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찾은 경기도 하남교산 공공주택지구 주민대책위원회 본부 사무실 앞. ‘신도시 살인 개발 수용 절대 반대’. ‘대대로 조상묘는 어디로 가야하나’, ‘신도시 수용한 하남시장 퇴진하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기자가 대책위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백발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주민대책위 사무실로 찾아와 "선하지(송전탑 아래 땅) 피해 좀 잘 해결해달라"고 호소했다.
LH 임직원의 3기 신도시 예정지 투기 의혹이 커지면서 올해 7월부터 계획돼있는 3기신도시 등 수도권 주요 택지 사전청약 일정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토지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인데 정부는 예정대로 분양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9일 하남교산 공공주택지구 주민대책위원회 본부가 있는 건물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허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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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하남교산·남양주 왕숙·고양 창릉, 인천 계양 등 수도권 3기 신도시 주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수도권 3기신도시 지역 주민위원회는 연합해 집회 등 단체행동을 하는 카드를 준비 중이다.
하남 교산·남양주 왕숙 공공주택지구 주민대책위 관계자들은 "국토부와 LH, 경기도시공사, 시청 등에 LH직원들의 투기 의혹의 진위가 명명백백 밝혀질 때까지 지장물(支障物) 조사 등 일체의 보상 절차를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들은 "어제 3기신도시가 연합해 집회를 벌이는 방안도 나왔다"면서 "조만간 이에 관한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장물은 시설물, 창고, 농작물, 수목 등 공공사업시행 지구에 속한 토지에 설치 또는 재배되고 있어 공공사업 시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을 칭한다.
토지보상 절차에 돌입한 하남교산 지역에서 반발 분위기는 조금 더 거센 상황이다. 최근 하남교산 주민대책위원회는 토지, 건물, 지장물 등으로 받을 수 있는 직접 보상 중 지장물 보상 전면 거부를 선언했다.
이강봉 하남교산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그동안 간담회와 공문 등을 통해 제시한 주민 요구사항이 하나도 이뤄진 게 없다"면서 "지장물 조사가 이뤄지면 모든 권한이 LH로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항할 수 있는 힘이 무력화하게 된다.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확보되지 않는 한 지장물 조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남 교산지구 일대 모습 /허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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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교산 토지주들의 반대 목소리에는 보상금과 이주대책 미비 문제, 선하지 토지보상 차감 금액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 선하지란 선 아래 있는 땅, 즉 특고압 가공 전선이 가설돼있는 토지다. LH는 한전이 지상권을 설정하고 토지주들에서 사용료를 지급하던 이런 땅의 보상 금액을 산정하면서 땅값에서 사용료 가치만큼을 차감한 금액을 제시했다. 사용료 가치에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주민위 관계자는 "하남 교산 4200명의 토지 소유주 중 약 60%가 선하지 보상 차감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와 LH가 하남 교산이 3기 신도시 계획이 속속 추진되고 보상 절차도 상당히 진행된 것처럼 알리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이곳이 대대손손 모여살아온 집성촌이다보니 한 사람이 2필지 이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출 이자나 세금 등의 이유로 소유 필지 중 일부만 보상을 받은 것까지 다 포함시켜 보상이 상당히 추진된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보상 단계를 앞두고 있는 남양주 왕숙 주민대책위도 LH와의 보상 과정을 전면 보이콧한다고 했다. 아예 3기 신도시 계획을 백지화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용환열 남양주 왕숙2지구 주민대책위 수석부위원장은 "LH 직원 뿐이겠느냐. 정치인과 공무원 등 밝혀지지 않은 투기 세력이 더 있을 것이고, 이게 100% 다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발 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투기를 전면 차단할 수 있는 관련 법규부터 정비한 뒤 제3의 후보지역을 뽑아 3기 신도시 계획을 추진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했다.
하남교산에서 만난 토지 소유자들은 "국토교통부의 자체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면서 "검경 수사로 확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사·감일 택지지구 개발 당시에도 투기 의혹들이 있었다"면서 "3기 신도시에 드러나지 않은 정부 관계자들의 투기가 있었을 것이란 의심이 든다. 과연 국토부가 진정성 있는 조사를 할 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가뜩이나 만만치 않은 힘겨루기를 해야하는 게 보상 절차인데, 보상을 이끌어내야하는 주체인 LH와 국토부에 대한 신뢰도에 금이 가면서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LH에 따르면 현재 3기 신도시 가운데 현재까지 보상을 마무리한 지역은 한 곳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동산 업계에선 정부가 3기신도시 주택 공급을 계획대로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보상 협의 과정과 관계없이 공익사업을 이유로 용지를 강제로 취득할 수 있는 토지수용제도가 있는 만큼 정부가 강행할 것으로 본다.
청와대와 국토부 역시 3기신도시 공급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9일 오후 춘추관에서 정례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투기는 투기대로 조사하되, 정부의 주택 공급대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려선 안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3기신도시 주택 공급 계획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7월 사전분양 등 계획대로 추진할 것으로 보이나, 3기신도시 뿐만 아니라 GTX 신설 지역 등으로 투기 의혹이 더 확대되거나 사회적, 정치적 부담이 커지면 지연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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