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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위안부·징용 ‘두 개의 판결’…"국제법 존중""위헌" 엇갈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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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 법원이 2년 8개월전 대법원 판례와 상반된 판단을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손배소 두 건도 하급심에서 ‘원고 승소 대 패소(각하)’로 전혀 다른 결론이 나왔다.

김명수 사법부 아래 과거사 소송에서 ‘두 개의 판결’이 공존하게 된 셈이다. 원고들 입장에선 어떤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을 놓고 상반된 결과를 받을 수 있다는 법적 혼란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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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각하 판결에 '항소' 의견 밝히는 '강제징용' 피해자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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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양호)는 지난 7일 송모씨를 비롯한 85명의 원고가 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 등 16곳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소송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을 하지 않는 다는 의미로, 원고 패소 판결이다. “1965년 한일 정부가 체결한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인 청구권이 실체법적으로 소멸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소송을 통한 해결은 제한된다”는 게 핵심적인 이유였다. 재판부는 “한일협정 문언상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에 강제징용 문제도 포함됐다고 봐야 한다”고도 했다.



위안부·징용 피해자는 같은 데 정반대 판결 공존



이번 판결은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강제징용 손배소 인용 판결과는 정반대 논리여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법원 전합에서 대법관 13명 중 11명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는데, 중앙지법 민사34부 재판부는 2명의 소수 반대의견을 따랐다. 전합 다수의견은 한일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피해 배상을 부인해 협정에 배상 청구권이 명시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반면 중앙지법 민사34부는 한일협정 문언상 ‘어떤 주장도 하지 않는다’ ‘완전하고 최종적’ 등의 표현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외교적 보호권뿐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권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단도 “유감스럽지만 국내법적 해석에 불과할 뿐 국제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도 했다.

대법원 전합 판단을 하급심 법원이 2년 8개월 만에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중앙지법 민사34부의 ‘소신 판결’ 이후 다른 하급심 소송의 결과도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됐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배소는 전국 각 법원에서 20건이 진행 중이다.

반면 대법원 전합 판결에서 승소한 원고들은 확정 판결문을 근거로 국내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해 강제집행 절차를 밟고 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인 포스코 합작사(PER)의 주식매각을 위한 감정 절차에 들어갔다. 대전지법은 미쓰비시중공업의 특허권·상표권 압류를 결정했고, 울산지법은 후지코시 소유 국내 회사의 주식을 압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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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이 열린 지난달 2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소송을 낸 당사자들이 재판이 끝난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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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소송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는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일본의 무대응으로 승소 판결이 확정됐는데, 3월 같은 법원 민사15부는 소 각하 판결을 했다. 어느 재판부로 사건이 갔느냐에 따라 누구는 이기고, 또 다른 이는 패소한 셈이다. 민사15부 원고들은 선고 직후 항소장을 제출해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야 결론이 날 가능성이 커졌다.

법원 내부에선 이 같은 ‘두 개의 판결 체제’를 놓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원 전합 선고가 나온 지 3년밖에 안 됐는데 소수 의견을 따라 판결을 뒤집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는 결국은 정부가 나서야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판결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이 종전에 내린 판결을 확정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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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이용수 할머니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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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 원칙 복귀” 대 “임정 법통 헌법 전문에 위배”



이번 판결을 두고 국제법 전문가와 과거사 소송을 지원한 민변의 입장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국제분쟁 전문가인 최태현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현 단계에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과 관련된 국제법 법리는 ‘국가가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때는 개인의 청구권까지 포함해 상대방과 교섭해 일괄타결하는 것’이 주류인 것은 맞다”며 “중앙지법 민사34부 판결이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도 “사안의 특성상 나라 밖에 있는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법을 집행하는 문제”라며 “한국 법원이 이를 강제집행할 수 있게끔 하는 사법 판단을 내리는 건 국제법 원칙에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법 학자는 “한국 최고법원인 대법원 판결도 국제법적으로 보면 ‘규범’이 아닌 ‘사실’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은 국제법 관점에서 일탈했던 기존 판례를 제자리로 되돌리려는 시도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재판부가 한미동맹 관계 등 법리와 관계없는 정치적 사안을 언급한 것은 사법 문제를 외교화한 것으로 문제가 있다”며 “외교ㆍ정치 사안에 관해 법원이 사법 자제의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민사34부의 판결은 대법원이 인정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관련해 ‘유감스럽게도 국내법적 법 해석’이라며 조약에 대한 국내 법원의 법률 해석 권한을 포기했다”며 “이는 3.1운동 정신 계승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헌법 전문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장희 한국외대 로스쿨 명예교수도 “민사34부가 한미동맹과 국가안보 문제 등을 거론한 것은 사법부 판결의 논거로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박현주·이수정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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