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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고문 피해자, 충격으로 비누 먹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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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해직기자들과 언론사 설립

군부, 고문피해자 얼굴 뉴스에 공개

'차라리 죽여줬으면' 고문 피해 심각

저항운동 사기 떨어져, 관심 필요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영미 (분쟁지역전문 독립PD,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 대표기자)

김현정의 뉴스쇼 특별기획 굿모닝 미얀마. 미얀마에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지 5달째로 접어듭니다. 5달 동안 목숨을 잃은 시민이 883명이고요. 군사법원에서 변호 한 번 받지 못한 채 사형선고 받은 사람이 64명이라고 합니다. 그 64명 가운데는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어요. 참 문제는 이런 사실이 외부로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거죠. 세상이 몰라요. 왜냐. 언론도 군부가 장악을 했으니까. 그래서 미얀마에 들어가 언론사를 차린 분이 있습니다. 한국인입니다.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의 김영미 대표기자, 어서 오십시오.

◆ 김영미> 안녕하세요.

◇ 김현정> 독립PD 김영미 PD님이시잖아요. (웃음)

◆ 김영미> (웃음) 저예요.

◇ 김현정> 저는 동명이인 다른 분이 오시나. 어쩌다가 미얀마 현지에 언론사를 설립하게 되신 거예요?

◆ 김영미> 쿠데타가 나고 나서 기자들이 모두 직장에서 쫓겨났어요. 옛날에 우리 민주화과정에서는 언론 통폐합을 했었잖아요. 여기는 아예 그냥 다 폐간시키고 다 문 닫아버리더라고요.

◇ 김현정> 통폐합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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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미> 네, 그냥 없애버리니까 일자리를 잃고 이제 기자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됐던 거고 또 매체가 필요했던 거죠. 이분들이 글을 쓸 수 있는 그랬던 와중에 이제 수배를 당한 기자 두 명이 ‘자기네들이 수배를 당하면 언젠가 잡힐 건데 만약에 한국 언론을 좀 걸치면 죽이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 김현정> SOS를 청했군요.

◆ 김영미> 네, 그래서 그냥 기자증 같은 거 하나만 발급해 달래요. 그런데 사실 그렇게 할 바에는 그러면 정식으로 일을 하고 또 지금 외신들이 미얀마에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좀 협업을 해보자, 그 대신 당신네 월급을 보장해 준다, 라는 걸로 이제 시작하게 됐는데 지금 워낙 저랑 같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기자들이 많아요. 그런데 재정상 월급을 제가 다 줄 수가 없어서 그리고 난데없이 저는 중소기업 사장님처럼 돼서 월급을 매달 맞춰야 되는 거예요.

◇ 김현정> 지금 기자가 몇 명 소속돼 있어요?

◆ 김영미> 지금 12명입니다.

◇ 김현정> 미얀마 기자 12명이나요? 꽤 큰 언론사네요.

◆ 김영미> 나름 커요.

◇ 김현정> 그러니까요.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 12명의 미얀마 해직기자들이네요, 말하자면. 해직됐던 기자들이 이곳에 취업을 해서 다시 취재활동을 하는. 아니, 그런데 지금은 기자는 고사하고 일반인들도 외부에다가 ‘여기가 어떻게 되고 있습니다’ 이런 소식 전하면 잡혀간다고 하는데 어떻게 기자 분들이 취재하고 다니세요?

◆ 김영미> 음지를 지향하는 거죠. 기자라는 신분을 다 숨겨야 돼서 사실 집을 다 옮겼어요. 동네에서는 자기가 기자라고 그때까지 막 자랑하고 다녀서 취재활동 하게 되면 얼굴이 다 보이니까 동네를 전혀 다른 곳으로 다 옮겨서 기자라는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움직이는데 저희도 이제 기획 회의도 하고 아이템 회의도 하거든요. 그래서 ‘주간지 이번에 기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아이템 잡아서, 그거를 이제 한 사람이 다 취재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나눠서 하기도 하고.

그런데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이제 기사나 영상이 나가도 본인들 이름이 못 나가는 것을 제일 안타까워해요. 그 전까지 자기 바이라인으로 기자도 내고 또 영상도 나갔었는데 지금은 별명으로밖에 못 나가니까. 그래서 제가 ‘먼 훗날 미얀마가 좋아지면 그거 언론사마다 다 쫓아다녀서 바이라인 다 고쳐주마. 당신들 이름으로 다 고쳐줄 테니까 슬퍼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많이 슬퍼해요.

◇ 김현정> 슬프죠. 기자가 자기 이름 못 달고 자기 기사를 낸다는 건 슬픈 일이죠. 지금 ‘음지를 지향한다’고 그러셨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언론사의 제1수칙이, 기자 제1수칙이 ‘목숨 걸고 취재해라’가 아니고 ‘잡히지 말아라’라면서요.

◆ 김영미> 네. 잡히면 너무 힘든 과정들이 있기 때문에 ‘잡히지 말고 기자라는 신분을 끝까지 숨겨라’라는 게. 그런데 이제 수배를 당한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기는 해요. 그런다 해도 되도록 잡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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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총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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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잡힌 분도 계세요, 실제로?

◆ 김영미> 네, 잡혔었는데 얼마 전에도 저희 촬영감독이 잡혔다가 그 잡히는 과정에서 다행히 핸드폰을 버렸대요. 그것도 돈인데, 사실. 버렸대요. 그래서 자기가 찍은 거, 이런 거는 들키지는 않은 거예요. 그래서 잡혀갔다가 경찰서 단 하루 있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저희 회사 또 변호사를, 현지 변호사를 선임을 해놔서 그 변호사가 또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 만에 경찰서에서 풀렸는데 그 하룻밤의 트라우마가 엄청 큰 것 같았어요.

◇ 김현정> 무슨 일을 당했다고 합니까? 그 하룻밤에.

◆ 김영미> ‘수없이 사람들이 잡혀와서 폭력을 당하고 또 살려달라고 비는 소리가 너무 슬펐고 끔찍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하룻밤 당하고 이렇게 나와서 지금은 고향에 내려가서 쉬고 있어요. 당분간은 트라우마 때문에 취재를 못할 것 같았어요.

◇ 김현정> 세상에.. 그러니까 ‘군부가 연행해간 시민들이 모진 고문을 받고 있다’라고 저희는 전해 듣는데 이런 얘기를 전해 들어도 못 믿는 분이 계세요. ‘아니, 지금이 무슨 세계 2차대전 때도 아니고 세계인들이 미얀마를 다 주목하고 있는데 어떻게 잔인한 고문이 가능하냐. 조금 오버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취재를 해 보시니 어떻던가요?

◆ 김영미> 고문이라는 게 인류사에서 참 비문명적인 거고 지금까지도 그런 게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안 할 수도 있고요. 또 제가 그랬던 것 같아요. 고문이 되게 피상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좀 때리면 아프겠지, 이 정도로만 생각을 했던 거였는데 미얀마에서 고문 피해자를 보니까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이렇게 문제가 생겨서. 저희가 취재한 한 사례자는 기억을 못해요.

◇ 김현정> 기억상실이 왔어요?

◆ 김영미> 네. 잡혀간 이후부터 집에 왔을 때까지가 기억이 없는데 고통만 기억하는 거예요. 그 아픔. 그 강도만 기억하고 자기를 때린 사람이 누군지 자기를 고문한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해서 기억상실도 온 경우가 있고 또 한 경우는 자기의 이름이나 이런 것까지도 다르게 생각을 해요.

◇ 김현정> 다른 사람으로?

◆ 김영미> 그러니까 자꾸 물어봐도 대답을 못하는데 그 이름이 누군지 되게 궁금한데 자기도 궁금해요. 자기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이런 게 왜 그렇냐 하면 불과 4달 전까지 너무 평범한 시민이었던 거예요. 제가 만나본 고문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종교신념이 되게 강했어요. 알카에다나 이쪽에 있는. 그래서 ‘신념이 강해서 난 잡혀가도 괜찮다. 나의 신념이 있다’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너무 평범한 시민인데 잡혀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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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김영미 PD가 이슬람 지역에서 활동하실 때 (만났던) 그쪽 지역민들하고는 아예 다르다?

◆ 김영미> 많이, 그러니까 신념 그런 건 없고 그냥 평범하게 생각하고 잡혀가다 보니까 고문의 강도가 더 세게 느껴진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럴 수 있죠. 고문에 관해서 특별 취재를 하셨더라고요. 이 언론에서. 제가 조금 읽어보니까 이런 증언도 있습니다. “한 경찰이 노끈을 들고 와서 내 목에 감고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그 노끈이 목을 조를 때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살짝 풀어주고 다시 조이고 살짝 풀어주고 다시 조이고를 끝없이 반복했다.” 이런 증언도 있었고 “조사를 하면서 머리에 물을 붓거나 플라스틱 끈을 불태워서 피부에 닿도록 하거나 이런 식, 체포자에게 물을 안 주고 음식도 안 주고 면담도 못하게 하고 조사를 한다. 고집을 피우면 고문 강도를 한 단계 더 높인다. 잠을 못 자게 한다. 남성의 성기를 향해 고무줄을 날리거나 진동기를 사용하거나, 이런 성고문도 있다” 이런 증언도 지금 쓰여 있네요?

◆ 김영미> 사실 실제 증언 중에는 너무너무 잔인한 게 너무 많았는데요. 노끈 고문이 저는 제일 잔인하게 느껴졌었어요. ‘조금만 더 조이면 자기가 죽을 텐데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 김현정> 차라리,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 김영미> 네, ‘그런데 얘(고문 가해자)가 힘을 안 주더라’고. 그런 얘기도 하고 ‘경찰서에서 이제 심문실에서 제일 가치 있는 게 뭐냐’라고 저한테 묻더라고요. ‘뭘 거 같냐’고. ‘뭔데?’ 그랬더니 비누라는 거예요.

◇ 김현정> 왜요?

◆ 김영미> 비누를 의도적으로 안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상생활에서 아주 평범하게 언제나 쓰던 것들을 안 주면서 군의 통제력을 보여주는 거예요. ‘너는 내가 아주 기본적으로 보장됐던 것도 우리는 뺏을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비누를 며칠 동안 못 쓰고 나왔는데 집에 오니까 비누가 너무너무 귀해 보이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아내가 옆에서 봤는데 이 사람이 비누를 먹고 있더래요. 정신착란이 온 거예요. 비누를 먹고 있더래요. (비누를) 영원히 자기 거로 만들고 싶어서. 그런 게 고문의 수법인 거예요.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어서 계속 통제력을 강화하고 자기 손 안에 놀게 하는 것, 그게 군부의 목적이에요.

◇ 김현정> 지금 이 군부가 참 어처구니없는 것이 이런 끔찍한 고문을 숨기기는커녕 고문 받은 피해자 얼굴을 TV로 방송하고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 김영미> 네, 우리로 치면 프라임 뉴스타임에, 그러니까 저녁 뉴스에 고문당한 얼굴을 한 사람들을 내보내요.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제가 (취재한) 다른 정권들, 좀 독재정권들 같은 경우에는 ‘고문을 했지?’ 그러면 ‘안 했다’

◇ 김현정> ‘우리는 그런 짓 안 한다.’

◆ 김영미> 안 보이는 부위를 때리고 그런데 여기는 일부러 얼굴을 때려서 저렇게 얼굴을 완전히 망가뜨려서 방송에 내놓고 그러면서 전 국민에게 경고를 하는 거죠.

◇ 김현정> 지금 유튜브와 레인보우로 저희가 사진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금 얼굴들이 성한 사람들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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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미> 그런데 이들이 미성년자도 있고 굉장히 어린 학생들이에요.

◇ 김현정> 어린 여학생인데 (미얀마 SNS에서 공유된) 비포와 애프터입니다. 그러니까 고문 받기 전에 저런 얼굴이 고문 후에 이렇게 됐다는.. 군부가 (고문 받은 얼굴을) 방송을 해요, 그러면?

◆ 김영미> 네. 9시 뉴스에 막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국민들이 이거로 인해서 겁을 먹고 다시는 시위에 나오지 말고 저항하지 말라는 대국민 선전전이고 제가 봤을 때는 트로피 효과, 그러니까 자신들의 공적 같은 걸 보여주는 트로피 효과라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아니, 무슨 성형수술 전후, 다이어트 전후, 이런 홍보물은 봤어도. 고문 전후를 군부가 나서서 보여주면서 공포정치를 한다?

◆ 김영미> 공포정치 플러스 통제력을 과시하는 거죠.

◇ 김현정> 너무 잔인하네요. 미얀마 지금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잔인한데 이게 언제쯤 끝날 걸로 보십니까?

◆ 김영미> 군부는 관심이 줄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전 세계의 관심이 좀 줄어들어서 자기네 마음대로 더 할 수 있도록.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 입장에서는 지금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하면서 계속 (저항운동을 하면) 월급이 없잖아요, 여기가. 그러다 보니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군부 입장에서는 그냥 기다리면 돼요. 관심 떨어지고 못 버틸 거고 그러니까 다른 거를 자기들이 뭔가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전혀 안 하고 있고 지금 미얀마가 우기거든요. 우기는 대표적으로 막 말라리아가 되게 극심해요, 미얀마가. 그래서 말라리아, 또 코로나가 지금 대폭발인데 코로나. 그런 상황에서 국민들 자기들이 못 견디고 항복하겠지 하고 사실 기다리는 정도. 그래서 뭔가 심각하지도 않더라고요, 군부 쪽은.

◇ 김현정> 심각하지도 않아요? ‘어차피 제 풀에 다 항복 선언하고 올 거야, 기다리면 돼’ 한마디로 말려 죽이는 거네요.

◆ 김영미> 그렇죠. 그래서 그런 게 조금 안타까워서 제가 저희 회사에서 취재를 하는 사람들이 이제 처음에는 희망을 가져요. ‘한국에 (기사) 나간다’ 그러면 막 용기 내서 증언도 해 주고 희망도 가졌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되게 절망적인 이야기도 증언자들이 많이 하고 그래서 심지어는 기자들조차도, 그러니까 저희가 취재가 위험하다 보니까 노트북이고 핸드폰이고 이런 거를 도망가다 보면 자주 버리기도 하고 또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한 번 노트북을 잃어버리면 ‘이제 그만하라는 뜻인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니다, 내가 어떻게든지 벌어서 노트북 들여보내 줄 테니까 계속 취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하는데 그런 사인에도 이렇게 절망을 하는 것을 보면 많이 지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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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다큐 앤드 뉴스, 여기는 어떻게 들어가서 우리가 보고 후원하실 분은 후원하고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사이트가 있습니까?

◆ 김영미> 제가 아직 후원을 받지 못한 게, 국민의 알권리로 제가 취재를 하는 건데 여기에 뭘 후원하라고 돈을 더 내라고 그러면 너무, 국민의 기본권인데 이거를 받아야 되나, 이런 생각 때문에 제가 계속 못 했고. 주변에서 이제 지인분들이 조금씩 도와주시기도 하고 장비가 되게 비싸요. 한국보다 훨씬 비싸죠. 희귀성이 있으니까. 그런데 사실 주간지 기획해서 돈 받고 방송에도 이렇게 영상 제공해서 돈 받고 이런 거로 저도 강의하고 막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데 하는 데까지 해보고 정 안 되면 그때 후원을.

◇ 김현정> 그 뜻을 존중합니다. 그러면 다큐 앤드 뉴스, 어떻게 저희가 가서 기사를 볼 수 있는 거예요. 아니면 일단은 다른 데 제공만 하시는 거예요?

◆ 김영미> 저희 바이라인으로 나가죠. 저희 회사 바이라인으로. 그런데 이제 그때그때 기획을 하는 거죠. 일간지도 저희가.

◇ 김현정> 협업하고.

◆ 김영미> 주간지도 하고 또 지상파도 하고 이런 식으로.

◇ 김현정> 응원하겠습니다.

◆ 김영미>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김영미 대표 기자님, 응원하겠습니다. 그 미얀마 기자들에게도 용기를 한국에서 이렇게 응원 보내고 있다는 것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영미>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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