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와의 전쟁> 포스터 |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이봐라 이거. 그런 정보력으로 임마 무슨 수사를 한다고 그라노?"
영화 ‘범죄와의 전쟁’ 한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다. 1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한 정부 자체조사 결과를 보자 이 대사가 떠올라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기자회견 현장에도 허탈감이 감돌았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목요 브리핑에선 온통 LH 관련 질문만 쏟아졌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터지자 ‘발본색원’ ‘패가망신’ ‘투기와의 전쟁’ 등 온갖 무서운 표현으로 엄포를 놨다. 그런데 막상 자체조사에선 1만4000명 중에서 겨우 LH 직원 7명을 추가 확인하는 데 그쳤다. 청와대도 0명, 국토부도 0명이라고 한다. 과연 누가 믿을까. 그러잖아도 투기 땅에 빽빽이 심어진 묘목 장면으로 충격받은 국민들의 속을 되레 후벼판 셈이다. 현직 공무원만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퇴직자가 최종 승자'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어차피 예상된 결과였다. 현직 공무원들의 실명 거래내역을 단순 조회하는 방식으로는 가·차명이나 미등기 거래 등 불법적 요소를 전혀 가려낼 수 없다. 어느 공무원이 내부정보로 몰래 투기에 나서면서 본인 실명을 쓰겠나. 그나마 이런 방식의 조사에서 발각된 투기의심자들은 순진한 편이라고 보는게 옳아보인다.
불법은 성실하다. 악질적 투기는 훨씬 더 치밀하고 꼼꼼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배우자 혹은 사돈팔촌, 나아가 친한 지인 등 명의를 빌린 악성 투기사례를 죄다 밝혀내지 않는 이상 국민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경찰 수사에서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반드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퇴직자들’이다. 이번 실시된 정부조사는 ‘현직 공무원’만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일각에선 ‘이미 돈 벌 사람은 다 벌고 떠났다’는 자조적 목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강제권도 없는 괜한 조사 시늉이 아니라, 전·현직을 망라한 주택·토지 관련 업무 공직자 명단을 확보해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다.
세종=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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