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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월드리포트] "죽여 버리겠다"…위안부 왜곡 비판 美 학자에도 재갈 물리려는 日 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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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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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 종족주의 보고 판단해라"…노벨상 수상자에게 온 日 극우 이메일

하버드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반대한 경제학자들의 연판장에 노벨상 수상자로 처음 이름을 올린 사람은 하버드 경제학과의 에릭 매스킨 교수였습니다. '게임 이론'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그가 연판장에 서명한 것 자체가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얼마나 많은 결함이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왜곡 논문을 전개하는 논리로 경제학의 게임 이론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일본 극우가 굉장히 발 빠르게 매스킨 교수에게 항의 이메일을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처음에는 매스킨이 '이상한 메일을 받았다'는 수준의 소문을 들었는데, 여기저기 수소문해 어렵게 이메일 전문을 입수해보니 내용이 가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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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자는 역사적 진실을 위한 세계 연합회(The Global Allocance for Historical Truth)라는 극우 단체였습니다. 메라 고이치라는 인물이 설립한 유명한 극우 단체로 글렌데일 시에 설립된 소녀상 철거 소송을 주도했던 단체입니다. 미국 역사학자들을 상대로는 위안부 관련한 왜곡 자료를 끊임없이 보내면서 학자들의 정신이 쏙 나가게 할 정도로 '자료 폭탄'을 안기는 단체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들이 연판장 사태를 보면서 얼마나 초조했는지 노벨상 수상자에게 직접 항의 메일을 보냈던 것입니다.

이들은 매스킨에게 보낸 메일 시작부터 "당신이 램지어의 위안부 논문을 비판했는데, 우리가 보내는 자료를 보고 최종 입장을 정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하는 4가지 항목을 요약정리해 보냈는데, 이미 미국 학자들의 검증 보고서에서 이 근거 자료의 왜곡 실태가 언급된 것이어서 사실 큰 가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3번 항목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쓴 <반일 종족주의>라는 것이 크게 눈에 띄었습니다. 이들은 이 자료가 "위안부가 일본군에 봉사하는 전통적인 매춘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된 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2019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베스트셀러였다는 점도 강조해놨습니다. 그러면서 파일까지 첨부하면서 83페이지를 보면 위안부 부분을 볼 수 있다는 것까지 친절하게 안내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오직 전쟁에서 진 사람들은 불만을 제기하는 자유조차 없다"며 자신들의 입장을 표현했습니다.

이 이메일은 일본 극우들이 나름 정성껏 준비해서 노벨상 수상자에게 극우 논리의 정수를 보여주겠다며 전달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 핵심에 이영훈 전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램지어 교수도 이영훈 전 교수의 자료를 논문에서 인용해놨지만, 이제 일본 극우들도 자신들 주장의 핵심을 반일 종족주의로 삼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한국 극우와 일본 극우가 자료를 서로 상호 복제하며 얼마나 단단히 연결돼 있는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 몇 년에 걸친 살해 협박…"죽이겠다는 메시지 보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한국인이 깡패 집단이라는 램지어 교수의 말도 안 되는 논문을 발견했을 때 코넷티컷대 역사학과 알렉시스 더든 교수와 인터뷰하면서 말미에 반일 종족주의가 일본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서 가볍게 문답을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일본의 극우와 한국의 극우가 놀랍도록 비슷해지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 넘어갔는데, 인터뷰를 다 마치고 더든 교수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신이 일본 극우 세력에게 당했던 온갖 협박과 괴롭힘에 대해서 뭔가 터지듯이 쏟아냈습니다. 다 처음 듣게 된 얘기라 솔직히 너무 놀랐습니다. 사실 이 문제를 미국 언론들이 기사로 다뤄주지는 않을 거 같아서 되는대로 우리라도 기사로 공론화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화상 인터뷰에서는 말을 안 하고 따로 전화를 한 거 보면 당장 말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것이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논의하다가 질문지를 추려서 먼저 보내줬는데, 결국 본인이 이와 관련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역사 왜곡에 강력한 비판을 보냈던 학자 가운데 한 명인 더든 교수는 일본 극우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매스킨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던 역사적 진실을 위한 세계 연합회는 더든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단체였습니다. 그 단체가 보낸 똑같은 책이 8권이나 있다고 말하면서 웃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사망했지만 이 단체의 대표였던 메라 고이치는 자신이 캘리포니아에서 강연을 할 때 나타나서 "당신이 뭘 모르는 것 같으니 알려주겠다"며 행사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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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넷티컷대 역사학과 알렉시스 더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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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든 교수가 일본 극우의 표적이 된 것은 지난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지금처럼 발달하지도 않았고, 트위터도 없었을 때라 대다수의 항의는 직접 배달되는 우편물과 소포였다고 합니다. 원하지 않는 자료를 끊임없이 보내는 행태로 '내가 너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를 계속 줬습니다. 그러다가 사무실에 직접 협박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어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죽여 버리겠다"고 외치고 끊는 식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더든 교수는 야쿠자들을 연상시켰다고 말해했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항의 메일은 수천 통은 족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열 통이 항의 메일이면 일본 내에서 양심적인 세력들이 자신들이 말하지 못하는 걸 얘기해줘서 고맙다며 보내는 응원하는 메일은 한 통 꼴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극렬한 공격은 2017년 더든 교수가 신문에 아베 총리를 겨냥한 비판 칼럼을 실으면서 폭발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일본 출장을 가기 위해서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환승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메일로 "죽여 버리겠다"는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당장 집에 아이가 베이비시터와 있는 상태라 주저 없이 출장을 취소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들으면서 너무 화가 났던 건 일본 극우들이 더든 교수를 성적 대상으로 만들어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성적 공격은 이어졌고, 급기야 성착취물에 합성해 보내는 수준이 됐습니다. 더든 교수는 이 자료를 모아서 경찰에 신고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까지 확인해줬습니다. 체포된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국제 공조가 필요한 사안이라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자신은 수사를 빨리하라고 압박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학교수로서 살해 협박을 받으면 학교 당국과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총기 문제가 항상 발생하는 미국에서 누군가 총을 들고 학교에 나타날 가능성도 있으니 그 부분이 항상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습니다. 협박이 빗발칠 때는 실제 경찰이 자택 순찰을 돌고 가기도 했다고 담담하게 소개했습니다.

● 극우 세력에 고통받는 학자들…"진짜 희생자는 할머니들"

더든 교수는 자신 말고도 미국에서 이런 일본 극우 세력의 공격을 받는 학자들이 더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일 큰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은 일본에 있는 동료 학자들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 폭탄 설치 협박을 받은 사람도 있고, 자녀 살해 협박을 받은 사례도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극우 세력이 대형 확성기를 단 차를 가지고 집 앞에 가서 무력시위를 하는 경우도 있어, 실제로 일본을 떠난 학자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더든 교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은 실제 희생자가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대학교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자신은 특권층이라며, 대학교수는 공적인 근무를 하는 사람인만큼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든 교수는 진짜 희생자는 '할머니'(더든 교수는 자기는 comfort women이라는 말 안 썼으면 좋겠다며 그냥 할머니로 항상 표현했습니다.)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위안부 피해자들인데 이런 극우세력들이 그들이 겪은 고통을 부인하는 것 자체가 두 번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할머니들에게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협박하고, 모욕을 주고, 성적으로 희롱하는 짓을 했다면 그건 진짜 문제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일본 극우 세력이 학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려 이렇게 야비한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해 더든 교수는 더 담대한 대처를 하고 있었습니다.


김수형 기자(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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