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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엇갈린 징용 판결, 65년 한ㆍ일 협정 '회색지대'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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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강제징용 피해자 故 임정규씨의 아들인 임철호(84)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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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중앙지법이 일본 전범 기업에강제징용 피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로 기존의 대법원 판결(2018년 10월)을 뒤집으면서 징용 문제와 관련한 정반대의 판결 두 개가 당분간 상존하게 됐다. 두 재판부는 1965년 한ㆍ일이 수교하며 체결한 협정 및 협상 내용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길래 56년 뒤 이런 법적 혼란이 빚어진 것인지 Q&A로 짚어봤다.

Q : 징용 피해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이뤄졌나.

A : 청구권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은 14년간 진행됐다. 징용 피해 배상에 대해서는 52년부터 구체적 논의가 시작됐다. 한국 측이 일본에 8개 항목으로 구성된 ‘대일 청구 요강’을 제출했는데, 이 중 5항에서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을 변제하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은 8개 항목 중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내용은 없기 때문에 5항이 강제동원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중앙지법은 한국이 징용 피해자의 ‘기타 청구권’의 범위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당시 청구권 협정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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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6월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이 서명한 한일협정 조인서. 중앙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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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협정에 식민지배 불법성은 왜 명기하지 못했는가.

A : 양국이 가장 첨예하게 맞붙은 부분이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침략 전쟁의 책임을 부인했다. 결국 협상 타결을 위해 양측은 회색 지대의 합의에 이르렀다. 한ㆍ일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2조는 “1910년 8월 22일(합병조약 체결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여기서 ‘이미 무효’가 회색 지대의 문구다. 한국은 합병조약이 체결 당시부터 불법이자 무효였다고 해석하고, 일본은 체결 당시에는 합법이었지만 65년 국교 정상화 시점에는 이미 무효가 됐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대법원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의 불법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마당에 피해자인 한국 정부가 스스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해결되는 내용으로 협정을 체결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중앙지법은 당시 양국이 식민지배 불법성에 대해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서로 명확하게 확인한 가운데 협정문에는 이를 의도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으로, 일본 식민지배가 불법인지 아닌지는 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협정을 통해 해결된 것으로 봐야 할지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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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중앙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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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일본이 내는 돈의 성격은 어떻게 정의했나.

A : 일본은 여전히 식민 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 아래 경제협력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제공하길 원했다. 한국은 당연히 일본이 제공하는 자금에는 식민 지배 청산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맞섰다. 여기서도 결국 회색지대의 합의가 이뤄진다. 청구권협정 1조에선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공여와 2억 달러의 정부 차관을 제공하기로 하고, 2조에서는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1조와 2조의 상관관계를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이 내는 자금에 ‘꼬리표’를 붙여 청구권 해결을 위해 내는 돈인지 아닌지 확실히 정리하지 않고 애매하게 남겨둔 셈이다. ※대법원은 1조에서 규정한 5억 달러를 왜 한국에 제공하는 것인지 구체적 명목이 협정에 제시되지 않았고, 1조와 2조 사이에 법적인 대가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당시 일본이 제공한 자금은 청구권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의 지원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중앙지법은 한국이 징용 피해자의 청구권까지 포함해 일본에 자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협상에 임했기 때문에 1조에서 규정한 5억 달러는 2조에서 규정한 청구권 문제의 해결에 대한 대가 내지는 보상의 성격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Q : 정부 공식 입장은 어땠나.

A : 청구권 협정 체결 직후인 65년 7월 정부가 발간한 해설서에는 “우리가 제시한 8개 항목에서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모두 (청구권이)소멸하게 되는바…피징용자의 미수금 및 보상금…한국인이 일본 정부나 일본 국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각종 청구권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소멸하게 된다”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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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 관련 문서가 2005년 일반에 공개됐다. 중앙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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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2005년 관련 외교문서가 공개됐는데.

A :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한ㆍ일 협정 체결 당시 외교문서가 공개된 뒤 꾸려진 민ㆍ관 공동위원회는 ▶위안부 문제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 ▶사할린 동포 문제 ▶원폭 피해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3억 달러는…강제동원 피해 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이 포괄적으로 감안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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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사법부 판단은 어떻게 달라졌나.

A : 징용 피해자들은 2000년 처음으로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1ㆍ2심 기각(2007~2009년)→대법원 파기ㆍ환송(2012년)→환송심 배상 판결(2013년)→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8년)→중앙지법 판결(2021년)로 이어졌다.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청구권 협정에 포함됐다며 소송을 기각해온 법원의 판단이 크게 달라진 게 2012년 대법원 파기ㆍ환송심이다. 당시 주심이었던 김능환 대법관은 “강제동원은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며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 문제가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해당 판결 직후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강제징용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포함됐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며 “위안부, 원폭 피해자, 사할린 동포뿐 아니라 강제동원된 사람에 대한 피해 보상도 청구권 밖에 있다고 본 법원의 판단은 정부 입장과 상이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2018년 대법원 판결은 2012년 김능환 대법관의 파기ㆍ환송 판결 취지와 같고, 이번 중앙지법 판결은 그간 정부 입장과 궤를 같이하는 쪽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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