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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세월호 참사 7년 지났지만, 해경 지휘부의 '무책임' '조작'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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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무능은 형사처벌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

경향신문이 입수한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의 ‘항소이유서’를 보면, 특수단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지휘부의 무능에 법적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수단은 2019년 11월 꾸려져 해경 지휘부의 세월호 참사 구조 책임을 수사했다. 특수단은 항소이유서에서 “현장지휘세력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이를 지휘하는 피고인들의 지휘 책임이 더욱 가중되는 것이 맞다”고 전제한 뒤 사건의 본질을 해경 지휘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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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단은 “이 사건(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역량이 안 되는 현장구조세력을 투입하고도 그들에게 구조 책임을 모두 미루며 상황을 방치한 채 실질적인 지휘없이 보고만 받고 있었던 해경 지휘부의 무능력한 대처이고, 이러한 무능함과 무책임함이 바로 해경에게 요구되는 고도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업무상 과실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특수단은 2020년 2월 해경 지휘부 10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1심에서 10명 전원 무죄가 나왔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피고인이 자신에게 부여된 주의의무를 위반해 피해자들의 사망과 사상으로 이어졌을 때 적용한다. 성수대교 붕괴 당시 공사 감독 공무원, 흡입 독성이 있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 책임자에게 적용된 혐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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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2일 열린 국회 세월호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과 간부들이 의원들의 질타에 굳게 입을 닫고 있다. |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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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양철한)는 지난 2월 15일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책임이 있던 해경 지휘부 10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하면서 해경 지휘부에 형사책임을 물을 만한 업무상 과실은 없다고 봤다. 해경 지휘부의 관리책임 부실에 관한 질책을 넘어 구체적인 구조업무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해경 지휘부가 ‘사정상 세월호 선내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거나 ‘가정적 상황을 어디까지나 예측하긴 어려웠다’고 봤다.

특수단은 해경 지휘부의 ‘적극성 부족’으로 1심 재판부 논리를 반박한다. 상황을 몰라 대처를 못 한 게 아니라 적극적이지 않아서 상황을 모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구조지휘에 실패했다는 논리다. 항소이유서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승객 퇴선 여부를 파악했어야 했다”, “(퇴선 유도)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더욱 적극적으로 파악했어야 했다”, “세월호와 (현장에 출동한 구조정이) 교신이 되고 있지 않다는 바로 그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아무런 사실 확인도, 조치도, 지시도 내리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상황을 방기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1심에서 무능이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해경 지휘부의 모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간경향은 특수단에서 조사를 받은 해경 지휘부의 진술조서를 입수했다. 일부 조서는 재판에서도 공개됐다. 조서를 교차해 분석한 결과, 세월호 참사 이후 7년 넘게 규명되지 않았던 의혹이나 해경 지휘부의 거짓말이 사실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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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균 전 해경청장이 지난 2월15일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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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드러난 거짓말

세월호 최초 조난신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에 들어왔다. 해경은 줄곧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이 오전 9시 5분에 보고를 받은 뒤, 오전 9시 10분에 본청 상황실 내 중앙구조본부(위기관리실)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해경은 청장 입장과 동시에 중앙구조본부가 가동돼 구조지휘를 했다는 논리를 폈다. 중앙구조본부는 상설 조직이지만 보통 비상시 구성·운영된다. 2014년 검찰수사나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같은 답변을 했다. 김석균 전 청장은 2016년 12월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9시5분에 (첫)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늑장 대응’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짙었다.

재판 과정에서 김석균 전 청장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 28분 해경 본청 중앙구조본부에 들어온 사실이 명확해졌다. 김석균 전 청장이 최초 보고를 받은 시각은 오전 9시 24분(혹은 오전 9시 19분)으로 추정된다. 해경 지휘부나 일선 직원들은 검찰조사에서 ‘9시 10분’ 김석균 전 청장 중앙구조본부 입장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임모 당시 해경 상황담당관은 과거 진술까지 바꿨다. 그의 진술조서를 보면 “2014년 8월 11일 검찰에서 진술할 때는 보고를 받은 후 즉시 해경청장실로 간 것처럼 진술했는데, 사실은 (중략) 물리적으로 오전 9시 10분은 넘은 것 같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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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해경 지휘부 ㄱ씨의 진술은 김석균 청장만이 아니라 국장급 이상 간부들의 ‘지휘 공백’을 보여준다. ㄱ씨는 특수단 조사에서 “상황보고서 2보에 ‘09:10경 중앙구조본부 설치’라는 취지의 문구가 들어가서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09:10경에는 저만 상황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때였고, 그 전에 상황실에서 수색구조과 등에 전화를 걸어서 각 담당 부서에서는 여객선 침몰 사실을 어느 정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해경 본청에서 국장급 이상의 간부들은 아무도 세월호가 침몰한지 몰랐다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ㄱ씨의 진술에서 가리키는 ‘상황보고서’는 세월호 참사 당일 작성됐다. 이 보고서를 해경이 의도적으로 수정한 정황도 발견된다. “그건 나중에 수색구조과 쪽에서 오전 9시 10분쯤 중앙구조본부가 구성된 것으로 전파하라는 지시가 있어 2보에 (1보에 없던) 그 내용을 삽입한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중앙구조본부가) 구성됐다는 오전 9시 10분보다 많이 지난 시간이어서 제가 속으로 ‘왜 시간이 지났는데 9시 10분으로 거슬러서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해경 직원 ㄴ씨)는 진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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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이 ‘김석균 전 청장 상황실 입장=중앙구조본부 가동=오전 9시 10분’이라는 구도에서 움직였던 이유는 ‘빠르게 움직였다’며 도의적 책임을 덜기 위해서였다. 2019년 검찰의 재수사 이후 국면이 묘해졌다. 김석균 전 청장이나 일부 해경 지휘부 입장에선 ‘보고를 받기 전까지 몰랐다’는 전제 아래, 오전 9시 10분이 아닌 오전 9시 28분 이후에 구조지휘 책임이 부여됐다고 주장하는 게 법적 책임을 줄이기 유리했다. 김석균 전 청장은 재판에서 오전 9시 28분 상황실 입장을 인정했다.

■문건에도 허위사실 기재

김석균 전 청장이 오전 9시 28분 상황실 입장을 인정하게 되면서 해경 지휘부가 결재한 문건에 허위 사실이 포함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중앙구조본부가 가동된다면 청장이 상황실에 임장(臨場)한 것을 전제로 하는 것”(해경 직원 ㄷ씨)이라는 진술을 따라가 보면, ①김석균 전 청장의 오전 9시 10분 상황실 입장 ②오전 9시 10분 중앙구조본부 가동을 적시한 해경 문건은 허위사실을 담은 공문서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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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7주기를 닷새 앞둔 지난 4월11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유가족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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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의 2014년 5월 문건인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에는 ‘해경청장에게 처음 보고된 시간과 상황실 임장시간’에는 ‘09:10분 상황실에 있는 위기관리 회의실 임장’이라고 쓰였다. ‘09:10 해경청, 중앙구조본부 설치(해경청장 주관)’라는 문장도 적혀 있다. 2014년 국회 국정조사에 대비해 해경 내부에서 만든 문건이다. 특수단이 수사과정에서 입수한 해경의 ‘초동조치 및 수색구조 쟁점(2014년 5월 30일)’을 보면, ‘본청에 중앙구조본부 설치 후 현장과 가까운 서해청에 중앙구조본부 설치·운영’이라고 쓰여 있다. ‘설치 후’와 ‘현장과’ 사이에 손글씨로 ‘(9:10)’을 넣은 흔적도 보인다. 이 문건은 “최종적으로 김석균 청장 등에 보고하고 결재를 받은 후에 보고를 했다. 최소한 5~6회 정도는 팽목항에 내려가 회의를 했다”(여모 당시 해경 해양경비과장)는 진술처럼 김석균 전 청장 등 해경 지휘부의 논의를 거쳐 결재됐다. “(국회 국정조사 답변자료를) 김석균 전 청장과 5~6회 독회를 했다. (중략) 문구를 수정하는 경우 및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관계를 추가로 확인하라는 지시를 청장이 내린 적이 있었고, 직접 내용을 수정한 경우도 있었다”는 해경 인사의 진술도 나왔다.

“별안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약 한두시간 정도 사이에 ‘09:10 중앙구조본부’라는 문구를 넣으라는 지시가 있었고, 짐작하건대, 청장이나 국장선까지 회의가 없었다면 위 문구가 들어갈 수 없을 것”(해경 직원 ㄷ씨)이라거나 “해경의 여러 대응 문건에서 청장이 주관하는 중앙구조본부가 09:10경 가동됐다고 작성됐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거짓이라고 한들 오히려 묻히는 분위기였다.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가 아니었다”(해경 직원 ㄹ씨)는 진술도 이어졌다. 김석균 전 청장은 2019년 12월 SBS와 인터뷰에서 “나중에 실무자가 만든 문건을 보고 9시 5분에 보고받았다고 인식한 거지 조작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자신의 세월호 참사 당일 동선을 다룬 수차례 내부 회의를 거친 김석균 전 청장이 실제 첫 보고·상황실 입장 시간을 착각했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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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균 전 청장이 참사 당일 오전 9시 28분에 상황실에 입장했다고 해서 해경 지휘부의 구조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현장에 있던 해경 인사는 모두가 우왕좌왕했던 당시 상황실 모습을 증언했다. “(본청) 상황실 안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웅성웅성거렸고, 파트별로 대응할 수 있는 직원들을 지정해서 맡겨야 하는데도 전담업무 매뉴얼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본청 상황실은) 우왕좌왕하는 분위기였고 제대로 상황실 전체가 통제되지 않았다”(해경 지휘부 ㅁ씨)는 진술은 해경 지휘부가 상황실 통제에도 무력했음을 보여준다.

이 인사는 해경 지휘부의 구체적 업무분장과 지시가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진술했다. 그는 “당시 상황실 요원들이 TRS(해경 주파수공용통신)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코스넷(문자방) 화면이 금방 넘어가버려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으로 안다. (중략) 상황실 요원들은 정신이 없어 교신을 놓칠 수가 있었으므로, 지휘부에서 TRS나 코스넷 전담 요원을 지정해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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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18일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에서 간판 시공업자들이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의 책임을 지고 창설 61년 만에 해체된 해경 간판을 철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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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무책임했다

특수단 조사 과정에서는 해경이 구조 실패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추가 정황들도 보인다. 책임 있게 구조에 나선 해경 지휘부는 드물었고, 매뉴얼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 사실이 확인됐다.

조모 당시 목포해양경찰서 상황담당관은 검찰조사에서 “저는 구조세력만 많이 보내면 모두 구조가 될 줄 알았다. 구조세력만 보내면 될 것으로 인식하고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123정이 현장 지휘관이어서 현장에 대해서는 잘 판단할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검사가 “오전 8시 58분경부터 약 1시간 동안 세월호 선내 상황 등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고 했는데 사고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 조치가 무엇이 있는지” 묻자 내놓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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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 전 목포해양서 상황담당관은 당시 경비구난과장 직무대리도 맡았다. 일선에서 상황대책팀을 총괄하는 임무가 부여됐다. 그는 검사가 규정된 상황담당관 임무를 언급하자 “너무 포괄적인 것 같은데, 규칙이 있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해상수색구조 매뉴얼’을 만든 해경 인사가 세월호 참사 당시 임무조정관(SMC)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답한 사실도 확인됐다. 임무조정관은 해상사고 발생 시 수색구조 활동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는다. ‘주변해역 대형해상사고 대응 매뉴얼’이나 ‘2014년도 수난대비 집행계획’에는 임무조정관을 해경 경비안전국장이 맡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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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세월호 참사 당시 임무조정관은 누구였는지” 질문하자 해경 인사 ㅂ씨는 “제가 (해상수색구조) 매뉴얼을 만들기는 했지만, 저도 임무조정관이 누가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곳저곳의 규정들을 참조해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만들고 보니 저도 임무조정관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해상수색구조 매뉴얼에 임무조정관의 업무 규정은 나와 있지만, 누가 임무조정관을 맡을지는 설정해놓지 않았다. 대형 해상사고 시 신속한 대응과 업무분담을 위해 임무조정관 지정은 필수다. 해상사고 발생 시 구조지휘 책임자를 규정하지 않은 ‘부실한’ 매뉴얼임을 자인한 셈이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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