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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명예훼손 사건’ 담당 판사 “재판장 지시 수긍돼 판결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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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명예훼손 사건’ 담당 판사 “재판장 지시 수긍돼 판결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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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산케이 전 지국장 '7시간 칼럼' 사건 재판
1심 주심 판사, 법정 출석해 당시 상황 증언
"무죄 선고이유 바꿔... 임성근 지시는 몰라"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25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25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농단에 연루돼 탄핵심판 중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의혹이 일었던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의 주심을 맡았던 판사가 25일 법정에서 첫 증언을 했다. 해당 판사는 “재판장이 판결문 수정을 지시해 내용을 바꾼 건 맞다"면서도 "내 의사에 반한 결정은 아니었고, 부적절한 요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박연욱)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항소심 5차 공판을 이날 열고, A 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 2015년 산케이신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는 취지의 칼럼을 썼고, 이로 인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에서 재판을 받았다. A 판사는 이 사건 주심을 맡았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했던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가토 다쓰야 사건 재판장(이동근 전 부장판사)에게 판결문 수정을 지시하는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임 전 부장판사는 이 재판장에게 “가토 전 지국장이 무죄이긴 해도,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해 달라”는 등의 요청을 전달했고, 이 사건 판결문을 넘겨받아 직접 ‘문구 첨삭’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련 1심 91차 공판 출석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련 1심 91차 공판 출석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런 요청은 당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임종헌 전 차장이 임성근 당시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보도 내용은 허위라는 중간 판단을 내려달라’고 하는 등 여러 주문을 했고, 이는 임 수석부장을 거쳐 다시 이동근 재판장에게 전달됐다. 이후 이동근 재판장 지시로 A 판사는 정확한 영문도 모른 채 판결문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A 판사는 이날 법정에서 '이동근 재판장 지시로 가토 전 지국장의 무죄 선고 이유를 수정하고, 일부 질책성 문구를 추가한 사실'을 인정했다. 당초 형사합의30부 재판부는 ‘공적 지위에 있는 대통령이 피해자인 만큼, 명예훼손죄로 볼 수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선고가 임박한 시점에 재판장의 '수정 지시'가 있었다는 게 이번 증언의 핵심이다. A 판사는 “(이동근 재판장이) 명예훼손은 맞지만 비방 목적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바꿔 쓰자고 하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지난 2014년 12월 오후 자신의 명예훼손 혐의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지난 2014년 12월 오후 자신의 명예훼손 혐의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2월 1심 선고 당시, 재판부가 가토 전 지국장을 꾸짖는 문구가 포함된 것도 이동근 재판장 지시였다고 A 판사는 진술했다. 당초 판결문에 없던 ‘대한민국 대통령을 조롱하고 한국을 희화화하는 내용을 작성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건 적절하지 않다’는 등의 문장을 새로 추가했다는 것이다. 다만 A 판사는 이날 “(재판장이) 시켜서 다했다 이렇게 오해할 수 있는데, 내 의사에 반한 건 아니었다” “틀린 지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정된 무죄 사유가) 원래의 내 생각" 등의 설명을 수차례 덧붙였다.


또, 선고 공판 당일 재판장이 가토 전 지국장을 3시간가량 세워둔 채 판결문을 읽어내려간 사실도 재차 거론됐다. 검찰이 “가토 전 지국장은 '앉아서 선고를 듣고 싶다'고 했는데도 재판장이 기립하게 한 점이 '훈계'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A 판사는 “그렇게까지 3시간 동안 세워 둘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했다”고 답했다. 이동근 재판장이 당시 자신에게 했던 지시들이 법원행정처나 수석부장 요청에 따른 것이란 사실은 몰랐다고 A 판사는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21일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결심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검찰과 변호인 측은 최대 쟁점인 ‘재판사무에 대한 직권 존부(존재여부)’에 대한 최종 의견을 결심 공판에서 밝힐 예정이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되는 건 직권남용죄의 법리상 일단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먼저 인정돼야만, 그러한 직권을 ‘남용한 행위’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토 전 지국장 사건을 비롯한 여러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사상 첫 법관 탄핵 심판대에 오른 임 전 부장판사의 1차 변론기일은 다음달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