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자들이 2일 오전 의정부지법 정문 앞에서 현수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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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지법은 낡고 비좁은 청사로 유명한 곳이다. 주차공간이 늘 부족하고 법정을 찾는 이들이 북적인다. 2일 오전은 유난히 더 번잡스러웠다. 정문 앞 가로수에는 “정의로우신 판사님은 정의로우신 판결로” “판사님은 판결을 남기고 민초는 기억을 남깁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윤석열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걸었다. 보수 유튜버들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의정부 법원에서 처음으로 방청권을 배부한다고 합니다. 윤석열 총장님의 인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이날은 최근 대권을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리는 날이다. 재판은 오전10시40분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오전 9시를 조금 넘어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언론사 기자들은 디지털카메라와 방송장비를 준비하고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셀카봉’처럼 생긴 거치대에 스마트폰을 연결한 유튜버들이 몰렸다. 저마다 라이브 방송 기능을 켜둔 채로 이 사건의 쟁점과 정치적 파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예정된 2일 오전 취재진과 유튜버, 윤 전 총장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이 의정부지법에서 진행된 방청권 추첨에 참여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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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40분쯤부터는 재판정 앞에서 방청권 응모가 시작했다. 일반에 배정된 방청석은 15석. 신분증을 확인한 뒤 연락처를 기재한 응모권을 투표함에 넣었다. 30분쯤 지나 법원 관계자들이 방청권 추첨을 뽑았다. “번호로 부르겠습니다. 35번!” 한장 한장 번호가 불려질 때마다 짧은 환호가 나왔다.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네.” “오 축하해요.” 당첨된 사람들에겐 주변에서 축하 인사를 하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는 연달아 번호를 부른 뒤 추첨을 마쳤다. 법원 관계자는 “응모권을 80장쯤 준비했는데 40~50명쯤 참여한 것 같다”고 했다.
“오 12번!” 보수 유튜버 김상진씨도 방청권이 당첨됐다. 김씨는 다른 보수 유튜버들과 함께 법원에 일찍 도착했다. 그는 지난 2019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형집행정지를 요구하며 윤 전 총장이 사는 집에 찾아가 유튜브 방송을 하며 “죽여버리겠다”고 말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윤 전 총장의 열렬한 지지자다. 그의 유튜브 계정은 삭제돼 현재는 페이스북 등에서 활동 중이다. “일단 진보 유튜버 일당들이 당첨 안 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방청권에 당첨된 소감을 묻자 웃으면서 말했다.
법원의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한 유튜버들은 법원 정문 앞 바깥 쪽에 모였다. 윤 전 총장을 비난하는 이들과 지지하는 이들은 쉼 없이 투닥거렸다. 자존심 강한 두 유튜버들은 서로를 향해 스마트폰을 겨눴다. “밥은 먹고 다니냐. 감방이나 가라”(진보 유튜버) “너는 그래도 곧 전향할 거지? 같이 소고기나 먹으러 가자.”(보수 유튜버.) 이들은 정치적 반대 진영에 서 있지만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등 이런저런 현장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처럼 보였다.
보수유튜버들은 최씨의 출석을 준비하고 있었다. “차가 이쪽으로 들어오면 (진보 유튜버가) 못 달라붙게 잘 보호해주면 됩니다.” “은색 벤츠래.” “여기 딱 오시면 (최씨를) 우리가 엎어서 데려다 드리면 좋은데 아무도 접근 못하게.” 한 보수 유튜버 휴대폰 케이스에는 은색 반짝이 스티커로 만든 ‘윤석열’이란 이름이 붙어있었다. 재판 시간이 다가오자 초초해졌다. “항상 10분 전에 오셨는데 왜 안 오시지.” “아 그것은 미리 결과를 들어서 법원에 올 필요가 없다고 하네요. 완전 무죄. 꿈에서 그런 얘기를 직접 들었다고 하네요.” 실없는 농담도 주고 받았다.
2일 오전 11시5분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가 탄 차량이 의정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유튜버들과 윤 전 총장 지지자들이 환호하며 모여들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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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시간이 지나도 최씨가 오지 않았다. 한 진보 유튜버는 “윤석열 장모면 재판 시간 늦어도 되나?” 하고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최씨 사건 앞에 열린 재판들은 일정이 지연돼 오전 11시에 모두 끝이 났다. “왔다 왔어!” 그 직후인 오전 11시5분쯤 법원 앞에 최씨가 탄 차가 나타났다. 유튜버들과 윤 전 총장의 지지자들은 차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따라 갔다. 법원 앞 유튜버들을 빠르게 지나친 차량은 법정 앞에 멈춰섰다. 카메라 셔터소리와 환호와 야유가 터져나왔다. 장모 최씨는 입을 다문 채 법정 안에 들어섰다.
법원 앞에 있던 유튜버들은 최씨가 법정으로 들어선 뒤에야 잠시 쉴 틈을 얻은 듯 음료수를 한 잔씩 사 마셨다. 날이 더웠다. 이들은 인도에 걸터 앉아 선고 결과를 기다리거나, 카메라 앞에서 다시 쉼없이 떠들었다. 의기양양한 모습의 보수 유튜버와 달리 진보 유튜버들은 법원 정문 오른쪽 구석에 모여 있었다.
최씨가 법정에 들어간 지 20분쯤 지났을 때였다. 유명 진보 유튜버 한 사람이 흥분한 목소리로 정문 앞으로 뛰어왔다. “징역 3년. 법정 구속!” 방금 전 법정에서 낭독된 주문을 알려줬다.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진보 유튜버들이 주변으로 모였다. 환호성과 만세소리도 나왔다. 이들이 큰 소리로 윤 전 총장을 비판하며 보수 유튜버들을 가리켰다. 보수 유튜버들은 “어디다가 손가락질이야!” 하며 소리질렀다. 보수 유튜버와 말다툼했던 진보 유튜버가 다가와 “소감 인터뷰 좀 합시다”하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한바탕 욕을 먹고 쫓겨났지만 그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에이 뭐 이런 게 다 있어.” 허탈한 표정으로 웃는 이들이 보였다. “그 여기 온 김에 밥은 먹고 가야지. 다같이 식사나 하러 가시죠.” 인도에 걸터 앉던 이들이 힘없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진보 유튜버들은 법원 앞에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러 법원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쯤이 돼어서야 법원 앞은 조금 조용해졌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에 대해 법원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뒤, 진보 유튜버들이 법원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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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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