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미국 정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전후에 당시 주한 미국 대사관과 미 국무부 간에 오갔던 외교문서 14건을 공개했다. 외교부는 2일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5.18 민주화운동 관련 비밀해제된 미측 문서 사본 14건을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14건의 문서들에 대해 지난 5월 31일 기자들과 만난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국무부 문서이기 때문에 당시 광주 진압 작전이나 발포 명령을 내린 주체, 암매장 등의 내용은 없고 5.18을 전후로 한 정치적 상황들이 주로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2일 공개된 문건의 주요 내용으로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레스터 울프 미 하원 아태 소위원장의 면담이 있다. 1980년 1월 10일에 주한 미국 대사관이 생산한 이 문서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12.12 사태는 불행한 일이지만, 갈등이 마무리되고 군 통수권 및 지휘체계 안정됐다고 밝혔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같은 날 주한 미국 대사관이 주영복 당시 국방부 장관과 울프 소위원장 간 면담과 관련해 생산한 문서에는 울프 소위원장이 한국 군부의 안정과 정치 발전을 위해 주 장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자, 주 장관은 본인은 군을 통제할 실권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1980년 3월 13일 미 국무부에서 생산한 문서에는 전두환에 대한 미국의 딜레마적 입장이 나타나 있다. 당시 미 국무부 차관은 한국 군 내부의 갈등이 지속되고 안정되지 않는 한 6월로 예정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개최를 연기해야 한다며, 이같은 입장을 실권자인 전두환에게 전달해야 할 필요성을 밝혔다.
하지만 국무부 내에서는 주한 미국대사 글라이스틴과 전두환의 3월 5일 이뤄진 면담이 전두환으로 하여금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직접 접촉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 미 정부가 2일 공개한 5.18 관련 외교문서. 위 문서는 '한국 군부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군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에 대한 미국 내의 입장이 나와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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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됐을 때, 당일 생산된 주한 미국 대사관의 문서에서 미국은 군부가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그 선두에 전두환이 있다고 적시했다. 다만 집단적인 쿠데타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며 '신군부'라고 하는 세력들이 형성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미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막지 못한 최규하 대통령에 대해 'helpless(무력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5.18 위원회 관계자는 "이 부분은 지워져 있었는데 이번에 공개됐다"고 밝혔다.
5.18 이후 이뤄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재판과 관련한 문서도 공개됐다. 1980년 7월 23일 생산한 주한 미국 대사관의 문서에는 당시 사건과 관련된 수감자들에 대한 가족 접견이 제한되고 김대중은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박동진 당시 외무부 장관은 변호하겠다고 나서는 변호사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1980년 8월 5일 생산한 주한 미국 대사관 문서에는 박동진 당시 외무부 장관이 국제 엠네스티, 국제 법학자위원회 같은 단체에서 재판을 참관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박동진 당시 장관은 이들이 재판을 편향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참관을 반대하며, 두 명의 외국 기자에 대해서만 재판의 전 과정을 취재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이 공개한 문건에 대해 외교부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2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인계 후 기록관 웹사이트에 공개된다"며 "정부는 앞으로도 5.18 민주화운동 관련 미측 문서의 추가적인 비밀해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미측과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외교부는 "작년 5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계기 비밀해제된 미측 문서 43건을 전달 받은데 이어, 올해에도 추가 문서의 비밀해제를 위해 그간 미측과 긴밀히 협의를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미 정부의 이같은 공개 결정에 대해 지난 5월 31일 기자들과 만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최초라는 점에도 의의가 있다"며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임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가치 수호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기로 했으며, 이것이 문서 해제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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