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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한나유리(27)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은 짧아져있었다. 출국이 결정되던 날 그는 가위로 머리카락을 마구 잘랐다. 군인들의 검문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는 군부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한국으로 온 첫 미얀마인으로 추정된다.
한나유리는 미얀마 양곤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모델로 활동한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64만명, 페이스북 팔로워는 139만명이다. 태국에서 메이크업을 배웠고 SNS에서 인기를 끌면서 모델 일을 하게 됐다. 정치나 사회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2월 1일 군부쿠데타 이후 그의 일상은 뒤집혔다.
친구들과 집회에 나갔고 SNS에는 화보 대신 미얀마 상황을 공유했다. ‘피의 일요일’이라 불린 2월 28일 이후로는 숨어지내다시피 했다. 군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거나 시위에 앞장선 유명인들이 무더기로 체포리스트에 오르고 실제 체포·수감됐기 때문이다. 한나유리 역시 체포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지난 5월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한나유리를 만나 미얀마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물었다. 신변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날짜나 장소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인터뷰 내내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며 눈물을 보였다. 페이스북 페이지 ‘미얀마투데이’를 운영하는 최진배씨와 녜인 따진 부부가 인터뷰를 통역했다.
-한국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된 건가.
“쿠데타 이전부터 한국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비자도 발급받았는데 쿠데타가 터지면서 예정된 날짜에 오지 못해 비자가 취소됐다.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에 인도적 차원에서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대사관에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비자를 재발급해줬다.”
-2월 초에 미얀마를 떠날 수 있었던 건데 왜 떠나지 않았나.
“내 SNS에 민주화 관련 게시물을 올리기로 결정하면서 광고 계약을 다 취소했다. 팔로워 중에 외국인이 많은데 광고나 화보가 올라오면 미얀마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을 취소하고 위약금을 물어주는 등 처리할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싸우는 상황에서 혼자 나오기도 싫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와야겠다고 결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체포리스트에 오른 이후로는 활발하게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체포·수감되면서 나도 잡혀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장소는 말할 수 없지만 거의 숨어지냈다. 안전이 보장되면 미얀마 상황을 더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해 출국을 결정했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창고 같은 곳에서 생활했다. 창고 구석에서만 와이파이가 잡혀서 그걸로 사람들과 연락을 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한나유리/ 한나유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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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면 집회에 참가한 연예인, 인플루언서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걸 포기하고 나선 사람이 있는 반면 대놓고 군부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군부의 첩자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연예인에게 ‘어디냐’고 물어 위치를 파악해 군부에 밀고하는 식이다. 지역에도 군부의 첩자가 많다. 그래서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집회에 참가하는 게 쉽지는 않다. 마스크를 써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을 찍어서 어딘가에 올리니까 신변이 노출된다. 숨어지내는 기간에는 도망가는 사람을 집에 숨겨주거나 음식이나 물을 제공하는 식으로 시위에 힘을 보탰다.”
한나유리는 자신이 왜 군부의 체포리스트에 오르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이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엄령 상황이라는 이유로 모든 절차가 무시돼서다. 선동죄에 해당하는 형법 제505조 혐의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 조항은 영국 식민지 시대(1886~1947)에 만들어졌다.
통역을 맡은 최진배씨는 “한국에서 기자들이 수배예요? 기소예요?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데 지금 미얀마는 그런 형식과 절차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군부에서 이름을 쓰면 그냥 체포리스트에 오른다. 절차가 없다 보니 체포에서 선고까지 이틀밖에 안 걸린 경우도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최근에는 군부가 연예인들에게 수배령 해제·기소 취하를 내걸며 돈(1450만원가량)을 요구한다는 소문이 있다. 이에 대해 한나유리는 “미얀마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군부와 상당히 가깝다. 군부 눈치를 보고 거래를 할 사람이라면 애초 활동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거래를 한다 해도 군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군부에 자금을 대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집회에서 다치기도 했다.
“최루탄이 터지면 담요나 옷에 물을 적셔 다친 사람들 얼굴을 덮어줘야 한다. 화기를 내리기 위해서다. 그날도 물수건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덮어주고 있는데 내 옆에서 최루탄이 터졌다. 팔을 다쳤고 일주일 동안 눈을 뜨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이 겪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에 오기 직전의 양곤 분위기는 어땠나.
“공포 그 자체였다. 군인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이 보이면 그냥 쐈다. 총소리가 들려도 무서워 내다보지 못했다. 오후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잠시 군인들이 자리를 비운다. 그때 모든 사람이 집 밖에 나가 부랴부랴 할 일을 한다. 집 안에 있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다. 군인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밤에도 화장실 불조차 켜지 못했다. 골목으로 군인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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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국경으로는 어떻게 가는 건가.
“이런 상황이니까 국경으로 가는 것이다. 도시에서 숨죽이고 있어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무기를 쥐고 저항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피란을 갈 거면 굳이 국경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국경으로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합류하기 위해서다. 국경 지역은 도심과는 환경이 달라 이런저런 비상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검문 과정에서 비상약을 가지고 있으면 바로 체포된다. 일상에서 복용하는 약도 혐의를 씌워 체포하거나 사살하는 경우도 있다. 국경으로 가는 특정한, 안전한 루트는 없다. 슬프지만 운에 맡기는 거다.”
-3월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나올 줄 몰랐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나.
“나는 샨족 출신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 지금 군부가 벌이는 유혈진압은 지난 70년 동안 소수민족에 가해진 일들이다. 그 대상이 버마족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양상이나 잔혹성은 똑같다. 로힝야가 이슈가 됐지만 다른 소수민족도 다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군부는 소수민족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것처럼 지금 시민들이 테러리스트라고 선전한다.”
샨족은 카렌족과 함께 미얀마 135개 소수민족 중에서도 군사력이 높은 주요 소수민족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한나유리는 내전 또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무장하고 군부에 저항하지 않으면 이 사태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통합정부(NUG)의 연방군이 창설되기만 하면 군부를 이길 수 있다. 50만 군부가 5500만 국민을 상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많은 미얀마인이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군사력을 갖추고 있고 군부가 내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어서다. 미얀마 시민불복종운동(CDM)은 지난 5월 19일 군인들이 마약을 복용하고 진압에 투입된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며, 군용트럭에서 발견된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아편, 최음제 사진을 공개했다.
다만 연방군 창설까지 걸리는 시간이 관건이다. 지금 상황이 길어진다면 일부 지역은 음식이나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최진배씨는 “돈이 없어서 물건을 못 사는 게 아니라 유통 자체가 멈췄다”고 말했다. 국민통합정부는 지난 3월 말 연방군 창설을 언급했지만, 소수민족 무장단체와의 협상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 초기 미얀마 사진기자들이 양곤 시내로 진입한 군을 취재하고 있다. 4월 이후로는 사진기자들의 취재가 사실상 허용되지 않고 있다. / 미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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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미얀마를 걱정하는 한국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기부와 물품 지원이 절실하다. 저소득층은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은 월급을 받지 못해 복귀하는 상황이다. 다만 현지로 전달이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활동가가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SNS(@hannayuri_sunshine)에 올리는 미얀마 소식에도 관심을 가져달라.”
-6개월 비자로 한국에 왔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불이익 걱정은 하지 않는다. 태국으로 간 친구 중에는 미얀마로 송환을 당한 경우도 있다. 나는 최소한 안전한 공간에 있으니까… 내 신변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미얀마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다.”
글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사진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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