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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아동학대 피해와 대책

끝나도 끝난 게 아닌 학대···'아동학대 후유증'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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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로 고통 받던 아이···그 후엔 ADHD, 우울증 등 후유증 시달려

후유증 곪으면 '학대 대물림'까지···어릴 적 피해자가 커서 가해자로

현재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건강 관리 제도 미흡···아이들의 몸과 마음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아시아경제

학대 당하고 있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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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주미 기자] # A 양은 4살 때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늑골이 골절되고 췌장과 신장이 파열된 상태였다. 의료진은 A 양의 어머니가 딸을 발로 밟고 폭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A 양은 이때 구조됐고 올해로 22살이 됐다. 당뇨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성장장애와 노동력 상실 등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게 됐다.


최근 '정인이 사건'과 같이 충격적인 학대 사건이 계속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 아동이 가해자와 분리되고 그 이후 아동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직 관심이 부족하다. 특히 어린 시절에 경험한 학대는 생애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는 만큼 학대 피해자들의 후유증 관리가 절실하다.


학대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학대당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정신질환 발병 가능성이 4배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제 학술지 '란셋 정신의학(The Lancet Psychiatry)'에 게재된 영국 버밍엄대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유년 시절 학대를 경험한 사람이 조현병, 양극성 장애와 같은 중증 정신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4배나 높았다. 우울증, 불안장애 등 경증 정신질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2배 이상 컸다.


또 2015년 '아동학대 피해 아동의 정신질환 유병률 조사' 논문(발행기관|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하지혜,임성후,조수현)에 따르면 학대 경험이 있는 0~18세 아동 61명 중 약 50%가 한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당한 아이 둘 중 한 명은 이후에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 중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23%로 가장 높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21.3%), 우울장애(16.4%)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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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 양. 해당 사건 이후 아동학대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번졌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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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후유증을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학대 대물림'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학대로 고통받던 아이가 결국 가해자가 되어 자신이 받은 학대를 그대로 대물림하는 것이다.


계모와 친부가 7살 아이를 끔찍한 학대 끝에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원영이 사건'은 대표적인 학대 대물림 사건이다. 계모 A 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 이혼 후 계모와 친부 사이에서 자라며 학대를 당했다고 밝혔었다. 당시 A 씨를 면담한 전문심리위원도 "유년 시절부터 계모에 의해 학대를 받은 것이 쌓여 '세대 간 전수(대물림)'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진단한 바 있다.


'학대 대물림'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생애주기별 학대 경험의 상호관계성 연구'에 따르면 가정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2,153명 중 52.8%가 아동기와 성인기 때 모두 피해를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36.7%는 아동기에 학대 등 피해를 겪었고, 과거 생애과정을 통틀어 피해 경험이 없는데도 가정폭력을 행한 경우는 9.1%에 불과했다.


이렇게 어린 시절 행해지는 학대는 그 당시에 끔찍한 기억과 고통을 심어주는 것도 모자라 평생의 후유증을 남기며, 결국엔 피해자를 가해자로 내몰기까지 한다. 행복해야 할 유년 시절, 학대로 괴로웠던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학대당하며 받은 상처로 이후 삶까지 발목 잡히지 않도록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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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와 친부의 학대로 숨진 신원영군. 당시 원영군의 계모는 자신도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하지만 현재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사후 건강관리 체계는 미흡한 실정이다. 학대 피해 아동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신체적·정신적 고통에서 회복을 돕기 위해 2018년부터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제도가 도입됐지만,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


지난 2월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시·군·구 차원에서 지정한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은 8곳에 불과하고, 특히 복지부 지정 의료 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의료기관과 별도로 연계해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의료 지원을 진행하고 있지만, 2019년 전체 아동 학대 판정 사례 30,045건 중 총 401명의 피해 아동에게만 지원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보건의료시스템,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에서도 배기수 아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피해 아동을 위한) 심리치료 서비스 지원이 6개월이면 끝난다. 아이는 한창 지옥 속에 빠져 있을 때 치료는 끊기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현재 협력 기관도 병·의원, 보건소, 정신보건센터, 알코올 상담센터 정도로 피해 아동을 도울 협력 기관이 부족하다"며 "최소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특화 센터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사후 치료 제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린 시절 폭력은 한 사람에게 평생을 걸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특히, 폭력은 당하면서 학습이 돼 학대가 대물림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피해 아동에 대해 단기적인 치료뿐 아니라 장기적인 치료를 이어나가며 성장 과정을 지속해서 지켜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더불어 "취약계층의 아동들은 심리 치료 상담 등에 대한 비용이 부담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미 기자 zoom_01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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