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갈등 접고 정책 협의로 불확실성 해소해야"
정책 불확실성에 꿈틀대는 서울 아파트 가격 |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4·7 재·보궐 선거 이후 부동산 시장은 한마디로 '카오스'다.
재개발·재건축에서 각각 '공공'과 '민간'을 전면에 내세운 정부와 오세훈 시장은 재·보궐 선거 이후 2주가 됐지만,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선거 참패를 안긴 부동산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그간 금기시됐던 세금, 대출 완화 논의가 봇물 터지듯 하고 있다.
정책 불투명성은 시장 불안으로 연결된다. 재건축과 세금·대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파트 매물은 들어가고 호가는 뛰고 있다.
◇ 소 닭 보듯 하는 정부-오세훈…문 대통령 '소통·협력' 주문
4·7 재·보궐 선거가 끝난 지 2주가 다 됐지만, 정부와 오세훈 시장은 어느 쪽도 먼저 다가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시장 안정을 위한 진정성 있는 협의는 간 곳 없고 국민을 상대로 부동산 정치만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집값 급등 우려를 들어 오 시장의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추진을 견제하지만,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으로 시장 불안을 억제하면서 민간 주도 스피드 공급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의 서울 재건축 단지 집값 급등세와 관련 "어렵게 안정세를 잡아가던 부동산 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러자 오 시장은 16일 "주택공급 속도가 중요하고 앞으로 그 방향으로 가겠지만 가격 안정화를 위한 예방책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주요 재건축 단지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즉시 검토하라고 주택건축본부에 지시했다.
양쪽 모두 부동산 민심의 역풍을 우려해 집값 급등은 두려워하면서도 각자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자세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에 대한 야당과의 소통과 협력을 강조하면서 정부와 오 시장 간 대화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19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방역과 함께 부동산을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꼽은 뒤 "방역관리에 허점이 생기거나 부동산 시장이 다시 불안해지지 않도록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충분히 소통하고 긴밀히 협력해달라"고 주문했다. ·
노형욱 국토부 장관 후보자도 이날 야당과 갈등을 빚고 있는 재건축 규제 완화, 공시가 문제 등에 대해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특히 재건축 규제 완화와 관련 "공공 주도든 민간 주도든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진심을 갖고 국민을 앞에 두고 생각을 한다면 좋은 절충점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당정 세제·대출 '디커플링?'…홍남기 "살펴보고 있다"
4·7 보궐선거 이전까지 부동산에 관한 한 찰떡 호흡을 과시하던 정부와 여당의 정책 공조가 선거 참패 이후 균열 조짐을 보이는 것도 시장은 큰 변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선거전 당시 박영선 후보가 35층 층높이 제한 등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예고된 것이긴 하지만 부동산 민심의 분노를 표로 확인한 여당 내에서는 정책 수정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광재 의원은 지난 18일 KBS에 출연해 서울에서 종부세 대상이 현재 16%인데 이는 너무 많다면서 노무현 대통령 당시처럼 상위 1% 정도로 맞추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정청래 의원은 1주택자 보유세(종부세)와 2주택자 양도소득세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 1주택자의 종부세 부과기준은 공시가 '9억원 초과'에서 '12억원 초과'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당권주자인 송영길 의원은 무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60∼80%까지 크게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권주자인 우원식 의원과 홍영표 의원도 세제와 대출 규제를 손질하겠다는 입장이다.
5·2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 대표에 당선되더라도 기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수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은 19일 부동산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종부세 완화론과 관련 "혹시 민의를 수렴할 영역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 "정부-오세훈 정책 협의로 불확실성 줄여야"
각종 규제 완화론이 돌출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강력한 수요 억제와 2·4 공급대책이 맞물리면서 안정세를 찾아가던 서울 집값은 주요 재건축 아파트들의 가격 급등으로 매물이 들어가고 호가는 치솟고 있다.
6월 1일부터 시행되는 양도세 중과를 앞두고 다주택자들의 매출 출회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렸으나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부동산을 놓고 정부, 여당, 서울시에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집을 팔겠다고 내놓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교통정리가 되지 않고 방향성이 흔들리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서울 집값이 요동치고, 이는 다시 전국 부동산을 흔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의 경우 정책이 불확실하거나 불투명하면 투기 세력이 발호할 여지가 생긴다"면서 "정부와 오세훈 시장의 대결 국면은 시장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 시장으로서도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 여당의 협조가 필요하고, 정부 여당 역시 선거로 확인된 민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오 시장의 얘기를 들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라면서 "양쪽이 서울의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는 만큼 정책 협의체를 가동해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종완 원장은 "재건축과 관련한 용적률이나 층고 규제, 기부채납, 공공주도냐 민간주도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어서 정부와 오 시장이 즉시 만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면서 "이러다가 집값 안정이 물 건너가면 양쪽 모두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이번 선거를 통해 시장원리에 맞게 주택 공급 등의 정책이 이뤄지지 않으면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확인됐다"면서 "양쪽이 서로 다른 방향을 주장하다 보면 공급에 대한 불안감으로 다시 시장이 폭등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kim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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