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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애틀랜타 총격 사건

애틀랜타, 총격사고는 증오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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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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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민들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 8명이 사망한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며 행진하고 있다. / 미네아폴리스|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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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3월 16일 처음으로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확산 초기에는 코로나19를 독감에 견주며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감당 못 할 수준으로 퍼지자 바이러스의 유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대응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상하이 떠나는 마지막 배>의 작가 헬렌 지아는 대통령의 ‘중국 바이러스’ 발언에 1970~1980년대 디트로이트를 떠올렸다. 중국계 이민자인 그는 1970년대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의 공장이 있는 디트로이트에서 자동차를 만들었다. 당시는 황금기였다. 산업은 날로 번창했고 노조는 강했으며, 노동자들의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6배 많은 10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호시절은 1970년대 말 석유파동과 함께 끝났다. 그를 포함해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정치인과 회사 경영진, 노조의 대표자가 누구의 책임인지를 두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헬렌 지아는 지난해 4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그들은 곧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공의 적, 일본을 찾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중국 바이러스’ 발언이 부채질

동양인은 이내 표적이 됐다. 1982년 중국계 미국인인 스물일곱 살 청년 빈센트 친이 백인 두 사람에게 살해됐다. 친은 결혼을 8일 앞두고 친구들과 술집에서 총각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가해자는 미국 자동차 제조사 크라이슬러의 관리자와 해고 노동자였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석유파동과 정부의 강화된 연비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일본 미쓰비시에서 들여와 브랜드만 바꿔 달은 차종이 그나마 잘 팔렸다. 가해자 백인들은 중국계인 친을 일본인이라 생각하고 “너 같은 꼬마 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해고됐다”고 시비를 걸었다. 이내 싸움으로 번졌고, 가해자 2명은 의식을 잃을 때까지 친을 야구방망이로 때렸다. 사건의 잔혹성에도 가해자들에게는 과실치사죄가 적용됐다. 죗값은 집행유예 3년에 벌금 3000달러가 전부였다. 가해자들은 끝까지 이 사건이 인종차별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헬렌 지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또 다른 빈센트 친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사람들에게 증오를 퍼뜨릴 허가를 줬다”고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1년 내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아시아인들은 공격을 당했다. 최악의 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바이러스’ 발언을 내놓은 지 딱 1년째 되는 날인 지난 3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일어났다. 스물한 살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이 지역 마사지숍 3곳에서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사망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미국 언론은 혐오범죄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점이 가리키는 바는 분명해 보였다. 특히 지난 1년간 아시아계를 표적으로 한 혐오범죄는 폭증했다. 미국 내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사건을 추적하는 단체 ‘스톱 AAIP 헤이트’에는 지난해 3월 19일부터 지난 2월 28일까지 혐오·차별 신고가 3795건이나 접수됐다. 더힐은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최근 연구를 인용해 지난해 미국 대도시 16곳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거의 15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약 40년 전 일이지만 빈센트 친 사건과도 더러 닮은 점들이 있다. 일본인에 대한 불만에 중국계 빈센트 친이 목숨을 잃었다면, 이 사건에서는 희생자의 절반이 한국계였다. 애초부터 분노의 대상 자체가 잘못 설정돼 있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가해자는 끝까지 인종차별을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증오범죄 혐의가 적용돼 종신형이 선고된다면 가석방이 불가능해지는 등 형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수사기관도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보다 ‘성중독’이 원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3월 22일 로이터통신은 로버트 애런 롱이 악의적 살인과 가중 폭행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증오범죄 혐의는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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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시민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총격 사건으로 3명의 여성이 사망한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마사지숍 골드스파 앞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헌화하고 있다. 애틀란타|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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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독 인정해도 증오범죄는 본질

그러나 전문가들은 롱의 성중독을 인정한다고 해도 증오범죄라는 사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롱은 경찰수사 과정에서 그가 마사지숍을 “제거하고 싶은 유혹”으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그는 3곳의 마사지숍 중 2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 업체 중 일부는 유사 성행위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기록이 있다.

그레이스 카오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이 총격 사건은 비자발적 독신에 대해 여성을 탓하는 남성을 연상시킨다”며 “여성은 거절할 권리가 없는 물건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남성이 스스로가 겪는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여성 혐오범죄의 특징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아시아 여성에 대해 서구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고정관념과 연결된다. 아시아계 미국인을 연구한 카렌 수예모토 매사추세츠 보스턴대학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순종적이며, 작다는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며 “이러한 인종주의는 미 제국주의와 전쟁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도 여러 매체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 미국은 1875년 페이지법을 통해 ‘외설적이고 부도덕한 목적’으로 미국에 오는 아시아 여성의 이민을 제한했다. 잠재적인 매춘부로 본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은 미국이 아시아지역에서 벌인 군사작전을 통해 꾸준히 유지됐다.

오랜 기간 유지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 혐오가 여느 때보다 위험해 보이는 것은 국가의 지도자들과 주요 매체들이 이 편견을 전략적으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 바이러스’ 발언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자 이를 부인하며 유래를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지지자들 앞에서는 중국 무술 ‘쿵푸’에 빗대 코로나19를 ‘쿵 플루’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보수적인 매체뿐 아니라 CNN의 앵커들도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 ‘우한 바이러스’라 불렀다. 중국이 이탈리아에 의료장비를 기증한 것을 두고도 CNN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가디언은 “선전 도구”, 보이스오브아메리카는 “가면 외교”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패션연예 월간지 ‘베니티페어’의 작가 메이 정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총격 사건을 일으킨 롱은 21세기 미국에서 살아가는 백인이다. 이곳은 전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쿵 플루’라 부르고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나라이자, 그 이후 아시아인에 대해 3800건의 폭력이 저질러진 나라”라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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