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 박형준 부산시장(왼쪽)과의 오찬 간담회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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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이 21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박형준 부산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건의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4·7 보궐선거의 승자인 야당 광역단체장들이 선거 참패 뒤 통합과 소통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문 대통령에게 두 전직 대통령 석방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야권의 오랜 숙원을 적기에 전달했다고 볼 수 있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 심심찮게 거론되는 ‘탄핵 불복론’과 맞물리면서 과거 회귀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서 사면 요구 이어지는 이유는
오 시장은 이날 청와대 오찬 뒤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열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식사 자리에 임했는데, 박형준 부산시장이 먼저 말했다”며 “저 역시 같은 건의를 드리려고 하는 생각이 있었다고만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인 두 시장이 문 대통령을 대면할 기회가 적은 만큼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를 우선 건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오전부터 사면 분위기를 띄웠다.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비대위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연초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께서도 사면 건의한다고 하셨고, 많은 국민들이 전직 대통령들이 오랫동안 영어 생활하는 데에 관해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면권자인 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당내에서 비판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면 요구 관련해 비판은 들어본 적 없다. (전직 대통령) 사면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다”고 일축했다.
초선인 황보승희 의원도 이날 <제이티비시>(JTBC) 방송에 출연해 “두 전직 대통령 모두 연세가 80세가 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4년 이상 수감 상태고 탄핵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형을 처음에 35년을 받았다가 지금 확정된 게 22년인데, 그 형 자체가 좀 과하다는 국민적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통합과 협치 차원에서 국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사면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사면론에 힘을 싣는 것은 재보선 압승 효과이기도 하다. 여세를 몰아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통해 대선을 앞두고 야권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국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선을 앞둔 당대표·원내대표 출마자들이 일제히 사면론을 강조하고 있다.
‘탄핵 불복론’에 과거 회귀 우려도…쇄신 가능할까
그러나 재보선에서 압승하자마자 터져나온 ‘사면 요구’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자칫 지난해 총선 참패를 불러온 ‘강경 보수’ 이미지를 소환할 수 있어서다. 사면론을 내세운 통합이나 국격, 관용 등의 가치를 사면의 명분으로 삼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탄핵 불복론’까지 공개석상에서 등장하고 있다.
전날 원조 친박계인 5선의 서병수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저를 포함해 많은 국민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잘못됐다고 믿고 있다. 과연 탄핵될 만큼 위법한 짓을 저질렀나”라며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에게 사면 건의를 촉구했다. ‘박근혜 탄핵’이 잘못됐으니 무고한 사람을 풀어달라는 논리다. 지난해 12월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특정한 기업과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경영승계 과정의 편의를 봐준 혐의 등이 있다. 또한 공적인 책임을 부여받지 못한 자가 국정에 개입해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엄하게 권력을 농단한 죄상도 있었다”며 박 전 대통령 과오를 사과했지만 얼마 안돼 이를 뒤집는 발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 초선 의원은 <한겨레>에 “원조 친박계 의원이 공개적으로 탄핵에 불복하는 발언을 한 게 당의 미래를 고려한 건지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굳이 선거 끝나고 난 다음에 사면론을 꺼내는 것은 시기적으로 전통적 보수가 다시 한 번 당권을 잡으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라고 본다”며 “새롭게 편입된 젊은 지지층 소구가 중요한 시기에 사면론을 꺼낸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지도부도 서둘러 ‘탄핵 불복론’ 선 긋기에 나섰다. 주호영 대행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서 의원 발언은) 당 전체 의견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며 “우리가 대정부질문 내용을 일일이 미리 체크하고 의견을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의원 개개인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섭 비대위원도 이날 비대위 회의 공개 발언에서 “국민의힘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사과를 구한 지 이제 고작 5개월이 지났다. 이러니 젊은 세대가 우리 당을 두고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 아닌가. 이번에 어쩔 수 없이 기호 2번 뽑았지만 국민의힘에 도저히 정이 안 간다는 말 나오는 이유”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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