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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내가 쏜 총에 희생됐다” 5·18 당시 공수부대원, 유족 만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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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용기 내 줘 고맙고 앞으로 마음 편히 살아달라” 되레 위로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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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무고한 시민이 사망했다며 유족을 만나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간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계엄군들이 자신들이 목격한 사건들을 증언한 경우는 많이 있었으나, 가해자가 자신이 직접 발포하여 특정인을 숨지게 했다며 유족에게 사과 의사를 밝힌 경우는 최초다.


17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에 따르면 전날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을 사망케한 계엄군 A씨와 유가족 간 화해의 자리가 열렸다.


이 자리는 당시 작전에 참여한 계엄군이 자신의 행위를 고백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조사위에 전달했고 유족도 가해자의 사과를 수용함으로써 마련됐다.


A씨는 희생자 故 박병현 씨의 두 형제 등 유가족을 만나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이어 “저의 사과가 또 다시 아픔을 줄 것 같아 망설였다”며 “지난 40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제라도 만나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울먹였다.


故 박병현씨 형인 박종수(73)씨는 “늦게라도 사과해줘 고맙다”며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용기 있게 나서줘 참으로 다행이고 고맙다”면서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고 말하며 A씨를 안아줬다.


한편 故 박병현(당시 25세)씨는 1980년 5월 23일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인 보성으로 가기 위해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소재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지나가다가 당시 이 지역을 순찰 중이던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의 A씨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총격 당시의 상황에 대해 “1개 중대 병력이 광주시 외곽 차단의 목적으로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소로길을 이용해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민간인 젊은 남자 2명이 저희들(공수부대원)을 보고 도망갔다”며 “정지할 것을 명령했으나, 겁에 질려 도주해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고 진술했다.


또 “박병현 씨의 사망 현장 주변에는 총기나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며 “대원들에게 저항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그간 조사위는 조사활동을 통해 A 씨의 고백과 유사한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향후 계엄군과 희생자(유가족) 간 상호 의사가 있는 경우에는 조사위가 이를 적극 주선, 사과와 용서를 통한 불행한 과거사 치유 및 국민통합에 기여할 예정이다.


5·18민주화운동 유족회 김영훈 회장은 “이제라도 용기 있게 고백을 해줘서 유족을 대표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건강관리에도 힘써주길 바라고 당시 작전에 동원된 계엄군들이 당당히 증언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yjm30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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