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이 판매되고 있다. 조 전 장관의 책 오른편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다룬 책 <윤석열의 진심>이 함께 판매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어렵게 구했다. <조국의 시간>. 첫날 서점구매는 실패했다. 예약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발간 이튿날에야 구할 수 있었다.
회사로 돌아오면서 읽기 시작했다. 일을 해야 하는데,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조 전 장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충남 부여 하천부지 농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4대강 사업 국정원 개입 기사를 썼다.(2009년 5월 26일, ‘국정원 4대강 정비사업 개입했다’ 기사 참조)
당시 국정원은 “농민들이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의견을 청취하러 간 일로 국정원의 직무범위 내에 이뤄진 적법한 일”이라며 기자와 경향신문사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했다. 조국 당시 서울대 법대교수는 기사에 대한 코멘트로 “국정원 직원의 직무를 규정한 국정원법 3조는 국외 및 국내 보안정보로 한정하고 있는데, 법에 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으로 한정되어 있다”라며 “4대강 사업 개입은 국정원 직무범위를 넘어선 불법행위”라고 확인해줬다. 조 전 장관과의 교류는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시국현안에 대한 그의 의견을 여러 차례 청취할 수 있었다. 2018년 마지막 날, 조 전 장관은 여의도에서 새해를 맞이해야 했다. 자정을 넘어 새벽 2시 가까이 국회 운영위원회 참석한 그는 야권의 파상 공세에 맞섰다. 새해 1월 2일, 조 전 장관은 2시간 가까이 이뤄진 통화에서 여러 이야기를 꺼냈다. 조 전 장관의 워딩을 중심으로 ‘조국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 기사를 썼다.
청와대에 있을 당시, 조 전 장관은 기자와 통화를 할 때마다 “민정수석을 마치면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곤 했다. 페이스북 대문에도 ‘Homo Academicus’라는 말을 올려뒀다. “천생이 서생(書生)인 자신은 정치와 맞지 않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조국의 운명’을 제목으로 커버스토리 기사를 쓸 때 지금과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몰랐다. 아마 그도 몰랐을 것이다.
조 전 장관과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딸의 생일 하루 뒤, 케이크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의 뒷모습 사진’이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한 것이었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다.
위리안치(圍籬安置). 책 거의 끝부분에 언급한 그의 현재 심정이다. 책 광고 카드뉴스 등에도 쓰인 말이지만 설명이 없다.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두던 일’이라고 책에는 적혀 있다. “사방에서 날아와 온몸에 깊숙이 박힌 무수한 화살을 하나씩 뽑고 상처를 꿰매며 살고 있다”고 그는 책에서 밝혔다.
“저를 밟고 전진하십시오.” 6월 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조국 전 장관의 사과와 관련해 조국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민주당은 이제 저를 잊고 부동산, 민생, 검찰, 언론 등 개혁 작업에 매진해주시길 바라마지 않는다”며 자신은 “공직을 떠난 사인(私人)으로, 검찰의 칼질에 도륙된 집안의 가장으로 자기방어와 상처 치유에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쉽지 않다. 송 대표가 법률 문제와 자녀 입시 문제를 나눠 ‘조국 문제’를 거론했지만 당장 당내 비판에 휩싸였다.
강성 지지층들은 당대표 사퇴와 탄핵까지 거론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입장도 하나로 모아지기는 쉽지 않을 양상이다.
밟고 전진하라고 했지만 조국 문제는 벽이고 늪이다. 책 서두에 언급한 ‘가족의 피에 펜을 써내려가는 심정’이라는 비유를 원용하자면 피가 고여 있는 웅덩이고 늪이다. 반대편에서는 그냥 악취가 나는 오물 구덩이로 본다. 딜레마이자 늪이다. 외면할 수도, 외면하지 않을 수도 없는.
■ 민주당의 뜨거운 감자 ‘조국 문제’
시사평론가·정치전문가들의 생각도 엇갈린다.
4·7 재보궐선거 직후 민주당의 ‘반성’은 불가능할 것으로 꼽았던 이원재 카이스트대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그 핵심근거로 ‘조국 문제에 대한 바뀌지 않은 입장’을 꼽았다. 6월 2일 통화에서 그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권 내부의 다이내믹스”라고 말했다. 그는 “조국 문제는 (그의 일가를 단죄한) 윤석열의 문제가 아니라 이재명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거슬러 올라가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 내부를 보면 이재명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던 스피커들이 있었다. 민주당 내의 이재명과 반이재명이 연합하게 된 계기가 조국 문제에 대한 입장이었다. 다시 말해 이재명을 중심으로 갈려졌던 민주당이 조국 때문에 합쳐졌는데, 이재명으로선 조국을 안고 대선에 나갈 수는 없다.”
당내의 다른 대권주자 이낙연·정세균은 세가 불리하기 때문에 안고 가지만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으로서는 조국 문제에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중도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조 전 장관이 낸 신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국 문제가 처음 제기됐던 2019년 하반기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민주당은 지지율 10% 하락은 감내하면서 정면돌파한다는 입장이었다. 그후 대통령 지지율을 보면 30%와 40%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그 차이는 총선결과와 보궐결과로 극명하게 쏠려 나타났다. 찰랑찰랑하던 지지율이 선거제도 덕분에 그렇게 확 넘어간 것이다.”
그는 조국 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2030의 시각을 차기 대권주자들이 없는 셈치고 넘어가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2030의 인구수는 적지만 투표는 적극적이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여론몰이를 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민주당에는 아직도 핵심지지층을 형성하는 40~50대가 있지만, 지금의 2030은 과거처럼 ‘키보드 워리어’로 취급하고 넘어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현재의 이준석 돌풍까지 이어지는, 찰랑찰랑의 ‘찰랑’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깨달은 것이다.”
반면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재보선 이후 ‘조국 때문에 졌다’는 프레임은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라며 “조 전 장관의 자녀들이 진학에서 실제로 아빠찬스·엄마찬스를 썼는지는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를 당하고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했다. 그는 “현재의 ‘조국딜레마’ 상황은 윤석열과 보수매체의 괴벨스 전략에 한·경·오와 같은 진보매체가 부화뇌동하며 벌어진 것”이라며 “정면 돌파해야 할 민주당의 전략 부재 상황이 지금의 딜레마 국면을 낳았다”고 덧붙였다.
“조국 장관 임명장 수여 1주일 전쯤에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총선 관련으로 월 1회씩 발제하는 자리가 있었다. 아마 10월 3일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참석한 민주당 인사 중에 검찰 중견간부 출신이 있었다. 현역 의원 발제가 끝나면 한시간씩 자유토론이 오가는데 ‘조국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를 주제로 걱정스러운 이야기가 오갔다. 그때 그분이 검찰 출신이니 당연히 핫라인이 있어 다른 의원보다 정보가 밝을 수밖에 없다. 그의 말에 주목했다. 그 의원은 ‘표창장이나 다른 것은 모르겠고 사모펀드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조국도 구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이 판을 상식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8월 9일부터 검찰이 움직였는데, 여야가 청문회에 합의한 날에 압색을 쳤다. 표창장 같은 것은 모르겠고, 윤석열이 ‘사모펀드는 내가 많이 수사해봐서 안다’며 확증편향을 가지고 한 수사인데, 결과는 어땠는가. 10월 3일이면 조국 논란이 시작된 지 한달 이상이 지났는데, 결정적인 스모킹건이 있으면 언론에 흘리든 어떤 형태든 검찰은 깠을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사모펀드 부분은 이미 무죄였다. 당의 핵심지위에 있는 사람들조차 검찰의 여론전에 당한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오른쪽)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월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 포럼’ 창립총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이재명의 침묵, 중도층 의식한 것?
“이재명의 침묵은 영리한 것이다. 민생도 얻고 친문도 자극하지 않으려 침묵하는 것이다. 이낙연·정세균의 정치스타일을 보면 사실 조국 문제의 대두를 반기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서는 것은 경선에서 당원 표를 의식하는 것이다. 결국 조국이 대선주자들을 가둬두는 것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그는 <조국의 시간> 발간과 관련 페이스북에 “조국은 윤석열을 향해 폭탄을 던졌는데, 그 폭탄은 민주당에 떨어진 것 같다”고 적었다. 그는 “민주당의 스텝이 꼬여버리는 것이다. 가까스로 봉합돼 가고 있는 것을 다시 조국을 둘러싼 갈등을 표면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분명 지금 시점에서 책 발간이 민주당에 부담될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 자기 생각만 하고 민주당에 돌아갈 부담은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연구위원도 조 전 장관이 이 시점에 책을 낸 이유가 6월 민주당 예비경선을 앞두고 ‘대선을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메시지다. ‘이재명으로는 정권 재창출하기 어렵다. 친문 중심으로 결집해 친문주자를 만들어야 한다. 야권주자 윤석열을 침몰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순교자가 되겠다.’ 당연 조국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당내 친문지지자들의 목소리는 높아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메시지다. 친문이 결집해 궐기하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지독한 아이러니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프레임을 만든 것이 조국인데, 정치 바깥의 사인이라며 정치도 말아먹고 민주당도 말아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김성순 시사평론가는 “두드려 맞아야 하는 것은 민주당의 핵심권력을 쥐고 있는 386 인사들의 도덕적 타락인데, 조국과 조국 가족이 십자가를 메고 멸문지화를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386의 자녀들 자체가 귀족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386의 대표인사 자녀가 다 변호사이고 의사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자기 애들이 귀족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본인들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버렸는데 20대가 뚜껑 안 열리겠는가. 그런데 이들이 한국사회의 신귀족, 기득권이 됐다는 것을 본인만 인정하지 않는다. 기사 두고 고급차 타고 다니면서 여전히 자신은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아니, 30년 전에 떠들던 소리가 있지 않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물질적 환경이 생각을 규정하는데 자기만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걸 위선이라고 보지 않는다면 뭘 위선이라고 보겠나.”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도 “지금의 전반적인 민심은 진보정권의 무능, 내로남불에 방점에 찍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조국 이슈는 20~30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구도이기 때문에 이슈가 제기되면 될수록 윤석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사회에서 정치권과 재벌 문제에 천착해온 심정택 작가는 “이 시점에서 조국의 등장은 ‘카운트파트너’로서 윤석열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윤석열은 정체성도 불명하고 정책 이전에 콘텐츠가 뭔지도 불명확한 존재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스스로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와 같은 존재다. 조국 문제는 출발점이 같지 않은 공정의 문제였다. 이 점에서는 윤석열도 예외일 수 없다. 그는 평범한 공무원 출신이 아니다. 적어도 수십 년간 장모가 부동산으로 축적한 돈으로 좋은 집에 살면서 잘 먹고 잘산 것은 사실 아닌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가운데)이 지난 5월 29일 강원 강릉시의 한 식당에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오른쪽)을 만나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독자제공·경향자료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조국 “윤석열, 정의·공정 화신 아니다”
조 전 장관은 앞의 책에서 ‘나를 밟고 전진하시길 바란다’면서도 다음과 같은 단서조항을 달았다.
“다만, 나에 대한 비판이 검찰에 대한 맹목적 옹호나 윤석열 총장에 대한 숭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경고한다. (…) 일부 진보진영 사람들이 나에 대한 비판을 넘어 검찰 또는 윤석열 개인을 ‘정의와 공정의 화신’으로 파악하고 동조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를 ‘기득권 세력’이라고 단순화시키다 보니,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검찰에 부화뇌동한 것이 아닌가.”
조 전 장관의 신간에 대해 그와 그의 가족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아직까지 공식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재명 지사 측은 “조국 문제에 대한 입장발표를 당대표가 내놨기 때문에 당의 입장을 존중한다”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논쟁보다는 실제 존재하는 여러 불공정 사례에 대해 어떻게 좋은 정책과 해법을 만들고 제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이 지사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알림] 경향신문 경력사원 모집
▶ 경향신문 프리미엄 유료 콘텐츠가 한 달간 무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