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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땅투기, LH만의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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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부동산 매개로 한 세대착취, 이제는 끝내야 할 때

경향신문

3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3기 신도시 지역, 농지법 위반 의혹 조사 결과 발표, 농지 이용 투기세력의 철저한 수사·감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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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밤 강남 LH 서울본부 앞. 청년들이 촛불을 들었다. ‘LH 부동산 투기에 분노한 청년들 모여라 긴급 촛불집회’라는 행사다.

“기사를 보고 처음 들었던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부러움이었다. ‘잘려도 평생 월급보다 땅 수익이 많다’는 직원게시판의 말이 너무 공감됐다. 나 같아도 땅투기하겠다는 친구의 말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류기환 청년하다 대표(27)의 말이다. 류 대표가 떠올렸다는 부러움은 이내 절망감으로 변했다.

“다음은 만성적인 절망감이다. 저는 그들만큼의 정보도, 인맥도, 투자할 돈도 없기 때문이다. 대출도 못 받는다. 가진 게 없으면 돈 100만원도 쉽게 안 빌려준다. 이번 투기를 한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그들처럼 될 수 없어 절망했다. 이게 내 솔직한 감상이다.”

현재 대학 4학년 졸업반인 류 대표(홍익대 13학번)는 부모 집에 얹혀산다. 졸업하면 독립해야 하지만 생활비 이전에 보증금을 마련하는 걸 꿈도 꿀 수 없다.

“영끌이요? 적어도 제 주변에 사회생활하는 친구 중에도 주식한다는 친구는 있어도 대출받아 집 샀다는 친구는 없어요. 대학 커뮤니티 같은 데서도 나오는 이야기는 비트코인 같은 데 올라탄 운 좋은 케이스 말고 월급을 받아 집 사는 게 가능하냐는 이야기입니다.”

3월 17일 통화한 류씨는 촛불을 든 이유는 소박하다고 말했다.

“억만장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부유하지 않더라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자리도 없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비정규직인데 집값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적어도 열심히 일한다면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니냐는 것이 우리가 촛불을 들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LH 사태 초기, “나는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겠다”는 글만큼 주목받진 못했지만,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글 중엔 이런 글이 있었다.

“현재 걸린 사람들은 다 부장대우, 차장급이 대다수. 즉 전원 다 50대 이상 꼰대고 제보자는 같은 부서 밑 대리, 사원급으로 추정. (…) 우리는 걍(그냥) 닥치고 일만 하는데 불러서 욕까지 하니 들어오고 싶겠냐.”

부장 전언으로 돼 있는 이 글의 주장은 사실일까.

■ LH 사태 촛불 든 청년이 하고 싶던 말

내부제보 여부와 관련 1차 기자회견을 한 참여연대·민변 측은 “최초 전화를 받고 확인해보니 제보내용이 사실과 맞아떨어져 신원 확인을 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LH 직원뿐 아니라 일반인의 투기까지 다룬 3월 17일 2차 기자회견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제보자가 지역에서 30~40년 농사를 지어온 분들”이라며 “외지인들이 들어와 농지 가격을 올리고 폐기물을 쌓아놓는데 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의 LH 직원이 밝힌 것처럼 내부제보로부터 이번 사건이 시작됐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적발된 사람들이 대부분 정년을 앞둔 50대 이상이라는 주장은 사실로 보인다.

실제 참여연대·민변이 밝힌 최초 투기자 명단과 정치권에서 공개한 경력을 조합해보면 13명(정부합동조사단이 추가 적발했다는 7명은 제외) 중 40대는 1984년생 이모씨 1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1975년(여)·1978년생 각 1명, 1970년생 1명을 제외한 9명이 모두 1960년대생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2명 중 1명인 파주 LH 직원(58)도 추가적발자로 내사단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수사본부가 제보받아 수사 중인 전국 37명 공직자 투기의심자 중에는 50대 부부인 케이스도 여럿이다.

참여연대·민변이 밝힌 투기 공무원의 공동지분 소유자 중 일부는 주소지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면 역시 부부인 것으로 추정된다.

차명도 아니고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일인데 왜 이리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투기에 나섰을까.

‘정년 후 노후대책으로 크게 한번 땡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까. 이들의 ‘도덕적 해이’는 이번 정부의 무능 때문에 나타난 신적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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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열린 ‘LH 부동산 투기에 분노한 청년들 모여라 긴급 촛불집회’에서 한국청년연대와 청년진보당 등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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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H 직원 도덕적 해이, 문 정부 신적폐?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의 말이다.

“사실 이게 왜 공분의 대상이 되었을까 의아했다. 이들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투기의 사이즈나 수법이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들이 처음도 아니었다. 공분엔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LH가 정부를 대신해 토지수용·개발하는 기관인데 공적인 업무를 하면서 사적인 이득을 취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또 하나, ‘왜 너희만 해처먹냐,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왜 없냐’는 마음은 없는 걸까. 바꿔 말해 당신이 그 위치면 안 했겠냐고 물어보고 싶다. 광명·시흥 등기부 등본을 떼보면 신도시 지정을 앞두고 땅을 산 민간인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면 민간인은 투기해도 되나. 불로소득 공무원·공공기관 근무자의 지대추구는 비난받고 민간인은 괜찮은 걸까.”

지난 2016년 한겨레 음성원 기자는 홍대 앞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 흥미로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상수·연남동 상권지역 등기부 331개를 떼어 조사해보니 상수지역 상가 66%는 외지인이었고, 홍대 앞 문화를 만들어낸 청년들의 비중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리스크를 감수하며 대출을 동원해 부동산을 사들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당시 한겨레가 건물주 나이의 평균을 계산해보니 상수·연남·서촌 모두 똑같이 1958년 개띠로 나타났다.

그래서 당시 보도한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58년 개띠’의 상가 사냥, ‘94년 개띠’를 몰아내다.”

이 부소장은 상가나 주택을 비롯한 한국의 부동산시장 모든 영역에서 “자산을 매개로 한 세대착취 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부동산시장의 용어로 PIR(소득대비주택가격비율)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과거, 1990년대 이전이라고 부동산이 싸지는 않았고 그때도 제일 비싼 재화였다. 하지만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것이 가능했다. 고용의 질도 좋았다. 완전고용상태인데다 정년이 보장됐다. 적어도 주거 사다리는 제대로 기능했다.”

그에 따르면 IMF 환란 이후 2000년대 접어들어 경제 전반의 금융화 경향과 맞물리면서 부동산시장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금융과 맞물리면서 자산 가격은 올라가는데 좋은 일자리는 없다.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이가 많다. 젊은 세대는 죽어라 일을 해 자산을 만들어야 하는데, 벌어들여봤자 소득을 상납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합법적으로 자산을 매개로 빨대로 빨아먹는 세대 간의 착취가 일어나고 있다.”

LH 사태가 이렇게 광범위한 공분을 끌어낸 것은 부동산문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조물주 위에 갓물주’라는 말이 왜 나왔을까. 한국에서 부동산은 이제 종교적 교리 비슷하게 도그마가 됐다. 이 측면을 봐야 한다. 지난 7년 이래의 대세상승으로 민주공화국이 갈가리 찢기고 있다. 분단은 남과 북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이 다양한 유형의 분단, 갈등과 적대를 만들어내고 있고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연대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고 있다. 땅·집이 있냐 없냐에 따라, 어디에 있냐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고 있다. 배제된 사람들이 더 열을 받는 것은 그 신분이 거기에 땅이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격차가 세대 내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현상을 주목한다.

“1980년 이전 세대만 하더라도 수렴이 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지난해 30대가 ‘영끌’로 부동산 ‘패닉바잉’의 막차를 탔다고 하지만 그것도 다 가능한 것이 아니다. 속된말로 20·30대라고 하더라도 스카이(SKY)로 대표되는 친구들이 금융기관·공기업에 가면 월급도 꽤 된다. 그걸 바탕으로 충분히 돈을 빌릴 수 있고 부모찬스를 받으면 자산과 부가 증폭되는 경우가 꽤 된다. LH에서 퇴직을 앞둔 386, 50대의 경우 그들 세대 이전부터 경험해온 오래된 부동산 불패신화에 다른 습성이었을 것이다. 자산축적의 전통적인 패턴이었다. 아무리 정규직이라도 한국은 직장에서 나가자마자 소득이 없다. 연금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쾌적한 노후생활을 보장받기 힘든 건 LH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 교수 역시 LH 사태가 일으킨 공분이 자산격차에 따른 세대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토마 피케티도 지목하듯 자산을 통한 불평등 세습의 문제는 OECD 국가에서 다 나타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심하다. 자산을 가진 사람이 다른 소득도 다 높은 것은 세계적으로 한국과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럽과 같은 복지국가에서는 보통 자산이 많으면 소득이 적은 식인데 한국은 소득이 많은 사람이 자산도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산 가격, 대표적으로 주식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활성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동북아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가격이 오르면 소득증진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국민 대부분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역적 편중성이다. 국세청에서 지역별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지만 1인당 근로소득이 가장 높은 것이 강남 3구다. 사실 교육과 자산·소득이 다 연결돼 있다고 본다. 이걸 지역별로 점을 찍으면 거의 특정지역에 편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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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의 과천신도시 개발 투기 의심 지역인 경기 과천시 과천동 토지 입구에 LH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부착되어 있다. /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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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욕망열차에서 대한민국이 내리려면

3월 17일 참여연대·민변이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3월 2일 공개한 LH 직원 투기를 넘어 실제 ‘외지인들’이 개발예정지 농지거래에 나섰는가를 밝히는 내용이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참여연대 정책위원 김남근 변호사는 “보통 농지의 경우 1년에 한두 차례 거래도 일어나기 힘든데 2018년부터 3년간 경기 시흥시 과림동 한 지역에서만 130건의 거래가 발생했다”며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박현근 변호사는 “3월 2일 기자회견 후 국민의 공분을 분석해보니 (공직자) 반부패에 대한 것도 있지만 (광범위한) 반투기 여론도 상당하다는 생각에 이번 조사에 나섰다”라며 “지역을 시흥시로 한정한 조사에서 나온 결과가 이 정도면 다른 지역의 실태는 어떤지 능히 예상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부동산을 향한 욕망열차’ 탑승 욕구는 멈출 수 없는 걸까.

이 부소장은 “국가가 복지를 상당 부분 포기하니 국민이 부동산 돈을 굴려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도록 방기해온” 자산기반 복지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어찌됐든 지금까지는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만 경험했으니 설사 빚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오르는 지역에 땅과 집을 가진 나이 든 사람이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건 예상되는 일이다. 문제는 대한민국 전체가 부동산의 볼모·인질이 돼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도 따지고 보면 결국 부동산문제다. 주거비 부담이 크니 결혼을 못 하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주거비 부담없이 최저임금 받는 남녀가 만나 15평 임대주택에 살며 임대료를 거의 안 낼 수 있다면 결혼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이대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설명하면서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와 같은 세제개편을 통해 우회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고 리더의 철학 문제다.”

부동산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한다면 부동산을 최우선 해결과제로 두고 지도자와 국민이 허심탄회하게 극복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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