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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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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m 초대형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국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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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제작된 현존 국내 유일 삼신불 조각

울진 불영사 불연 등 3건은 보물 지정 예고

연합뉴스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왼쪽부터 석가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교조각 중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유일한 작품인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이 국보가 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을 국보로, '울진 불영사 불연'을 비롯해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송시열 초상' 등 3건을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고 28일 밝혔다.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2008년 보물로 지정돼 조선 시대 17세기 불교사상과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

삼신불은 법신(法身) 비로자나불, 보신(報身) 노사나불, 화신(化身) 석가불을 말한다. 화엄사상에 기반한 도상(圖像)으로 변상도(變相圖, 불교 경전 내용을 소재로 한 그림)나 사경(寫經, 손으로 베낀 경전) 등에는 종종 보이지만, 조각품으로는 화엄사 사례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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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왼쪽부터 석가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된 이들 좌상은 모두 3m가 넘는 초대형 불상이다. 1635년(인조 13년) 당시 유명한 조각승인 청헌과 응원, 인균과 이들의 제자들이 제작했다.

최근 발견된 삼신불의 복장유물 등 관련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1630∼1636)하면서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삼신불을 제작한 시기(1634∼1635년)와 과정, 후원자, 참여자들의 실체가 확인됐다.

발원문에 의하면 전국 승려집단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역임한 벽암 각성(1575∼1660)의 주관으로 선조(재위 1567∼1608)의 여덟 번째 아들 의창군 이광(1589∼1645) 부부와 선조의 사위 동양위 신익성(1588∼1644) 부부 등 다수의 왕실 인물과 승려 580여명을 포함한 총 1천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했다.

이 삼신불좌상은 화려한 연꽃 대좌(부처가 앉는 자리)와 팔각형 목조대좌에서 결가부좌하고 있다. 거대한 규모와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선이 굵게 처리된 조각솜씨로 인해 중후한 느낌을 준다.

문화재청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조각승 집단인 청헌파와 응원·인균파가 참여한 만큼 표현에서도 각 유파의 조각 특징을 잘 보여준다"며 "근엄한 표정의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상은 청헌파가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며, 부드러운 얼굴에 작은 눈과 두툼한 눈두덩이가 표현된 노사나불상은 응원과 인균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17세기에 제작된 목조불상 중 가장 크고, 조각으로 삼신불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고 중요하며, 예술·조형적 수준도 조선 후기 불상 중 단연 돋보이므로 국보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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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불영사 불연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보물로 지정 예고된 울진 불영사 불연(가마)은 1670년(현종 11년) 화원으로 추정되는 광현, 성열, 덕진 등이 참여해 조성한 2기의 불교의례용 가마로, 지금까지 알려진 약 20기의 조선 후기 가마 중 형태가 가장 온전하다. 불교목공예의 일종인 불연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울진 불영사 불연은 2기 모두 1670년이란 제작 시기와 승려 학종이 좋은 장인을 만나 불연을 제작한 동기와 배경, 제작에 동참한 시주자, 불연 제작자로 추정되는 스님 등이 기록돼 있어 조선 후기 불교목공예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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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은 1656년(효종 7년) 만든 불상으로, 당시 제작된 나한상 중 수량과 규모 면에서 최대다. 역량이 뛰어났던 17세기 조각장들을 계승한 조각승들이 승려 벽암 각성의 요청을 받아 제작했다.

문화재청은 "송광사를 본산으로 활약했던 조각승들의 활동체계와 제작태도, 경향 등을 밝힐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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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초상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울러 송시열 초상은 조선 중기 정치와 학문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긴 성리학의 대가 송시열(1607∼1689)을 그린 18세기 초상화다. 충북 제천 황강영당에 300년 넘게 봉안돼와 그간의 내력이 분명하다. 2012년에 충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작품 상단에는 '尤庵宋先生 七十四歲 眞'(우암 송선생 칠십사세 초상이란 뜻)이란 화제가 적혀 있어 74세 때 송시열의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림 속 송시열은 회색 사방건(四方巾, 귀퉁이가 네모난 모자)을 쓰고 검은색으로 깃과 소맷부리의 가장자리를 두른 회색 심의(深衣, 유학자가 평상시 입는 옷)를 입은 채 두 손을 맞잡아 소매 속에 넣은 반신상으로 묘사됐다.

문화재청은 "송시열의 초상화는 약 30점이 전하고 있으며, 이들 중에서도 이 작품은 진재해(1691∼1769) 등 당대 최고 초상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우수한 사례에 속한다"며 "유려하면서도 단정한 필선, 정교한 채색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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