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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

"정인아, 미안해"…네가 죽고도, 바뀐 게 별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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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아직도 불안한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즉각 분리 아동 갈 곳 없고, 현장 조사 여전히 '아동보호전문기관' 위주, 열악한 근무 환경과 지자체 지원, 전문성 확보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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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가 숨진지 반년쯤 지났다. 아이가 별이 된 건 지난해 10월 13일이었다. 입양부모 학대로 췌장이 끊어졌다.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울었다. '정인아 미안해'라며 지키지 못한 걸 애통해했다. 그걸로 끝난 게 아녔다. 끝내선 안 됐다. 계속 살펴봐야 할 건 두 가지였다.

첫째, 정인이 학대 혐의를 받는, 양부모가 제대로 처벌 받는가. 이는 재판이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14일 결심 공판이 있었다. 검찰은 양모 장모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양부 안모씨에겐 징역 7년 6개월을 구형했다. 이는 검찰 구형이다. 5월 14일에 1심 선고가 내려지는 걸 봐야 한다. 죗값이 얼마나 나오는지 지켜볼 일이다.

둘째, 정인이처럼 학대 받는 아이들을 이젠 정말 지킬 수 있는가. 그럴만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실은 이걸 잘 살펴보는 게 더 중요했다. 학대 받은 아이에게 경찰은 무혐의라 했고, 아동학대전문기관도 아이를 분리하지 못했다. 살릴 수 있는 기회를 3번이나 놓쳤다. 재발을 막겠다며 정부며 국회며 온갖 정책과 법을 쏟아냈다.

현장 이야길 들어야 했다. 그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지. 만들어 놓는다고 끝인 게 아니니까. 또 다른 정인이를 잃을 순 없으니까. 정인이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니까. 그럼 정말 바뀌어야 하니까.


경찰에 신설된 '여성청소년 강력팀', '여성청소년 수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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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경찰청장이 1월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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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을 때, 현장엔 경찰지자체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출동하게 돼 있다. 야간과 휴일엔 경찰이 현장 확인을 한 뒤, 동행 출동을 요청하도록 했다.

경찰은 뭐가 어떻게 달라진 걸까. 우선 아동학대 관련 업무를 전문적으로 맡도록 부서를 마련했다. 13세 미만 아동학대 범죄는 '여성청소년 수사대(시도 경찰청)가, 13세 이상 18세 미만 사건은 '여성청소년 강력팀(일선 경찰서)'이 맡도록 했다.

이로 인해 소통하는 건 좋아졌다고 했다. A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예전엔 교대 근무(주간, 야간 등)를 하며 팀이 계속 돌아갔는데, 지금은 주간 근무를 하니 소통은 잘 된다"고 했다.

그러나 13세 미만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일선 경찰서에서 미온적 대처를 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시도 경찰청(여성청소년 수사대)으로 가니까 본인 사건이 아니라 생각하고, 경찰청에선 초동 대처를 해서 넘기라 하고, 그런 문제와 갈등이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아이를 보호해야 하니 어디든 진행을 해달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초기라 역할 조정 과정이 필요한 걸로 보인다.

아동학대 사건의 민감성을 키워야한다며, 경찰에서 신고되는 건수도 늘었다고 했다. 아동학대전문기관(이하 아보전)서 16년간 근무한, 홍창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사무국장은 "경찰은 정인이 숨진 사건 이후 난리가 나서, 아동학대의 '아'자만 나와도 신고를 한다"며 "아보전에선 일이 더 많아지고 악순환"이라고 했다(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빨리 전보되길 기다리는 경우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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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월 23일 오후 충북 청주시청 제2청사 아동보육과를 찾아 아동학대 전담공무원들에게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기사 내용과는 무관)./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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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함께 출동해 아동학대 현장 조사를 진행하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얘기도 들어봤다. 원래 현장 조사 업무는 민간인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이었다가, 지난해 10월부터 지자체 소속 아동학대전담공무원으로 넘어왔다. 공공 영역에서 맡게된 거다.

은평구청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6명 배치돼 있다.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많다. 그럼에도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매년 늘고 있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인 B씨는 "1인당 평균 5건 이상 사건 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학대행위자가 제기하는 민원까지 처리하느라 업무 소진이 상당하다"고 했다.

업무 특성상 긴급신고 접수와 현장 대응을 위해 24시간 상시 대기를 한단다. 그로 인한 피로도가 크다고 했다. B씨는 "보통 주간 접수 사건과 후속조치를 위해 야간에 잔무를 처리하는데, 보통 밤 9시는 넘어야 퇴근한다"고 했다. 아동을 긴급 분리하는 경우엔 자정을 훨씬 넘기기도 한단다. 야간과 주말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당직 근무조를 편성해 운영한다. 업무용 전화기를 가지고 퇴근해 신고 접수와 처리 대응을 하는 것이다.

현장에 적용하기 힘든 매뉴얼로 인한 고충도 있다. 아동학대 신고 2회 이상 즉각분리 조치가 그렇다. B씨는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피해아동과 보호자 동의 확보가 어려워 즉각 분리하기엔 상당히 어렵다"며 "학대행위자가 부모일 땐 특히 동의를 하지 않고, 폭언과 물리력 행사를 하며, 지속적으로 민원 전화와 항의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아보전이 맡았을 때도 늘상 겪었던 일들이다.

또 '즉각분리조치시 7일 안에 조사와 사례 판단을 종료하라'는 지침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그 기간 안에 조사하는 게 불가능하다. 기간이 연장돼야 한다"고 했다.

A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도 "지난 주말 방임 학대 가정의 아이들을 분리해야 하는데, 갈 시설이 없어서 몇 시간을 데리고 있었다"며 "주말에 전화를 백방으로 돌려 겨우 임시로 맡겼다"고 했다. 매뉴얼을 바꾸는 것도 좋으나, 현장서 따라갈 수 있게 해야한단 얘기다.

24시간 대기 업무와 학대행위자로부터 민원 등 힘듦에 비해 인센티브도 없다고. 그래서 그만두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단다. B씨는 "휴직을 고려하거나 빨리 전보 기간이 도래하길 기다리는 직원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주 그만두면 전문성이 쌓이기 힘들다.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인력 충원, 근무 환경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현장 조사를 하는 이의 경험이 부족하면, 설익은 판단으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동을 분리시키지 못하는 일이 또 생길 수 있다. 결국 학대 아동들이 또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 관리+현장 조사' 병행에 공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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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사무실 전경./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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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사례 관리'만 맡도록 했다. 현장 조사는 공공(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에 넘겼다. '사례 관리라는 건 학대로 판단된 아동들이 재학대 당하지 않도록 계속 지켜보고 관리하는 것이다. 사례 관리 중에도 사망 사건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현장 조사를 하는 게 아직 초기라, 전문성이 쌓일 때까진 아보전에서 지원토록 해뒀다. 20년 동안 아보전에서 현장 조사를 해왔던 노하우가 있어서다. 이 같은 과도기가 1~2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 아보전에 업무가 과중돼, 사례 관리를 자칫 놓칠 수 있단 것. 홍 사무국장은 "아보전을 운영하는 법인(굿네이버스 등)에선 이제 사례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며 현장 조사 인원을 줄이는데,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요청으로 현장은 가야하니 사례 관리가 버거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공의) 현장 조사가 안정될 때까진 인력 지원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A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도 "일부 지자체에선 과도기 기간에 업무가 가중된다는 걸 알고, 아보전에 대한 보조금을 한시적으로 늘려 인력을 보충해주는 곳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 아보전은 최소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유가 있다. 아보전은 지자체 보조금으로 운영되는데, 지자체에서 실제 운영비의 60~70% 수준 밖에 안 준다고 했다. 나머지 30% 정도는 법인서 후원금으로 메운단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력도 부족하고, 처우도 열악한 편이다. 어린이재단이나 굿네이버스처럼 큰 법인이 하는 곳은 그나마 낫단다. 작은 법인서 운영하는 아보전의 경우는 더 열악해 이직률이 높다고 했다.

인력이 충분해야 더 적은 사례를 맡아, 아동이 재학대당하지 않게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실제 운영비도 못 받는 보조금 시스템에선 '최소 인력→열악한 처우, 강도 높은 업무→이직→전문성 부족'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이 역시 학대 아동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책만 좋으면 뭐하나, 핏줄이 비실비실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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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울산 남구 울산지방법원 앞에 16개월 여아 '정인이' 제사상이 차려져 있다. 이 제사상은 정인이 사건의 재발 방지에 공감하는 울산지역 어머니 등 10여명이 준비했다. 이날 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양부모에 대한 1심 결심공판이 열렸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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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전문가들은 앞서 살펴본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아보전 등 실제 역할을 하는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획재정부는 어떻게 여기(아보전)만 돈을 많이 주냐 하는데, 여기는 잘못하면 사람이 죽는 곳"이라며 "사회 복지 일은 대부분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데, 아보전의 클라이언트(학대행위자)는 도움 받기 싫어한다. 클라이언트 자체가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적정한 인력이 들어오고,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정책만 좋으면 뭐하느냐, 핏줄 역할을 하는 이들이 비실비실하다.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홍 사무국장도 "아보전에서 계약직을 많이 뽑는다. 1년을 계약하고, 2년까지 연장한다. 법인에선 인건비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다 떠나면 신입 직원을 뽑는데 사례를 잘할 수 없다. 이게 폭탄처럼 쌓여 있다"고 비유했다.

정 교수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에 대해서도 "보통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 대우(처우를 좋게)를 해줘도 된다. 처우를 보고서라도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줘야지, 웬만해선 안 하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아동학대 예방교육'이 중요한데, 제대로 하는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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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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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또 있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이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교육 부재'를 꼽았다. 이런 사례를 들었다. 옛날엔 밥풀 떨어진 것 주워먹게 했는데, 요즘엔 그렇게 하면 아동학대라고. 그런데 일부 보육시설 종사자들이 그렇게 하는 건, 교육이 안 이뤄져서 그런 거란다. 나빠서 학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몰라서 그런 이들도 많다고. 그래서 "보육시설서 아동학대 가해자 연령 중 가장 많은 게 50대, 그 다음이 40대"라고 했다.

공 대표는 "보건복지부에서 노인 학대 교육도 잘하는데, 아동학대 예방 교육만 엉망진창"이라며 "그 준비를 하기 위해 서울로 왔다. 제일 먼저 교육해야 하는 건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 교수는 '부모 교육'을 받게 하자고 했다. 아동 수당이나 출생 신고 같은 정책과 연결해서다. 그러면 의무적으로 부모 교육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는 "지자체와 교육청이 주체가 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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