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후보 단일화’ 변수
한표라도 더 얻어야 이기는 선거
중요 고비 때마다 단일화는 숙명
1987년 양김 분열로 민주화 지체
97년 DJP 사전단일화로 정권교체
2011년 안철수 양보로 박원순 당선
야권, 그때처럼 2단계 단일화 과정
협상 테이블 오른 안철수-오세훈
박영선과 양자 대결 성사될까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오세훈, 국민의당 안철수(왼쪽부터) 등 주요 정당의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가 확정됐다. 오세훈-안철수 후보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협상에 곧 착수할 계획이다. 공동취재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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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7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다시 뽑는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전초전이어서 여야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승부다. 대한민국 ‘민심의 풍향계’인 수도 서울에선 더더욱 그렇다. 여당은 수성을, 야당은 수복을 노리고 있다.
선거 한 달을 앞두고 주요 정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 대진표는 확정되지 않았다. 후보 단일화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0년 만의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노리는 야권에 단일화는 가장 큰 숙제다. 단일화의 필요성은 여론조사가 증명하고 있다. <문화방송>(MBC)이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8~9일 서울시 투표권자 8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38.7%,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7.8%,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19.6%였다. 빅3 후보가 모두 출마하는 다자대결 구도에선 민주당의 우세다. 그러나 양자 구도에서 박 후보는 오 후보와의 대결에서 45.3%-36.1%로 우위를 보였지만 안 후보와는 41.9%-41.4%, 박빙이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5%포인트)
가장 최근에 실시된 양자대결 조사에선 안 후보가 41.9%로 박 후보(39.9%)를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기도 했다. <머니투데이>와 <경남매일>, 미래한국연구소가 피엔아르(PNR)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18~19일, 서울시 투표권자 8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박영선-오세훈 대결은 41.5%-31.6%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4%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다자대결에서는 민주당의 낙승이 예상되지만 안철수가 야권의 단일후보로 나서면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승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심판’을 주장하고 있는 야권으로서는 단일화를 해야 하는 명분과 이유가 분명한 상황이다.
1987년 11월 후보 단일화 결렬로 등을 돌린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와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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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살았고 흩어지면 죽었다
대통령이든 서울시장이든 선거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이기기 위해선 상대보다 1표라도 더 긁어모아야 한다. 한국 정치의 중요 선거에서도 후보 단일화는 승부를 가르는 중요 변수였다. 민주화의 출발점이었던 1987년 대선 때부터 후보 단일화가 문제였다. 6월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불세출의 민주화 투사인 김영삼과 김대중 모두 출마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단일화 압박이 가해지고 대권-당권 분리 등 갖가지 제안이 이어졌지만 양김의 불신은 강고했다. 심지어 김대중 진영에서는 ‘4자 필승론’까지 내세우며 승리를 자신했다. 티케이(TK) 출신인 노태우와 피케이(PK) 출신인 김영삼이 영남표를 나눠먹고, 충청표를 김종필이 가져가면 수도권과 호남표만으로 김대중이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최종 득표는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 김종필 8%. 87년의 분열은 민주화의 지체로 이어졌고 선거 전략으로서 후보 단일화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각인시켰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성사된 디제이피(DJP) 연합은 야권의 ‘사전 후보 단일화’ 결과였다. 87년에 이어 92년 대선에서 연패한 김대중은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가 유신 체제의 2인자 김종필과 손을 잡은 것이다. 김대중은 총리 자리와 내각제 개헌 등 권력 분점을 매개로 김종필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고 박태준까지 합류시키면서 디제이티(DJT) 연합으로 확장시켰다. 김영삼이 노태우와 손잡은 1990년 3당 합당에 필적할 만한 ‘신한국당(김영삼) 포위’ 전략이었다. ‘이번엔 쌀 한 톨도 흘리지 않겠다’는 게 당시 야권의 분위기였지만 이에 맞서는 여권은 달랐다. 유력 후보 9인, ‘9룡’이 쟁투했던 후유증이 컸다. 이회창이 후보로 확정됐지만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이인제가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독자 출마했다. 대선 결과는 김대중 40.3%, 이회창 38.7%, 이인제 19.2%.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던 당연한 말이 또다시 입증된 셈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게 한 드라마적 장치였다. 그해 4월 전국 순회 경선을 통해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은 최고 지지율 60%를 찍었지만 인기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와이에스 시계를 차고 김영삼을 만나 민주세력 대통합을 주장했지만 지지층의 반감만 샀고 본인이 전면에 나서서 치른 지방선거·재보선에서 참패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김대중 대통령 아들 비리 등의 악재까지 겹치면서 그해 9월엔 지지율이 14%까지 빠졌다. 이에 반해 정몽준 의원(대한축구협회장)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뒤 치솟은 인기를 발판 삼아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정몽준 후보로의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다자대결로는 이회창과의 승부가 어렵다고 판단한 노무현은 사상 초유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합의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문항도 모두 수용했으나 극적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정몽준은 대선 전날인 12월18일 노무현 지지를 철회했다.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분이 있는데 너무 속도위반하지 마라. ‘대찬 여자’ 추미애도 있고, 제가 흔들릴 때 제 등을 받치던 정동영 고문도 있다”는 노무현의 서울 명동 유세 발언 등이 ‘공동정부’라는 단일화 정신을 위반했다는 정몽준의 항의였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민주·진보 표심의 결집을 불렀고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2002년 11월16일 새벽 서울 국회 귀빈식당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회담 결과를 발표한 뒤 껴안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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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단일화, 실패한 단일화
2011년 서울시장 보선에선 새로운 형태의 단일화가 출현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정책에 반대하며 2011년 8월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주민투표를 강행했으나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자 시장직을 사퇴했다. 그해 10월 서울시장 선거가 치러지게 되면서 집권 4년차인 이명박 정부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야권의 열망이 강했다. 그리고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면서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2009년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컴퓨터 바이러스 퇴치에 앞장선 착한 시이오(CEO)’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는 서울시장 보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0%를 기록하며 강력한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그는 조건 없이 박원순 변호사 지지를 선언했다. ‘안철수 바람’을 탄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박영선 후보)·민주노동당(최규엽 후보)과 통합경선을 치러 야권의 최종 단일후보가 됐다.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 무소속 시민후보 연합이 야당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단일화를 일궈낸 특수한 사례였다. 명실상부한 야권 단일후보였던 박원순은 53.4%를 득표해 여당 후보인 나경원(46.2%)을 상대로 여유 있는 승리를 거뒀다.
물론 후보 단일화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단일화를 통해 일대일 구도가 형성됐다고 해도 그 과정이 아름답지 못하면 효과는 반감된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통합당(민주당)의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모두 이명박 정권 연장과 박근혜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목표의식은 분명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은 제1야당으로서 대선 후보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안철수 쪽은 ‘우리가 박근혜와의 양자대결에서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여론조사 경선 시한을 이틀 앞둔 2012년 11월22일, 문·안 두 사람은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담판을 벌였으나 이런 의견 차이를 전혀 좁히지 못했다. 둘은 논쟁을 벌이다 오히려 감정이 상한 채 담판을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튿날 안 후보는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한다”며 후보직을 내려놨다. 외형은 ‘양보’였지만 원치 않았던 중도 사퇴였다. 마지못한 결과로 완성된 후보 단일화는 야권 지지자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상승효과를 내지 못했고 박근혜 후보는 대선에서 51.6%(문재인 48%)를 얻었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첫 과반 득표였다.
다자대결은 필패…야권의 선택은?
올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10년 전 선거와 비슷한 점이 많다. 대선 1년을 앞두고 갑자기 차려진 선거판인 것도 같고, 야권은 그때처럼 2단계 후보 단일화 작업 중이다. 등장인물도 묘하게 겹친다. 2011년 보궐선거를 촉발했던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지금 제1야당의 후보로 다시 나섰고 제1야당의 후보였던 박영선은 이제 여당 주자다. 기꺼이 후보 자리를 양보했던 안철수는 이번엔 서울시장이 되겠다는 의지가 굳건하다. 지난 1일 금태섭 전 의원과 제3지대 단일화를 마쳤고 4일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오세훈과 최종 단일화를 앞두고 있다. 안철수-오세훈 간 야권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안 후보가 절대 우세다.
오 후보의 열세를 인지하고 있는 국민의힘에서는 안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여론조사 비중을 줄이고 완전개방형 시민참여 경선, 숙의 배심원단, 티브이(TV)토론 평가단 투표 등을 거론하고 있다. 물론 국민의당은 시민참여 경선이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조직선거가 될 수 있다며 여론조사 경선을 주장한다. ‘야권 단일후보는 제1야당인 우리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완강한 태도를 보이면 단일화 협상은 난항을 겪고 2012년 대선 때처럼 후보 단일화가 사실상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 바깥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목표가 ‘선거 승리’로 같고 △이를 위해선 야권 후보 단일화가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국민의힘을 포함한 야권 지지층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선 지지율 1위로 올리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당대표로 받아들일 정도로 이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외부 압박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단일화는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일화를 향한 압박의 실체는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전국선거에서 4연속으로 패배한 야권 지지층의 절박감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이번 선거는 대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야권이 경쟁력을 회복하느냐, 못 하느냐가 본질이고 야권으로서는 이기는 게 절실한 상황”이라며 “단일화 성사가 안 됐을 때 야권이 입을 정치적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인문교양학부)도 “김대중-김종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두 이질적인 세력이 단일화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컸다. 보수의 국민의힘과 중도의 안철수도 마찬가지”라며 “단일화에 실패하고 선거에서 지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 책임이 더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야권의 ‘진짜 단일화’ 협상이 시작되면서 여권도 이를 느긋하게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열린민주당의 김진애 후보는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민주당에 단일화 토론 3회와 선거인단·배심원단 투표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자매정당인 열린민주당과의 자연스러운 단일화를 원했던 민주당에서는 “본선에 쏟을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1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이를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후보 등록 마감일은 오는 19일이다. 각자의 지지층을 총동원해 서울시장 본선에서 승리하려는 여야의 단일화 전쟁이 시작됐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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