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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미술의 세계

'최대, 최고의 삼성컬렉션' 이병철·이건희 父子는 어떤 수집가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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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국보 ‘가야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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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컬렉터(수집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문화재에 대한 지대한 관심,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 수집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결단력,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경제력 네 가지다. 간송(전형필 선생)이 그걸 갖췄었고 이후 이병철, 이건희가 그렇다.”

‘문화재 컬렉터 이병철·이건희’에 대한 원로 미술사학자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의 평가다. 삼성가의 문화재, 미술품 컬렉션은 막대한 재력 뿐만 아니라 고(故) 이병철, 이건희 회장의 컬렉터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 결과가 “리움(삼성에서 세운 미술관)은 명품관 같은 곳”이라는 평가다. ‘명품’은 삼성 컬렉션의 성격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역대 최대, 최고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는 컬렉션을 일구고, 키운 이들 부자(父子)는 어떤 태도와 원칙을 가진 컬렉터였을까. 문화재, 미술품 수집 자체가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경향이 강한 데다, 내밀한 면모까지 알기 어려운 재벌가의 특성상 대답을 내놓기가 쉽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2016년 출간된 책 ‘리 컬렉션’(이종선 지음)이 꽤 참고가 된다. 저자는 호암미술관을 세우는 데 참여하고, 두 회장의 수집 활동을 도왔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썼다. “삼성가의 검수와 동의”를 받고 나온 책이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했는가, 라는 의심이 들고 내용도 두 회장에 대한 상찬이 주를 이루지만 역사상 최대규모의 문화재 미술품 기증으로 이어진 ‘컬렉터 이병철·이건희’의 면모, 대표적인 소장품, 수집 과정과 그것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이병철의 최애 소장품 ‘청자진사주전자’와 ‘가야금관’

책에 따르면 지인들의 권유로 수집을 시작한 이병철은 특정 분야에 쏠리거나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지는 않고,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수집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르지 않고 “비싸다고 판단되는 작품은 누가 뭐래도 구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은 “본인이 판단해서 “값이 싸면서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을 거두어들이는 경향이 강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좋다는 전문가의 확인만 있으면 값을 따지지 않고 별로 묻지도 않았던 아들 이건희와는 대비되는 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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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청자진사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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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그의 대표 수집품으로 소개한 것은 ‘가야금관’(국보 138호), ‘비산동세형동검’(〃137-1호), ‘청자진사주전자’(〃 133호), ‘김홍도의 군선도병풍(〃 139호) 등이다. 이 중 청자진사주전자를 특히 아꼈다. 1976년 일본의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나의 소장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유물은 ‘청자진사주전자’나 ‘청자상감운학모란국화문매병’(보물 558호)”고 고백한 적도 있다. 청자진사주전자는 고려 무신정권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이었던 최항의 무덤에서 발굴됐다. 비슷한 것이 미국과 독일에 1점씩 전해지는 데 이병철의 수집품이 가장 완전한 형태다.

가야금관은 “호암(이병철의 호)이 잠 못 이루며 아낀” 또 하나의 소장품이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소재를 파악해야 직성이 풀릴 만큼 애착이 대단했다”고 한다. 가야금관이 처음 세간에 공개된 것은 197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호암 수집 문화재 특별전’. 이후 이병철의 이 금관의 도난을 걱정해 소장처의 경비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건희의 일류 지향,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

“명품 한 점이 다른 많은 수집품의 가치를 올려주고 체면을 세워준다.”

책에서 소개한 이건희의 지론이다. 기업 경영에서 ‘초일류’를 내세웠던 그의 철학은 문화재, 미술품 수집에도 적용되었고, “규모도 대단하지만 소장품 각각의 수준이 높은 것이 더 중요한 특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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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인왕제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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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김홍도 필 병진년 화첩’에 포함되어 있는 ‘사인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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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컬렉션의 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정문화재인 국보, 보물 건수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실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가가 보유하고 있는 국보는 37점, 보물은 103점이다. 당시 전체 국보의 11.2%, 보물의 4.9%가 삼성가의 것으로 타의추종의 불허한다. 비지정인 소장품 중에서도 지정이 가능한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것이 적지 않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다. 책에 따르면 ‘고구려반가상’(국보 118호)를 인수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본격화된 수집은 1990년대 들어 “좋은 물건은 모두 삼성으로 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동국대 최응천 교수는 “개인 소장자가 갖고 있다가 한동안 소식이 끊기면 삼성에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되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진경문화를 대표하는 정선의 ‘인왕제색도’(〃 216호), ‘금강전도’(〃 217호), 김홍도의 명작중 하나로 꼽히는 ‘병진년 화첩’(보물 782호), 민화의 별격을 보여주는 ‘호피장막책가도’, 한국적인 미의 대명사 중 하나인 ‘백자달항아리’(국보 309호) 등이 이건희가 모은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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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화조구자도’


이만한 규모와 질의 컬렉션을 일군 것을 돈이 많으니 가능한 것 아니냐, 고 단순하게 판단할 수도 있으나 컬렉터로서 이건희 개인의 자질과 추진력, 안목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화조구자도’(보물 1392호) 구입 당시 일본인 소장자가 실물을 보여주는 조건으로만 거액의 계약금을 요구했을 때 선뜻 수용해 끝내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은 그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구입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신중하게 판단했으나 그것에 휘둘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화조구자도 구입 당시 조언을 했던 안휘준 교수는 “전문가의 의견을 자기나름의 판단에 따라 참고했다”고 말했다 ‘청자 마니아’인 아버지와 달리 ‘백자 마니아’로 통했던 그는 청화백자에 대해서는 전문가 못지 않은 안목을 가졌다고 한다.

책은 “그만의 독자적인 수집력을 쌓았고, 결국 호암과는 다른 차원의 ‘리움컬렉션’을 완성시키게 되었다”고 적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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