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부 인사들 고초겪는 '인세인(insane) 교도소' 조명
"불로 지지고 전기충격···사소한 규칙도 어기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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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내 모든 교도소는 인간이 만든 지옥이다."
미얀마 쿠데타에 저항운동을 벌이는 반군부 인사들이 양곤의 인세인 교도소에 속속 끌려가 고초를 당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그 악명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31일 이 교도소의 전직 간수 및 재소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인세인 교도소의 실상을 고발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인 134년 전에 지어진 이 교도소는 1962년부터 2011년까지 반세기 넘는 군부 독재 시절에는 열악한 환경과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다. 지난 24일에는 출국 직전 공항에서 체포된 독립 언론 '프런티어 미얀마'의 편집주간인 미국인 대니 펜스터가 이 교도소로 끌려갔다.
수천 명의 정치범이 한꺼번에 수용돼 원시적인 하수 시설에다 얇은 담요와 딱딱한 땅바닥이 전부인 감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식사는 모래와 작은 돌멩이가 섞인 쌀처럼 먹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정치범들은 폭행은 물론 불로 지짐을 당하기도 했으며 전기 충격을 받고 개집에 갇힌 채 지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거나 정신을 잃을 때까지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운 일도 있었다.
미얀마 시위를 취재하다 체포돼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됐다 거의 한 달 만에 풀려난 일본인 프리랜서 언론인 기타즈미 유키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수감 당시 정치범들이 눈이 가려진 채 마구 두들겨 맞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고 자신에게 털어놨다고 전했다. 며칠간 음식을 먹지 못한 적도 있다면서 군부 쿠데타 이후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외부에 알려달라고 그들이 간청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인세인(INSEIN) 교도소가 영어로 '미친'이라는 뜻을 가진 인세인(insane)으로 발음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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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1995년 군부 정보국이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을 밤낮으로 불러내 고문했다”면서 "족쇄가 채워진 채 두들겨 맞았는데, 가끔은 정신을 잃을 때까지 구타가 계속됐다"고 밝혔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도 2003년과 2009년 두 차례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됐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2015년 수치 집권 이후 인세인 교도소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재소자들은 TV를 시청할 수 있었고, 책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쿠데타 이후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현재까지 4,300명 이상이 체포 및 구금됐는데, 이 중 상당수가 양곤의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됐다. 적정 규모인 5천명의 두 배가 넘는 1만3,000명이 현재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감자들은 감방에서 나올 수도 없고, TV는 군부가 지정한 채널만 시청이 허용된다. 교도소 내 군법 회의는 재소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2019년 군부 장성들을 조롱했다가 인세인 감옥에 수감 중 쿠데타를 맞은 풍자시인 파잉 예 뚜는 교도소 환경이 하룻밤 사이에 악화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사면으로 석방된 그는 신문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총상을 입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체포돼 바로 교도소로 보내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인세인 교도소에서 두 차례 수감된 적이 있던 AAPP 공동 창립자 보 찌는 신문에 "수십 년 전보다 지금 더 정치범이 더 많이 수감돼 있다"고 말했다.
1986~1987년 인세인을 포함해 교도소에서 25년간 간수로 근무한 킨 마웅 민은 신문에 미얀마에서 정치범들은 사소한 수칙 위반으로도 종종 고문을 당한다고 증언했다. 그는 "신문 조각 하나라도 감방 안에서 발견되면 교도소측은 그 죄수를 고문했고, 담당 직원은 해고했다"고 말했다.
2007년 민주화 운동 '사프론 혁명'을 이끌던 인사 중 한 명인 감비라는 인세인 교도소를 포함해 6년 이상의 수감 기간 중 친구 및 형제들이 간수들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현재 호주에 거주 중인 그는 "간수들이 내 눈앞에서 그들을 치고 군홧발로 찼다"면서 "내 동생은 앞니 두 개가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인세인 외에도 미얀마 내 여러 교도소에서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자신도 캄티 교도소에서 수감자 권리를 요구했다가 간수들이 약물을 주입해 극심한 통증과 함께 몸이 극심하게 떨리는 증상을 경험했고 결국 해독제를 맞고서야 진정됐다고 회상했다.
/김경림 기자 forest0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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