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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오병상의 코멘터리]위안부 이어 징용판결까지 뒤집힌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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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강제징용피해자 소송 '각하'..일본기업 손들어줘

지난 4월 위안부 소송도 일본정부 이겨..국내외 정치변화 반영

중앙일보

7일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각하결정을 내렸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재판 후 법정 앞에서 벌인 기자회견에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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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제징용 판결까지 뒤집혔습니다. 서울중앙지법(민사합의34부)이 7일..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일본기업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은 1965년‘한일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어 이미 받았기 때문에..‘따로 청구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2.이번 판결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됩니다.

첫째,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에서, 그것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내린 결론을 1심 법원이 불과 2년8개월만에 뒤집었습니다. 매우 드문 일입니다. 대단히 확신에 찬 판결입니다.

둘째, 서울중앙지법(민사15부)이 지난 4월 21일..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일본 손을 들어준 결정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할머니들의 요구 역시 ‘각하’되었습니다. 외국 정부는 국내법원의 재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제법상 ‘국가면제’에 따른 결정입니다. 그런데 이 결정 역시 불과 석달전 같은 소송에서 할머니의 손을 들어준 다른 재판부의 판결을 정확히 뒤집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3.일본제국주의 만행을 규탄하던 판결들이 왜 줄줄이 뒤집히는 걸까요?

역사적 흐름과 정치적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발은 패전국 일본이 승전연합국(미국)과 체결한 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입니다. ‘청구권 처리는 일본과 한국간 특별협정에 따른다’고 정해졌습니다. 이에따라 한국정부는 전쟁와중인 1952년 일본과 협상을 시작합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습니다.

4.터닝포인트는 5ㆍ16쿠데타입니다. 박정희 군부정권은 미국의 인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미국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요구했습니다. 동북아 안정을 위해 한일간 화해와 협력이 필요했으니까요. 미국은 당연히 일본에도 협상타결을 종용했습니다.물론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을 위한 돈이 절박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가 1962년 11월 김종필(중앙정보부장)-오히라(일본 외무장관)의 담판입니다. 3억 달러 무상, 2억 달러 유상(차관)으로 일괄타결되었습니다.

5.청구권협정 문안을 보면 다 들어 있습니다.

‘양국 및 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

협정 직후 한국정부가 펴낸 해설서엔 더 명확히 정리돼 있습니다.

‘피징용자 미수금 및 보상금..각종 청구 등이 모두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멸케되는 것.’

6.실제로 박정희 정부는 협정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해줍니다. 청구권 신고법을 만들어 신고를 받고, 청구권 보상법을 만들어 1977년까지 모두 8만여건, 91억여원을 지급합니다.

문제는 보상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사망 실종자 중심으로 보상하면서 부상자 등이 제외되었습니다. 청구권 자금의 대부분은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등 인프라건설에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7.일제 강점기 비극이 정치판에 전면등장한 것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입니다. 노무현이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부응해..2005년 1월 한일협정 관련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반일여론을 수렴할 민관공동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희생자지원법’에 따라 추가 보상도 이뤄졌습니다.

민관공동위원회는‘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위안부)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징용피해자 보상이 불충분하다’고 선언합니다. 관련 소송이 이어졌습니다.

8.관련 소송의 정점을 찍은 판결은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 들어서 나왔습니다.

앞서 언급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결정판입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시작된 소송이 13년만에, 문재인 정부에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징용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강제징용이 불법이기에 피해자 개인과 유족의 청구권이 인정된다’는 결론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 재판을 고의로 미뤘다는 의심을 받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현재‘사법농단’피의자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9.국제법적으로 국가간에 맺은 협정은 국내법에 우선합니다. 국내법으로 국제법(협정)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국제법해석에 대한 비엔나협약이 그렇게 정하고 있습니다. 국제법적으로 식민지배가 불법인지 따지지는 않습니다. 식민이나 전쟁에 따른 청구권의 경우 ‘일괄처리협정’이 국제법상 인정받아온 관행입니다.

10.이런 우여곡절을 설명해주는 열쇠는 정치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보는 민족주의적 시선은 노무현 문재인 정권의 정치성향과 연관돼 있습니다. 그런 집권세력의 정치성향이 법원판결에 영향을 미칩니다. 문재인 정권 사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정적으로..같은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법원의 판결이 뒤집어진 건..더 큰 정치세력, 즉 미국의 영향력이 작용한 탓으로 보입니다. 5ㆍ16직후 박정희 정권에 요구했던 그대로..미국은 문재인 정권에 ‘한일관계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동북아 안정이라는 똑 같은 이유로..

〈칼럼니스트〉

2021.06.0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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