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피난민 간사이 소송단 대표 모리마쓰 아키코 인터뷰
후쿠시마에 살다가 2011년 3월 11일 대지진 이후 피난민이 된 모리마쓰 아키코와 자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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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마쓰 아키코(森松明希子·47)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福島)현 고리야마(郡山)시에 살았다. 10년 전 대지진이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꿔놨다. 집을 잃고 이산가족이 됐다. 지진 발생 두 달여 만에 3세, 5개월 된 아이들을 데리고 오사카(大阪)로 피난 갔다. 내과의사인 남편은 아직 후쿠시마에서 일하고, 모리마쓰 아키코는 탈핵운동가가 됐다.
모리마쓰는 지진이 일어난 2011년 3월11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 아침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8층짜리 집에서 생후 5개월 된 딸과 함께 있었다. 땅이 크게 흔들리면서 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수도관이 파열되더니 녹 섞인 연갈색 물이 방에 쏟아져 들어왔다. 사방에서 식기와 전자제품이 날아왔다. 이러다 깔려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딸을 업고 필사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저녁에서야 가까스로 네 식구가 모였다. 가족 모두 무사했지만, 거리 풍경은 처참했다. 건물이 무너졌고 도로가 함몰됐다. 담장이 무너지고 깨진 유리창 파편이 거리에 널브러졌다. 피난하려는 자동차들로 주유소가 장사진을 이뤘다. 사람들이 떠나고 있었다. 쓰나미가 생겼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다는 소식은 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
한 달 정도는 남편이 일하던 병원에서 숙식했다. 거리에 붙은 방에는 “힘내자”, “부흥”과 같은 말들이 적혀 있었다.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과 땅이 오염됐을 텐데, 수돗물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보도를 보고도 그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생후 5개월 된 딸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렸다.
2011년 5월 오사카로 피난한 후에도 고통은 계속됐다. 지진 당시 원자로 4기가 파손됐고 그중 2기가 폭발했다. 정부는 사고 직후 원전 반경 20㎞ 지역 11개 시정촌(市町村) 8만8000명에게 피난 지시를 내렸다. 지난 10년간 그 중 4개 지역의 피난 지시를 해제해 피난민 5만2000여명을 돌려보냈고, ‘부흥거점’까지 지정해 내년 봄부터 추가로 피난민을 되돌려보낼 계획을 세웠다. 다시 후쿠시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피난민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그는 원자력발전소는 깨끗하고 안전한 줄 알았다. 컴퓨터로 완벽하게 제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후쿠시마 참사 후 생각이 바뀌었다. 원자력은 “꿈의 에너지가 아니라 실책”이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의 본질은 피폭의 문제”라고 했다. ‘피폭에서 벗어날 권리’를 위해 싸우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지진에 취약한 바닷가에 발전소 54개를 세운 일본에서는 “언제든 후쿠시마의 참화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전 사고 피해자들은 2013년 9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간사이(關西) 지방으로 피난한 원고 240명을 대표하고 있다. 피난민들은 정부에 진실 규명과 피해자 구제·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소송은 7년 넘게 오사카지방법원에 계류 중이다.
모리마쓰는 지난 10년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의 교훈을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오염지역 귀환 정책에만 주력하고 있다”면서 “오염수를 처리수, 오염토양을 제거토양, 방사능 피해를 소문피해(허위 정보로 인한 피해)라고 부르면서 여론을 통제했다”고 비판했다. 또 오염수 방류는 “부끄러운 행위”라며 “뻔뻔한 일본 정부를 대신해 세계인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10년인 올해 7월 열릴 예정인 도쿄 올림픽을 ‘부흥올림픽’으로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올림픽을 유치하며 후쿠시마 사고 현장을 두고 ‘언더컨트롤(통제됐다)’이라고 한 데 대해 “통제되고 있는 것은 원전이 아니라 여론과 언론”이라고 말했다. 모리마쓰를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e메일로 인터뷰했다.
모리마쓰 아키코가 지난해 2월21일 오사카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재판기일에 참석한 뒤 소송단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어 재판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오사카|모리마쓰 아키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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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가도 지옥, 머물러도 지옥”
-후쿠시마 참사 후 10년간 어떻게 지내셨나.
“피폭으로부터의 자유, 피난할 권리를 호소하는 날들이었다. 후쿠시마 주민들은 피난을 가도 지옥, 머물러도 지옥이다. 피난해도 아무 보장이나 보호가 없기에 괴로웠다. 피난민들은 괴롭힘을 당하거나 차별받았다. 머무른 사람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계속 마주해야 한다. 피폭 방호 대책이나 제도도 없는데, 저선량 방사능에 계속 노출된다.”
-일본 정부의 피난민 지원책은 어땠나.
“정부는 ‘강제 피난민’과 ‘자주 피난민’을 나눠서 차별 지원했다. 소수의 ‘강제 피난민’에게만 배상금을 지급해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다. 오염 여부와 관계없이 정부가 임의로 강제 피난 구역을 선을 긋고, 그 외에는 자발적인 피난이라고 이름 붙여서 사람들에게 ‘피난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부러 피난했다’는 인상을 줬다. 내 주변에는 갑상선암에 걸린 사람도 있지만,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해 고생하고 있다.”
-후쿠시마 출신 피난민들은 어떻게 차별받고 있나.
“피난했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살아야 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부흥’, ‘힘내자 도호쿠(東北)’, ‘일본은 하나’ 같은 구호로 전체주의를 강요한다. 피난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늘면서 ‘숨은 피난민’이라는 말도 생겼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사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트라우마를 말하려 해도 비난받을 것이 뻔하기에 제대로 말할 수 없다. 이 악순환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피폭을 피하려고, 스스로나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피난했는데, 그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모리마쓰가 살던 고리야마시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60㎞ 떨어져 강제 피난 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집을 잃고 피폭을 피해 떠나왔지만,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지진·해일에 의한 자연재해, 원자력 재해라는 인재로 인한 피난민은 국내 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국내실향민이란 “자신의 집 또는 일상적 거주지에서 강제적 또는 의무적으로 도피하거나 떠나도록 된 사람들”이다. 유엔난민기구는 무장 분쟁, 폭력 상황, 인권유린뿐 아니라 자연재해나 인공재해의 피해로 실향한 사람도 국내실향민으로 보고 있다.
-왜 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섰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의 본질은 피폭의 문제이다. 우리는 원치 않는 피폭을 피할 권리가 있다. 피난한 사람만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통하는 생명권과 건강권이라는 기본적인 인권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 헌법은 ‘평화 속에 생존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난 10년간 시민을 피폭으로부터 지키려는 정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진실 규명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고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26일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해 폐로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후쿠시마|교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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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제거토양·소문피해…교묘한 여론 통제
-후쿠시마에 지난달 13일 규모 7.3의 지진이 또 일어났다.
“일본은 지진 열도다.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지진 후 쓰나미가 온다. 일본 내 54개의 원전은 모두 바닷가에 세워져 있다. 언제 어디서나 후쿠시마의 참화를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원전 폭발하더라도 쉽게 도망칠 수 있다고 너무 믿고 있다. 사실은 도망갈 수가 없다. 사람들이 피폭에 대한 위기감이 너무 없는 것같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환경을 계속 오염시키는 판단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일본이 최근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려고 한다.
“지구환경을 태연히 오염시키는 뻔뻔한 정부를 대신해 세계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도쿄전력이나 정부는 희석해서 방류하면 된다고 했는데, 정말 창피하다. 세상 여러분께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대신 ‘처리수’라고 부른다.
“마치 처리가 끝나 방사능이 없는 깨끗한 물이 됐다고 오해하게 하는 표현이다. 일본 언론들은 ‘오염토양’도 ‘제거토양’이라고 바꿔 말한다.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 살던 주민 피해도 ‘소문피해(風評被害, 풍평피해)’라고 한다. 피해자의 호소를 근거 없는 루머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오염의 근거가 데이터로 나타나도, 소문으로 치부하는 마법의 단어를 쓰고, 방사능 오염 사실, 주민들의 피폭 사실을 금기시한다. 언론을 봉쇄하고 사람들의 입을 막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도쿄올림픽을 유치할 때 후쿠시마 원전을 두고 ‘언더컨트롤’이라는 말을 썼는데, 진짜 통제되고 있는 것은 여론이고 국민의 언론이다.”
-일본에서 다시 원전을 늘리자는 움직임이 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해 핵 재해로 인한 피해자가 다시 생기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피해가 있는데, 없던 일로 할 수 있나.”
[관련기사]스가 총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들고 “마셔도 돼요?”
일본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시의 한 도로가 지난달 14일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흙에 뒤덮여 있다. 일본 기상청은 전날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규모 7.3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니혼마쓰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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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의로부터의 자유’는 기본권
-한국에도 원전이 많다.
“원전 사고가 나면 주변 경계, 국경을 넘어 무차별적으로 방사능이 퍼진다. 정부는 원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과학 논쟁으로 떠밀면서 인과관계가 증명될 때까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한다. 후쿠시마 사고의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는 국가와 도쿄전력의 태도가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원전으로 ‘저렴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원전은 한 번 사고를 일으키면 배상이나 환경오염 대책으로 비용이 커진다. 일본 정부가 피해 지역과 피해자를 축소함으로써 배상을 꺼릴 뿐이다. 피해자 구제의 비용을 잘라버리면서 ‘저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성실하고 사기적이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목표는 피폭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핵발전, 핵무기, 핵실험과 같은 모든 핵 재해로부터 사람들이 ‘평화 속에 생존할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이 권리가 제대로 확립될 때까지, 나는 온세상의 여러분과 연대하고 싶다. 부디 후쿠시마 원전 피해의 실상을 알고, 우리가 가진 건강을 누릴 권리를 포기하지 말고 함께 걸어주시기 바란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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