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투기 관리·고위직 많은데… 하위직 책임 전가 논란
"재발방지도 선별 필요… 신상필벌 원칙이 더 중요"
신입·하위직 공무원 ‘부글부글’... "고위직 수사부터"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땅 투기 사태 후속조치 차원에서 현재 4급(서기관) 이상인 공무원 재산등록 기준을 중하위직인 7급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공무원 사회에서는 정부 후속대책이 LH 직원 땅투기 사건을 일부 공기업 직원이나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일탈로 ‘꼬리 자르기’하는 것에 방향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후 검찰의 강제수사를 배제하고 국무총리실, 국토교통부 중심의 ‘셀프조사’로 투기 비리 사건의 증거인멸 기회를 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정부가, 사건의 전모를 ‘일부 직원의 개인적 일탈행위’로 규정하기 위해 이같은 후속조치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합동조사단의 8일 동안 전수조사에서는 청와대와 국토부에서는 땅 투기를 위한 신도시 후보지 토지 매입이 단 한건도 적발되지 않았고, LH직원 20명의 토지 매입 사실만 밝혀낸 바 있다. 이번 땅 투기 비리 의혹이 정부 고위 공직자들로 화살이 튀는 것을 막으려고 정부가 중하위직 공무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 재산등록 7급까지 확대되나.... 차관 등 고위직 투기 의혹 ‘눈 뜬 장님’ 행세
18일 복수의 정부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7일 열린 제17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공무원 재산등록 대상 기준을 4급 이상에서 7급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체 7급 공무원으로 재산등록기준을 전면적으로 낮추는 방안, 부동산 등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자활동을 할 수 있는 업무에만 국한할 것인지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지 국세청장,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홍남기 부총리,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영 행정안전부 차관 /기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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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무원의 재산등록 대상은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정무직 공무원, 4급 이상 공무원, 교육감, 법관·검사, 대령 이상 장교, 공기업의 장, 공직유관단체임원 등이었다. 다만 경찰·소방·국세·관세 등 특정분야는 7급 이상 공무원도 재산등록을 하고 있다. 7급 이상 직원으로 재산공개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은 현재 드러난 공무원들의 신도시 후보지 토지 매입 사례가 5~6급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광명·시흥시가 자체적으로 신도시 후보지 토지 매입 사실을 밝혀낸 공무원 14명은 대부분 퇴직이 얼마남지 않은 5~6급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지난 15일 압수수색을 한 포천시청 소속 공무원도 5급이었다. C씨는 2019년부터 1년가량 도시철도 연장사업 담당 부서 간부로 근무했던 그는 지난해 9월 신용·담보 대출 등으로 40억원을 마련해, 자신의 부인과 공동명의로 도시철도 연장 노선의 역사 예정지 인근 2600여 ㎡ 땅과 1층짜리 조립식 건물을 매입했다. 잇따라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세종시는 한 6급 공무원과 같은 공무원인 그의 부인, 같은 공무원인 부인, 동생인 4급 간부 등의 투기 혐의를 찾아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이에 비해 아직까지 국장급 이상 현직 고위 공직자 등의 투기 혐의를 적발, 수사 의뢰된 사례는 한건도 없다. 전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 청장(차관급)을 역임한 인물이 세종시 스마트 국가단지 후보지에 토지를 매입한 것을 세종시 경찰이 내사를 벌이는 것이 유일한 고위공직자 관련 사건이다. 청와대 비서관 출신 박영범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의 배우자가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농지를 쪼개기로 매입한 것이 논란이 됐지만, 본인은 "주말농장용"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 뒷북에 고위직 면죄부…"이러다 증거는 찾겠나"
하지만, ‘실효성 없는 뒷북 조사’라는 비판을 받는 정부합동조사단의 전수조사를 근거로 투기 비리가 중하위직 공무원들에게 집중됐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의 전수조사 자체가 수사권이 없는 국무총리실과 국토부가 조사 대상의 자발적 동의서를 받아 진행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비리 적발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부도 전수조사로는 부동산 차명거래를 찾을 수 없다고 인정한 바 있다.
특히 공직 사회에서 평판을 중시하는 고위 공직자의 경우 본인 실명으로 투기성 토지 거래 등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전수조사로는 적발할 수 없다. 부처 차관까지 경력을 쌓은 후 장관 후보자로 지명을 받은 후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등으로 낙마한 공직자들은 예외없이 배우자나 인척 명의 부동산 거래가 문제가 됐었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행정고시 출신 과장급 이상 공직자들은 향후 더 높은 공직 진출을 위해 평판 관리를 하기 때문에 본인 명의로 문제가 될 부동산 거래를 하지 않는다"면서 "재산증식을 위한 투자를 하더라도 인척 명의로 하기 때문이 본인 실명으로 된 부동산 거래를 찾는 방식으로는 비리 적발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LH 직원’을 전수조사할 게 아니라, ‘돈 되는 땅’을 전수조사하고 매입자금을 따라가야 한다. 총리실, 국토부 조사처럼 LH나 청와대 직원 상대로 등기부만 보면서 땅 샀는지 안 샀는지 말로 물어보는 전수 조사를 할 게 아니다. 그렇게 말로 물어봐서 뭘 밝힐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불완전한 정부전수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를 바탕으로 재산등록의무를 7급 공무원 이상 등으로 확대하는 것은 고위 공직자의 투기 가능성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자칫 고위 공직자는 투기 가능성이 없으니, 중하위직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LH사태 같은 비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결론으로 흐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인사는 "단순히 토지 소유 직원을 찾는다고 9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했고 증거를 은폐할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며 "애초에 강제 수사로 전환했다면 의심거래 혐의자를 찾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지들만 꿀빨고" "고위직 수사나해라" 하위직의 분노
정부가 7급 이상 공무원에 대한 재산등록 강화를 검토하면서, 하위직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뉴스의 댓글과 7급 공무원 커뮤니티에서는 "왜 지들만 꿀 다 빨고 이제 재산등록 의무화하냐", "9급? 에라 물타기 하려고 신입사원까지 이용하네", "재산이 있지도 않은데 등록해서 뭐하냐", "물타기 하지말고 LH 전직원 및 배우자 국회의원과 배우자 전수조사해라" 등의 반응이 나왔다.
한 지역의 자자체에서 감사 담당으로 근무했던 한 공무원은 "재산등록은 자산이나 채무 등 민감한 개인정보들이 노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5~7급 공무원이 재산등록을 할 경우, 그에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크다"며 "과거 경험을 봤을 때, 부부 사이에 정말 난리가 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공무원 부부의 경우, 서로의 재산등록을 해야한다. 또 공무원과 민간기업 부부의 경우, 공무원 남편이나 부인으로 인해 자신의 재산을 등록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부인을 둔 한 직장인은 "어느날 부인이 주식을 하느냐고 물어봐서 깜짝 놀랐다"며 "아내가 재산등록 부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재산을 등록하면서 내 재산까지 들여다 보면서 좀 불쾌했다"고 했다.
한 경제부처에서 근무하는 사무관(5급)도 "사고는 고위직이나 정년을 앞둔 사람들이 쳤는데, 하위직이나 우리같은 신입들한테까지 그런 의무(재산등록)를 부가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전부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것보다는 정교한 선별과 신상필벌의 원칙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세종=박성우 기자(foxps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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