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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정부, 소련과 수교 위해 주한미군 철수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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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외교문서 비밀해제

한·소 정상회담 추진 비화 등 담겨

‘태백산’ 암호명으로 지칭 보안 유지

北, 양국 관계 개선 움직임에 반발

세계일보

1990년 12월 노태우 대통령(왼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크렘린궁(대통령관저) 내 연방최고인민회의 회의실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며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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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데탕트(긴장완화) 시기인 1990년 초 과감한 북방정책 추진에 나섰던 노태우정부가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카드도 고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한국과 소련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 북한은 크게 반발했다.

외교부는 29일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2090권, 33만쪽의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했다. 올해 공개된 문서는 주로 1990년에 생산된 것들로, 생산 후 30년이 지난 것들이다.

소련과 수교를 추진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1990년 6월 말로 예상됐던 방미 계획을 앞당겨 5월 30일 워싱턴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워싱턴에서 한·소 정상회담 추진을 지시했다. ‘김일성이 우리와의 대화나 접촉을 거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푸는 최상의 길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청와대 고위 비서진이 온갖 통로로 고르바초프 대통령 측근과 접촉해 정상회담을 타진했고, 거듭되는 요청에 마침내 소련은 5월 중순쯤 다음 달인 6월 4일에 회동하기로 동의했다. 정부는 회담 관련 사항을 ‘태백산’이라는 암호명으로 부르며 5월31일 대외 공식발표 전까지 누설되지 않도록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썼다.

소련은 ‘북한이 무척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측이 회담을 지나치게 홍보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외교문서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88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상에게 ‘소련이 헝가리식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 이외 공식 사절단을 전원 철수하겠다’고 항의했다. 주소련 북한대사대리는 한·소 정상회담 후 소련 외무성을 항의 방문해 ‘이 회담이 한반도에서의 사태를 악화시키고 남북한 간 첨예한 대립을 조장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일보

지난 1990년 12월 16일 노태우 대통령(왼쪽)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한-소 정상회담이 끝난 후 모스크바 공동선언문을 작성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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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소련은 정상회담을 한 뒤 그 해 9월 30일 국교를 수립했다. 한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수교 30주년을 맞은 바 있다.

노태우정부는 한·소 수교를 추진하면서 주한미군 철수가 가능하다는 입장도 재차 확인했다. 당시 홍순영 외무부(외교부 전신) 제2차관보는 1989년 4월 29일 소련 학술지 극동문제연구소와의 면담에서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질문에 “한·소 수교 및 4강의 교차 승인과 국제적 보장이 확보되면 주한미군 철수 가능”이라고 답했다. 당시는 프랑스 상업위성이 찍은 영변핵시설 위성 사진이 공개돼 국제사회에서 북핵 문제가 본격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1989년 9월 이전이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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