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나선 동생은 고문사… 유혈진압 앞장 형은 경찰청장 승진
동생, 1988년부터 민주화운동 헌신, 밀고로 체포… 이틀 만에 주검으로
형, 시위대 학살-고문 최고 책임자… 軍 중장이면서 내무부 차관도 겸해
동생, 1988년부터 민주화운동 헌신, 밀고로 체포… 이틀 만에 주검으로
형, 시위대 학살-고문 최고 책임자… 軍 중장이면서 내무부 차관도 겸해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는 미얀마의 쿠데타는 한 형제의 운명을 대조적으로 갈라놨다. 오랫동안 민주화 투쟁을 해온 동생은 군경에 끌려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왔고, 군대에 몸담은 형은 쿠데타 이후 경찰청장으로 승진한 뒤 시위대 유혈진압에 나섰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13년간 옥살이를 했던 소 모 흘라잉(53)이 24일 사망했다고 25일 보도했다. 그는 22일 미얀마 남부 바고 지역의 자웅 투 마을에서 주민 여러 명과 함께 체포됐다. 그가 있던 곳을 군 정보원이 밀고했다고 한다. 체포 당시 그는 군경이 마구 휘두른 소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틀 뒤인 24일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숨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가족들은 다음 날 양곤의 군 병원에서 관 속에 있는 그의 시신을 확인했다. 소 모 흘라잉의 친구들은 그가 군정에 반대하는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을 당해 숨졌다고 보고 있다. 유족으로 아내와 5명의 자녀가 있다.
소 모 흘라잉은 1988년 미얀마에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이른바 ‘88세대’의 일원이다. 당시 군정에 저항한 첫 학생 무장단체인 전(全)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에 참여했다. 소 모 흘라잉은 아웅산 수지 여사의 석방을 요구하다 체포돼 13년간 감옥에 있었다. 석방된 뒤에는 바고 지역에서 지역 개발과 무료 교육, 주민 복지를 위해 활동했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13년간 옥살이를 했던 소 모 흘라잉(53)이 24일 사망했다고 25일 보도했다. 그는 22일 미얀마 남부 바고 지역의 자웅 투 마을에서 주민 여러 명과 함께 체포됐다. 그가 있던 곳을 군 정보원이 밀고했다고 한다. 체포 당시 그는 군경이 마구 휘두른 소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틀 뒤인 24일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숨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가족들은 다음 날 양곤의 군 병원에서 관 속에 있는 그의 시신을 확인했다. 소 모 흘라잉의 친구들은 그가 군정에 반대하는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을 당해 숨졌다고 보고 있다. 유족으로 아내와 5명의 자녀가 있다.
소 모 흘라잉은 1988년 미얀마에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이른바 ‘88세대’의 일원이다. 당시 군정에 저항한 첫 학생 무장단체인 전(全)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에 참여했다. 소 모 흘라잉은 아웅산 수지 여사의 석방을 요구하다 체포돼 13년간 감옥에 있었다. 석방된 뒤에는 바고 지역에서 지역 개발과 무료 교육, 주민 복지를 위해 활동했다.
군부 핵심 인사인 탄 흘라잉 중장은 동생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는 경찰이 벌인 시위대 고문과 학살, 체포, 구금 행위의 지휘 라인에 있는 최고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미얀마 군부는 올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뒤 경찰과 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특수지부’를 모두 관할하는 내무부에 차관 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군부는 이 요직에 탄 중장을 발탁하고 경찰청장을 겸하게 했다.
유럽연합(EU)은 미얀마 제재안을 발표하며 “경찰은 탄 중장의 지휘 아래 시민과 비무장 시위대를 살해하고,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 쿠데타 반대자를 체포 구금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했다”며 탄 중장이 미얀마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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