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 없고 명분 약해 세대교체 힘들어
20~30세대 끌어와야 대선 승리 ‘판단’
이 대표, 대선까지 앞길 험하고 외로울 듯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당대표가 6월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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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36세 정치인의 제1 야당 대표 당선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준석 대표는 어떻게 국민의힘 대표에 당선된 것일까요? 이준석 대표 당선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의 원인과 의미를 분석하고 앞날을 전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준석 대표 당선은 대한민국 정치의 역동성을 증명하는 큰 사건입니다. 36세 정치인의 보수 정당 대표 당선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의미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선 초기에 이준석 대표 당선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 이준석 대표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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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의 발원지는 여론조사였습니다. 5월 중순부터 쏟아져 나온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후보는 나경원 후보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가 곧바로 1위로 치고 올라갔습니다. 처음에는 높은 인지도에 따른 ‘밴드 왜건’(band wagon) 효과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국민의힘 지지층과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여론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경원이나 주호영 대표 체제로 내년 3월 대선 이길 수 있겠나”, “판을 뒤집어엎으려면 화끈하게 준석이를 밀어주는 것이 낫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여론은 이른바 보수 언론의 기사와 사설을 통해 확산했습니다.
5월 28일 발표된 예비경선에서 이준석 나경원 주호영 홍문표 조경태 5명이 본선에 진출하면서 국민의힘 대표 경쟁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예비경선 결과 수치와 6월 11일 발표된 본경선 결과 수치를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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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은 이준석 대표가 당심에서 밀렸지만, 민심에서 이겨 최종적으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이준석 대표는 예비경선 당원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후보에 졌고, 본경선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나경원 후보에게 졌습니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압승하는 바람에 1위를 차지했습니다.
보수 정당 당내 경선은 전통적으로 조직 싸움이 좌우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지지를 많이 확보한 후보들이 늘 당선됐습니다. 보수 정당 체질상 당원들이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오더’를 잘 따르기 때문입니다.
2019년 2·27 자유한국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는 당원 투표 70%, 일반 국민 여론조사 30%를 반영했습니다. 이번과 같습니다.
황교안 후보는 당원 투표 55.3%, 여론조사 37.7%, 오세훈 후보는 당원 투표 22.9%, 여론조사 50.2%를 차지했습니다. 오세훈 후보가 민심에서 앞섰지만, 황교안 후보에게 졌습니다.
이번 국민의힘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 결과는 거꾸로였습니다. 2019년과 달리 이번에는 민심이 당심을 눌렀습니다. 변화가 일어난 이유가 뭘까요?
국민의힘은 지난 4월 7일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선거에서 이기려면 민심을 따라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수 정당 지지자들도 배운 것 같습니다.
민심이 당심을 견인하는 현상은 보수 정당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정당의 주인이 당원에서 지지층으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준석 대표의 화려한 등장은 다른 뉴스를 압도했습니다. 국민의힘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 다음날인 6월 12일치 신문 1면 머리기사는 모두 다 이준석 대표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각 신문 제목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6세 당대표···보수가 쏘아올린 ‘세대교체’(경향신문)
헌정사 첫 30대 당대표 보수, 변화를 선택하다(국민일보)
30대, 낡은 정치 뒤엎다(동아일보)
헌정사상 첫 MZ세대 당대표 정치 ‘세대교체’ 신호탄 쐈다(세계일보)
2030, 판을 뒤집다(조선일보)
정치판 변화 열망, 36세 제1야당 대표 택했다(중앙일보)
‘0선 30대의 파란’, 정치 판 흔들다(한겨레)
이준석 ‘전과 후’ 정치 새 획 긋다(한국일보)
많은 언론이 이준석 대표 당선을 ‘세대교체’라는 열쇳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통령 출마 자격조차 없는 36세의 정치인이 거대한 보수 정당 대표에 당선된 것 자체를 세대교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 당선을 세대교체로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세력이 없습니다.
세대교체에는 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거꾸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1970년 40대 기수론의 주인공은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세 사람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1971년 대선이 끝난 뒤에도 줄곧 박정희 정권에 맞서 야당과 재야를 이끌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세대교체는 김영삼-김대중 양 김씨가 주도했습니다. 위로부터의 개혁입니다. 1988년 13대 국회의 스타는 노무현·이해찬·이상수·이인제 등 초선 의원들이었습니다. 1996년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은 이재오·김문수·홍준표 등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공천했습니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는 정세균·정동영·추미애 등으로 맞섰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며 ‘젊은 피 수혈론’을 앞세워 임종석·송영길·우상호·이인영·강기정·오영식 등 86세대를 대거 영입했습니다.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남경필·원희룡·정병국·오세훈·김부겸·김영춘·정태근 등 소장파를 중심으로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미래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렇게 세대교체를 통해 들어온 비슷한 연배의 젊은 정치인들이 세력을 형성해 정치판을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준석 대표는 혼자입니다. 김재섭·천하람 등 20~30대 당협위원장이 몇 사람 있지만, 정당에서 국회의원이 아닌 당협위원장은 세력화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당장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을 임명해야 하는데 중진 의원들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세대교체를 하고 싶어도 세력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준석 대표의 뒤를 이어 어떤 사람이 국민의힘 대표가 될까요? 아마도 나이 많은 중진이 될 것입니다. 이준석 대표 당선을 세대교체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둘째, 명분이 약합니다.
세대교체는 젊다고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명분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1970년 40대 기수론은 1969년 11월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가 처음 들고 나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 10월 3선 개헌을 밀어붙인 직후입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공화당 세력이 신민당보다 더 젊다는 현실, 그리고 1956년 신익희, 1960년 조병옥 후보가 급서하는 바람에 정권교체가 무산된 과거를 김영삼 총무는 지적했습니다. 명분이 확실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이후 세대교체도 ‘지역갈등 해소’, ‘3김 정치 청산’, ‘낡은 정치 청산’ 등 굵직한 명분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준석 대표가 내세우고 있는 명분은 무엇일까요? 문재인 정권 심판, 정권교체, 86세대 밀어내기 정도입니다. 세대교체의 명분으로는 약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준석 대표가 20~30대 유권자, 이른바 ‘엠제트(MZ) 세대’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20~30대 유권자들이 이준석 대표처럼 여성·청년 할당제를 반대할까요? 공정한 경쟁만 보장되면 아무런 불만이 없을까요? 이준석 대표 당선으로 20~30대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했을까요?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20~30대 유권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준석 대표가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정작 여성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준석 대표 당선의 의미가 세대교체가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요?
저는 보수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략적 선택’의 대표적인 사례는 호남 유권자들이 2002년 대선 승리를 위해 부산 출신 노무현 후보를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보수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대선 승리를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하기 시작한 것 아닐까요?
보수 야당 지지자들은 4·7 재·보궐선거에서 20~30대 유권자들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따라서 20~30대 유권자들을 보수 야당 지지로 흡수할 수 있다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준석 대표는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입니다. 2011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에 참여할 때부터 그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바른정당에 갔던 것도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준석 대표의 그런 가치관이나 정치적 노선 때문에 보수 야당 지지자들이 그를 대표에 당선시켰다고 보지 않습니다. 내년 대선 승리라는 눈앞의 필요 때문에, 젊은 층 유권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그를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최고위원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조수진·배현진·김재원·정미경 최고위원의 특징은 강한 ‘전투력’입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의 전투에서 밀리지 않을 ‘싸움꾼’들을 당 지도부에 배치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준석 대표 선출도 그런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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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대표의 앞길은 험난하고 외로울 것입니다. 세력도 없고 명분도 약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이준석 대표를 선택한 것이지, 그를 진정한 미래의 정치 지도자로 생각하고 선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홍준표 의원 복당, 국민의당과의 합당,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입당,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 등 만만치 않은 과제가 쌓여 있습니다. 한 발만 삐끗하면 대표 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준석 대표가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2019년에 이준석 대표가 펴낸 <공정한 경쟁>의 부제는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묻다’입니다. 이준석 대표가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제대로 찾아내서 성공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대한민국 정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준석 돌풍에 대한 수많은 칼럼이 신문에 등장했습니다. 인상적으로 읽은 칼럼 두 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안병진 교수가 <경향신문>에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병천 교수가 <한겨레>에 쓴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이준석 돌풍에 대해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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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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