형적 구조란 지적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사실상 가상통화 거래소 검증을 은행이 떠맡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될 수 있는데다, 실명계좌 유치로 얻는 수수료 수익률도 1% 내외로 미미해 거래 유인이 크지 않다. 한 대형 거래소 관계자는 “그나마 현재 실명계좌를 보유하고 있고, 대화채널을 유지하고 있는 거래소는 형편이 낫지만 그렇지 않은 중소형 거래소들은 은행들과 대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중은행과 실명계좌 발급을 추진 중인 한 거래소 관계자는 “당국이 명확한 자격요건을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들도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을 앞세운 거래소 구조조정으로 거래소뿐만 아니라 투자자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상통화 이미지. 경향신문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경향신문 프리미엄 유료 콘텐츠가 한 달간 무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