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꼭 10년 전 교육의원 시절, 학생들의 고통에 응답하는 차원에서 총대를 메고,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대표 발의, 통과를 위해 앞장섰던 한 사람으로, 요즘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을 보며 답답함과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입법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언제 벗을 수 있을까? 윤창호법·민식이법·하준이법·김용균법... 등 꼭 누군가 희생양처럼 죽어야 비로소 법률 제개정에 나서는 대한민국, 이것은 분명 입법기관인 국회의 직무태만, 아니 직무유기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에도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고 강제 전역당한 변희수(23) 전 하사가 지난 3월 숨진 채 발견되자, 뒷북치듯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마침내 10만명을 돌파, 국회 법사위에 자동 회부됐다. 1년 전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과 연동된 청원으로, 이 법안은 성별·장애·나이·언어·인종 및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고용 및 교육·행정서비스 등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6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같은 당 이탄희·진선미·홍익표 의원,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 등 범여권 24명의 의원들과 함께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을 발의했다. 이상민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모든 영역에 있어서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겠다”며 평등법을 발의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법사위 여당 간사인 박주민 의원도 “조만간 별도로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할 것이고, “최대한 속도를 내고 내실 있는 토론을 통해서 빠른 시일 내에 이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현재 대선주자 중 박용진 의원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야 된다”는 뜻에서 공동발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차별과 배제를 이대로 두고서는 더 좋은 세상, 인권 선진국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15일에는 관련 질문을 받고 “차별금지법에 대해 의견이 없는 건 아닌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먼저 대답한 다음에 제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가 19일에는 “차별금지법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서면 입장을 냈다. 이 지사는 “논쟁이 심한 부분은 오해의 불식, 충분한 토론과 협의, 조정을 통해 얼마든지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발 진전된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렇게 대선주자들까지 차벌금지법에 대해 언급하면서 무려 14년 만에 최대의 입법 동력을 얻고 있는 셈이다.
▲2011년 학생인권조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형태 전 서울시 교육의원(가운데 마이크 잡은 이)ⓒ김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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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며느리 얻고 싶냐”는 등 문자테러에 시달리는 발의 의원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부 보수적인 종교계 중심으로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을 보내는 등 또 다시 조직적 공격 및 반대 목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참고로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처음 논의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정부 입법으로 2007년 12월에 국회에 제출된 게 차별금지법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단 한 차례도 심사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2013년 2월에는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 의원 51명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으나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로 두 달 만에 법안을 철회하는 등 차별금지법은 이렇게 지난 17∼20대 국회에서도 연거푸 발의됐으나 ‘성적 지향’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바람에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국회 관계자들의 말에 의하면, 현재 일부 단체에서 “남자 며느리 얻고 싶냐”는 등 저주에 가까운 문자테러를 이상민 의원 등 발의 의원들에게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의원실 전화도 먹통이 됐단다. 문자폭탄의 내용을 보면 차별금지법이 강조하는 차별과 혐오를 오히려 역설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어느 분 표현대로 문자폭탄 등 무차별적인 압력과 협박은 헌법적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국민들에게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종교적 폭력이 아닐 수 없다.
10년 전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때도 그랬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교는 동성애 천국이 될 것이고, 에이즈가 창궐할 것이며, 임신·출산하는 여학생들로 인해 산부인과로 전락할 것이다. 학교를 소돔과 고모라 만들 일 있느냐? 남자 며느리를 얻고, 여자 사위를 얻어야 정신 차릴 것이냐!” 등 하루에 500통 이상의 저주에 가까운 문자가 쏟아졌고, 의원실 전화는 먹통이 될 정도였고, 서울시의회 홈페이지도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글로 도배가 되었으며 심지어 의원실까지 찾아와 삿대질에 고성을 지르는 등 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자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동참하기로 했던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하나 둘 흔들리기 시작했고, 실제로 늘 반갑게 맞이하던 지역구 보수적인 교회 목사가 인사도 안하는 등 교인 유권자 4천명 표를 잃었다는 의원 등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등 돌리는 의원들이 점점 늘어갔다. 마지막에는 교육의원인 나와 시의원인 윤명화 의원 정도만 남았다.(참고로 당시 서울교육청도 학생인권조례 수정안을 마련해 시의회에 보내냈다고 했다가 슬그머니 주민 발의 원안을 의회로 보냈다.)
보수 기독교계, ‘10년 동안 썼던 낡은 수법’, 이젠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다. 옳고 그름만 생각하기로 했다. 비교육적인 체벌과 단체기합 등 여전히 일제 잔재와 군사독재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학교에서 고통 받는 학생들을 생각할 때 양보하거나 물러설 수 없었다. 이런 일 하라고 하늘이 교육의원 시켰다고 생각해, 솔직히 십자가 짊어지는 마음가짐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선봉에 섰다.
나는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성소수자가 우리다 다르다고 차별하면 되겠느냐? 예수님이 지금 이곳에 계시다면 성소수자들에게 돌 던지며 정죄하라고 하겠느냐? 적어도 제가 믿는 예수님은 분명히 그들도 차별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며 설득했다.(참고로 나의 시의회에서의 발언 등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은 독일 베를린의 한 대학 박사과정에서 연구주제로 다루고 있다고 함)
우여곡절, 아니 천신만고 끝에 2011년 서울시의회는 성적 소수학생 인권침해 금지, 임신·출산 등에 의한 차별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학생인권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보수단체의 반발로 논란이 됐던 차별 금지 조항의 '임신 또는 출산',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의 표현은 수정동의안 5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주민발의안에 있던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 그대로 담았다.
학생 및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이 두발의 전면 자유 보장, 성적지향·임신 출산 등 차별 금지 조항 유지, 집회 자유 전국 최초로 병기한 점 등을 손꼽으며 크게 환영했다. 현재까지, 강산이 몇 번 바뀌고도 남을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여전히 ‘우리나라 인권조례사상 가장 진전된 안’으로 평가되고 있어, 솔직히 씁쓸하다.
수도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만큼 하루속히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다른 지역에도 우후주순으로 조례가 생기고,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상위법 개정 운동으로 이어지길 기대했는데, 10년 동안 답보,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퇴행 현상까지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장혜영, 이상민 의원 등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발의 의원들이 현재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진전시키는 획기적인 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부디 문자 폭탄에 흔들이지 말고 시대적 소명으로 여기고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송영길 대표 등 집권여당은 몇몇 의원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제정을 하루 속히 당론으로 채택, 힘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20, 30을 대표하는 등 새로운 보수의 길을 걷겠다고 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시기상조”라는 어정쩡한 구태에서 벗어나, 더는 시대역행적인 단체나 낡은 집단에 휘둘리지 말고 소신껏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제정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제정에 반대하는 단체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10년 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교는 동성애 천국이 될 것이고, 에이즈가 창궐할 것이며, 임신·출산하는 여학생들로 인해 산부인과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는가? 제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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