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데일리 언론사 이미지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美…김정은 그래서 화났나

이데일리 이준기
원문보기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美…김정은 그래서 화났나

속보
'수십억 횡령' 박수홍 친형 2심 징역 3년6개월…형수는 집유
美 여러차례 막후접촉 시도에도…北 침묵 일관
바이든 "폭군"·김정은 "바보"…정상 악연 탓?
北 경제위기 등 내부문제로 대화 뒷전 관측도
美고위들 “북 비핵화” 고집에 北 화났다 분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FP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FP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미국은 여전히 북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국이 북핵(北核) 문제를 거론할 때 바뀐 문구가 있다.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부터 종전 트럼프 행정부까지 줄곧 써오던 ‘한반도 비핵화’의 자리를 ‘북한 비핵화’가 대신하고 있다. 북한으로선 줄곧 비핵화의 정의를 ‘남북 및 주변’까지로 주장해왔던 만큼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바이든표(票) 신(新) 대북정책의 얼개가 수 주 내 잡힐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의 물밑접촉 시도를 무시한 채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라며 짧지만 강한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배경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北, 북한 비핵화 문구 적대적 판단

15일(현지시간) 인터넷매체 복스 등 미 주요언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접촉하려 했던 건 사실로 판명됐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13일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채 한 달이 안 된 지난달 중순부터 뉴욕 채널(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을 비롯해 여러 통로를 통해 북한과 물밑 막후접촉을 수차례에 걸쳐 시도했으나 그 어떤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로이터통신의 보도를 확인한 것이다.

이제 궁금증은 ‘왜 북한이 침묵으로 일관하느냐’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악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먼저 나온다. 작년 5월 당시 미 민주당 유력대선후보였던 바이든은 유세에서 김정은을 “독재자” “폭군” 등으로 표현했고, 이에 북한은 바이든을 ‘아이큐(IQ)가 낮은 바보’(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라고 맞받은 바 있다. 또 하나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및 이로 인한 극심한 경기침체 등으로 북한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미국과의 외교보단, 당장 국내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처지 탓이라는 관측도 적잖다. 미들베리 국제연구소의 조슈아 폴락 북핵 프로그램 전문가는 “북한은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보다 유력한 분석은 따로 있다. 북한이 미국의 ‘대화’ 시그널을 ‘적대적’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는 논리다.


트럼프 행정부의 ‘톱·다운’(하향식)·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등 편차는 있었으나 사실 미국의 대북정책은 1992년 이후 대부분 일관됐다는 게 중론이다. 대북정책의 핵심이 바로 ‘한반도 비핵화’였다는 점이다. 즉, 한국에 핵을 허용하거나 배치하지 않을 테니, 북한 역시 이에 부응하는 비핵화에 나서야 한다는 게 골자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 북한은 더 폭넓게 이를 해석하고 있다. 2018년 조선중앙통신의 논평을 보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한뿐 아니라 주변지역의 핵 위협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AFP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AFP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 고위 관리들은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단어를 선호하고 있다. 외교·안보 투톱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이번 주 진행하는 한·일 순방을 앞두고 진행한 브리핑에서 “북한 비핵화를 포함한 광범위한 국제문제에 대해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다시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복스는 “이는 북에 강경한 입장인 일본과 같은 미국의 동맹을 기쁘게 할 순 있으나 평양과 외교채널을 지속하려는 한국 정부는 물론, 김 위원장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전문가들 “北 불만 증폭시킬 것”

만약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과 같은 스탠스를 유지한다면 북한과의 긴장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폴락 전문가는 “바이든 행정부가 왜 ‘북한 비핵화’라는 언어를 택했는지 분명치 않다”며 “미국이 일방적인 군축을 요구하길 원한다는 북한의 불만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했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앤킷 판다 선임연구원도 “(북한 비핵화가) 바이든 행정부의 새 공식이라면 북한이 어떤 제의에도 답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긍정적인 시그널을 볼 때까지 대화의 첫발을 내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김여정 부부장은 조선중앙방송·노동신문을 통해 낸 담화에서 “대양 건너에서 우리 땅에 화약내를 풍기고 싶어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의 새 행정부에 한 마디 충고한다”며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나온 첫 공식 대미(對美) 메시지로, 미 외교·안보 투톱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