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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LH 임직원 투기 논란

文정부 '충분하다'며 공급 틀어막는동안… "틀렸다는걸 안 LH 직원들이 투기 나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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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사전 투기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주택 공급을 옥죄는 방향으로 정책을 잘못 잡은 것이 사태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공급을 억제하는 대책을 연이어 내놓는 동안, 누구보다 정부 정책 방향의 귀결을 잘 아는 LH 직원들이 발 빠르게 사익 추구에 나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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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발표대책과 강남 아파트 평당시세 변동(단위:만원/평)/경실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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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타수 無안타, 타율 0.000…"진단이 틀리니 처방이 맞을 리가"

9일 건설·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권에 들어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은 총 25번 나왔다. 지난 2017년 5월 집권 후 한달 만에 첫 대책이 나온 이후 ▲2017년 6회 ▲2018년 5회 ▲2019년 6회 ▲2020년 7회 ▲2021년 2월말 현재 1회 등이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25번의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 상승은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75개 단지 99㎡(30평) 기준 평균 가격은 2017년 5월 6억 4000만원에서 지난 1월 11억 4000만원으로 5억원 올랐다. 78%의 상승률로 사실상 두 배 가까이가 된 셈이다. 이 기간 하락세·보합세를 보인 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25번의 대책 중 ‘공급’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대책은 6번, 24%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다수의 대책은 주로 대출 제한으로 부동산 보유를 위한 장벽을 높이고, 주택 보유자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형태로 이뤄졌다.

정권 초부터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 안정화를 위해 공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충고했지만, 정부·여당은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투기 수요"라며 공급을 틀어막은 채 수요 억제책만 계속 내놨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수급 요인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했다"며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당연히 안정될 수밖에 없고, 규제는 시장을 경색시키기 마련인데 정부는 문제의 요인을 투기로 속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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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민경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당·정·청은 한목소리로 ‘투기와의 전쟁’ 의지를 내세우며 ‘공급 없이 시장 안정’을 호언장담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나섰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2020년 1월 7일 신년사), "집값이 급등해 서민에게 박탈감을 안겨준 지역에 대해서는 과거 집값 수준으로 되돌리겠다"(2020년 1월 14일 기자간담회) 등의 발언이 나왔지만 실현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첫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돼 지난해 12월말까지 3년 6개월간 부동산 문제의 주무장관이었던 김현미 전 장관은 2017년 8·2 대책부터 "서울·수도권 주택 공급량은 수요량을 상회한다.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7월까지도 ‘현재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보나’는 물음에 "아니다. 서울에서 연간 4만 가구 이상 아파트가 공급되고 있고 최근 3년간 서울의 인허가·착공·입주 물량도 평균보다 20~30% 많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서울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키를 쥐고 있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지난해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울시 부동산 공급은 충분하다"면서 "공급 측면은 (문제가) 아니다. (시장에서) 부동산으로 큰 이득을 얻는다는 생각을 못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8·2대책 다음날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밑그림을 그린 김수현 전 청와대 사회수석은 "부동산 가격에 대해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2019년 상승장이 본격화됐을 때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일부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는 일은 반드시 막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책의 결과는 항상 집값 상승으로 귀결됐다.

◇ 뒤늦게 공급 대책 발표했지만…그 사이 LH 직원들만 노났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낳았다. 고준석 교수는 "공급이 선순위가 돼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규제 선순위의 정책을 펼쳤다"며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민간 정비 사업이 지연·취소된 상황에서, 종합부동산세·양도세 등 세금규제를 강화한 게 기존 매물의 순환까지 막아 가격의 상승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 학과교수도 "지난 3년 반 정도 정부가 공급을 늘리지 않아 앞으로 3~4년간 공급 부족에 따른 시장 불안을 일으킬 것"이라며 "주택임대차보호3법이나 대출 규제들도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던 규제들"이라고 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공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한 것은 지난해 8·4대책 이후였다. 하지만 3년 반 사이 부동산값 폭등은 이미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 현상으로 대두됐고, 중·장기 공급 절벽으로 인한 가격 상승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난해 8·4 대책 이후 공급 확대 기조로 전환한 것을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란 반응을 보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급 대책의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며 "정권 시작 후 바로 공급 대책부터 내놨어야 하는데, 지난 2018년 말에서야 3기 신도시 구상을 내놓으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사업에 착수·진행할 절대적 시간이 너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그 사이 땅의 가치도 함께 높아졌다. 권대중 교수는 "강남 재건축의 분양가가 높은 것은 결국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라며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토지 가격도 올라 투자·투기도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LH 직원들이 이 틈새를 노렸다고 분석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LH 재직자들은 항상 실물과 정책을 접하니 향후 흐름에 대해서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개발업 관계자도 "LH 직원들 중에는 구체적 사업 정보는 몰랐어도, 공급 억제 정책을 보고 토지 시장까지 불안해질 것은 알아서 선제적으로 나선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며 "캐내 보면 여기저기 (LH 직원들이) 사놓은 땅들이 꽤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공인중개업 관계자는 "흔치는 않지만 땅값이 오를 걸 전망하고 땅을 보러 온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집값이 천정부지인데 땅값이라고 가만 있겠냐는 얘기였다"면서 "하물며 LH 직원들이면 조금은 더 촉이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고준석 교수는 "대출 규제에 내 집 마련도 막힌 국민 입장에선 정작 투기용 토지는 대출받아 마련했다는 뉴스에 허탈할 것"이라며 "LH 직원들의 땅 투기는 국민감정과 맞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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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일부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의 한 토지에 8일 오후 묘목이 빽빽하게 심겨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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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훈 기자(its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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