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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실권이 없었고,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실세였다는 점이 미국 정부의 문서를 통해 다시 확인됐습니다.
오늘(2일) 미 국무부가 외교부에 전달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외교문서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후 본국에 긴급 타전한 '서울에서의 탄압'이란 제목의 전문도 포함됐습니다.
이 전문은 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로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전두환에 대해 "군부 내에서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시 전두환의 계급은 소장에 불과했지만 군부의 실세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반면 최규하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결정 과정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며 '무기력한 대통령'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해당 전문은 1990년대 중반 기밀 문서에서 해제됐지만 전두환과 최규하에 대한 이런 기술은 가려져 있다가 이번에 빠진 부분 없이 모두 공개된 것입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서 고립된 상황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규하 대통령뿐 아니라 주영복 당시 국방부 장관도 실권이 없음을 솔직하게 밝힌 내용이 1980년 1월10일 주한 미 대사관 문서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12·12 사태 후 국방부 장관이 된 주 장관이 방한한 레스터 울프 미 하원의원으로부터 '우리는 한국군의 안정을 바라며 지휘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당신을 돕겠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군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이 문서에 고스란히 담긴 것입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12·12사태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한 군부 세력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며 "실질적 지휘체계가 12·12 이후 형성됐다"고 말했습니다.
미 정부가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에게 경계심을 보이면서도 실세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처한 정황도 외교문서에서 확인됩니다.
1978년 7월 26일 신임인사차 중앙청을 예방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美 대사와 환담하는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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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가 1980년 3월13월 작성한 문서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전두환 간 면담 내용이 담겼는데, 국무부는 "전두환이 이번 만남을 올리브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그의 높아진 위상을 수용하고 당신(미 대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전두환이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국무부가 지적한 것"이라며 "전두환과 접촉하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미국 정부의 메시지도 계속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공개는 5·18 관련 진상규명을 위해선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가 필요하다는 시민단체와 학계의 의견에 따른 우리 정부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하면서 이뤄진 것입니다.
정부는 미국에 모두 문서 80건의 공개를 요구했는데, 작년 43건에 이어 이번에 14건이 공개됐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나 지휘체계에 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내용은 국무부가 아닌 미국 국방부나 한미연합사령부 등 군 기관이 보관하는 문서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이 아직 23건의 문서를 공개하지 않은 것도 정치적 파급력이 큰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나머지 23건은 미국 정부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준다면 공개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김혜영 기자(kh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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