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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살인의 전조 스토킹]③ 이제 스토킹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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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더 기승…지난해 온라인 스토킹 경험 비율 '2배'로 뛰어

물리적 거리 뛰어넘는 스토킹 가능해져…살인 등 심각한 범죄 '전조' 되기도

10월 시행 스토킹처벌법, 온라인 스토킹 처벌하기엔 "미흡" 지적

연합뉴스

최한별 씨가 스토커로부터 받은 메일
[최한별(가명·25)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내년에도, 3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계속 당신을 갈망할 겁니다."

"당신 외의 인간들은 어떻게 되든 관심 없습니다."

"혹시 웨딩드레스를 입게 되면 사진 좀 보내주실래요? 정말 아름답겠네요."

언뜻 보기에 달콤한 사랑 고백 같은 말들이다. 하지만 최한별(가명·25) 씨는 이 문구들을 읽으면 숨이 턱 막힌다. 모두 스토커로부터 받은 이메일에 적혀있던 말들이다. 최 씨는 만나본 적 한번 없는 이 남성으로부터 7년째 집요한 집착과 구애의 메일을 받고 있다.

최 씨가 스토커 A를 알게 된 것은 2013년 최씨가 운영하던 작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였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친절한 인상을 주던 그가 스토커로 돌변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가 던진 성적 농담에 최 씨가 불쾌감을 표시하자, A는 스토커로 돌변했다.

A는 최 씨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최 씨 집 근처 지하철역까지 찾아왔다. 이후 '어느 역 근처에 사는지까진 알아냈어'라는 메시지와 함께 지하철 역사를 촬영해 보냈다. 최 씨를 사칭한 SNS 계정을 개설해 최 씨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7년 동안 A가 최씨에게 전송한 스토킹 메일은 1천 통을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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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받은 메일만 1천 통 이상…집요한 온라인 스토킹
[최한별(가명·25)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의 스토킹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최 씨는 2015년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은 후 지금껏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 모든 SNS에서 탈퇴하고 카카오톡까지 지운 채 해외에서 유학 중이다. 하지만 "그가 찾아오진 않을까, 집 앞에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고, 모르는 남자가 말을 걸면 큰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다.

◇ 코로나19, '스토킹의 온라인화'를 재촉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최 씨 사례와 같은 온라인 스토킹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면서 온라인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전통적 스토킹 못지않은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한민경 경찰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 유형은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근처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휴대전화·SNS·이메일을 통해 연락하는 행위(온라인 스토킹)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온라인 스토킹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교수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선고된 법원의 1심 판결문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스토킹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사건 148건 중 온라인 스토킹이 발생한 비율은 무려 109건(70.9%)에 달했다.

한 교수는 "요즈음 스토킹 사건은 현행 처벌 법규 가운데 '정보통신망법 위반'이 가장 많이 적용된다"며 "이는 지리적으로 피해자와 가깝게 있지 않더라도 휴대전화나 SNS, 이메일 등 정보통신기술을 악용해 계속해서 괴롭힘을 가할 수 있는 오늘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지난해부터 '언택트 사회'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 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은 온라인 스토킹이라는 '언택트 스토킹'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결과를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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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스토킹·신상정보 유출 피해 경험율
[제작 정유민 인턴기자]



이는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전국의 20∼50대 성인남녀 1천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2018년 22.2%였던 온라인 스토킹 피해 경험 비율은 2019년 26.3%로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조사에서는 온라인 스토킹 피해 경험률이 42.3%에 달해 무려 2배 가까운 수준으로 뛰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기존의 오프라인 스토킹이 온라인 스토킹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자신들의 분노와 좌절감을 비대면·온라인 방식의 스토킹으로 표출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온라인 스토킹의 심각성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스토킹이 심각해봤자 얼마나 심각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뤄지는 전통적 스토킹과 달리 온라인 스토킹은 물리적 거리의 제한을 받지 않기에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물리적 거리 뛰어넘은 스토킹 가능해져…심각한 범죄 '전조' 되기도

"스트레스 받아서 정말 죽고 싶어요."

해외에서 유학 중인 B씨는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온라인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다. B씨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한 전 남자친구가 전화, 이메일, 문자, SNS, 블로그 등 B씨와 연락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다시 잘 지내보자", "제발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집요하게 연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차단도 해보았지만, 전 남자친구가 B씨에게 연락하기 위해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만 90개가 넘는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요즘 세상에서 전 남자친구는 자신의 집착과 욕망을 더욱 끈질기고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온라인 스토킹'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

온라인 스토킹은 물리적 거리의 제한을 뛰어넘게 한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하지만, 흉악한 범죄의 '전조(前兆)'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경계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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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 범죄의 '전조' 스토킹(PG)
[이태호 제작] 일러스트



"네 어머니를 죽여서 너를 자살시킬 거야."

지난 3월 12일 인터넷에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20대 BJ C씨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 꾸준히 찾아와 6개월 넘게 구애하며 집착을 보이던 한 남성 팬이 '넌 내 여자여야 하는데 그게 내 뜻대로 안 되니 네 어머니를 죽이겠다'며 구체적인 살인 계획을 밝힌 글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남성은 C씨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가방에선 칼 세 자루가 나왔다. 그는 경찰에서 "C씨의 주변 사람을 죽이면 C씨도 자살하리라 생각해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극악무도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온라인 스토킹이지만, 그 심각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족하기에 처벌 법규가 아직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는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으로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전문가들은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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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교묘해지는 온라인 스토킹
[연합뉴스TV 캡처]



◇ "온라인 스토킹, 강력한 처벌 가능하도록 법규 보완해야"

가장 큰 문제는 온라인 스토킹의 수법이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악랄해지지만, 스토킹처벌법에서는 매우 좁은 범위의 행위만 온라인 스토킹으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스토킹처벌법은 '우편·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글·말 등을 도달시키는 행위'만 처벌 가능한 온라인 스토킹으로 인정한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를 알아내고 저장하는 행위 ▲피해자를 사칭하는 행위 ▲개인정보와 함께 성적 모욕 등의 허위정보 유포 행위 ▲제삼자에게 범행을 부추기는 행위 등은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지난 3월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스토킹 피해 유형 중 '개인정보를 알아내 저장한 경우', '사생활을 알아내려 한 경우'가 각각 57%, 56%(복수응답)를 차지했다. '허락하지 않은 용도로 개인정보를 사용한 경우', '내 개인정보를 유포한 경우'도 각각 41%, 40%에 달했다.

물론 정보통신망법, 성폭력처벌법 등 다른 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되지 않으면 긴급응급조치 등 피해자에게 당장 필요한 보호 조치를 할 수 없다. 긴급하게 가해자를 피해자에게서 분리해야 하는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이러한 결함은 치명적일 수 있다.

형량도 낮다. 정보통신망법 위반의 처벌 수위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이 최대 형량이다. 이에 온라인 스토킹을 저지르더라도 대부분 실형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스토킹처벌법은 '지속해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스토킹 행위'를 처벌하는데, 온라인 스토킹에서 개인정보 유포 등의 행위는 지속하거나 반복해서 행하지 않고, 단 한 번의 범행을 저지르더라도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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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 대응 훈련하는 일본 경찰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보다 앞서 '스토커 규제법'을 도입한 일본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7월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피해자의 차 뒤 범퍼에 위치정보시스템(GPS) 장치를 몰래 설치해 1년 동안 피해자를 추적해 기소된 남성에 대해 "스토킹 규제법상 '미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논란을 불렀다.

같은 논리로 따지면 '우편 추적 시스템을 통한 피해자의 우편물 갈취', 'SNS 사진을 통한 피해자의 주소 파악',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앱 설치' 등도 스토커 규제법의 처벌을 벗어나게 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포괄적인 형태의 온라인 스토킹에 대응하는 영국의 법규를 수용할 만하다고 제언했다.

영국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내리는 보호명령은 ▲전화·문자·SNS 등 모든 형태의 연락 금지 ▲모든 형태의 감시 및 피해자 정보 수집 금지 ▲경찰에 가해자 SNS 계정·연락처·컴퓨터 접근 권한 및 정보 제공 ▲SNS에서 직·간접적인 피해자 언급 금지 등을 포괄한다.

사실상 모든 형태의 온라인 스토킹을 금지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피해자 보호조치를 위반하면 최대 징역 5년 형의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스토킹 가해자가 온라인에서 계속 주변을 맴도는 것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친구 신청처럼 SNS 등을 통한 온라인 스토킹을 모두 포괄해 피해자를 확실히 보호하고,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법규를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653@yna.co.kr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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