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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연봉 높여야?" 베트남 언론 호들갑 왜?

매일경제 홍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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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연봉 높여야?" 베트남 언론 호들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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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129] 최근 베트남 주요 매체에서 박항서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한 보도가 나와 화제입니다. 매체마다 조금씩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박 감독이 베트남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발단은 베트남 매체 몇 곳에서 박 감독과 대한축구협회(KFA) 간 논의가 있었다고 보도한 것이었습니다. 약 2주 전에 KFA와 박 감독 간 접촉이 있었고 박 감독은 이에 대해 아직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베트남 언론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수의 K리그 팀이 박 감독에게 관심이 있다고 베트남 언론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박 감독을 한국에 뺏길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베트남축구협회(VFF)는 "올해 박 감독의 업무량은 많고 베트남 축구팀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우리는 계약 종료 3개월 전에 박 감독과 함께 앉아 계약 연장 여부를 협상할 것이다. 우리는 박 감독이 계약 연장에 동의할 것이라고 매우 확신한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박 감독은 2019년 11월 VFF와 3년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2+1체제'로 계약을 맺었고(VFF 측이 3년을 요구했지만 박 감독 매니지먼트를 맡은 DJ매니지먼트 측이 2년 계약을 염두에 둬 양측 합의에 따른 것입니다) 2년 계약이 마무리되는 시점은 내년 1월입니다. 따라서 올해 말에 박 감독과 VFF 측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됩니다.

연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박 감독이 매월 약 5만달러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트남 몇몇 매체는 당초 비밀이었던 월급 추정치까지 공개하며 "한국에서 이 월급으로 박 감독을 데려갈 곳이 많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올해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은 역사적 이정표에 서 있습니다. 가장 큰 이벤트는 과연 베트남이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지, 혹은 월드컵 최종 예선이라도 첫 진출을 할 수 있을지입니다. 베트남은 현재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G조 1위에 올라 있습니다. 3승2무를 기록 중인데 남은 3경기에서 승점 5점 이상을 얻으면 자력으로 최종 예선 티켓을 따냅니다. 여기서 치열한 경쟁에 승리해야 카타르행 비행기표를 예약할 수 있지만 베트남 입장에서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 짓는 것만으로도 큰 경사가 될게 분명합니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정이 많이 꼬였지만 대략적인 스케줄은 잡힌 상황입니다. 인도네시아(6월 7일), 말레이시아(6월 11일), 아랍에미리트(6월 15일)와 맞붙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치러질지는 다음달 15일에 아시아축구연맹(AFC)이 발표할 예정입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축구 패권을 놓고 베트남과 수십 년째 경쟁하는 나라이고, 아랍에미리트는 한국조차도 쉬운 상대로 여기는 팀이 아닙니다. 베트남이 지금까지 깜짝 성적을 거두며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남은 3경기에서 승점 5점을 따내는 게 만만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런 분위기를 알기에 응우옌응옥티엔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VFF를 방문해 박 감독에게 새해 인사를 건네는 등 박 감독 사기 올리기에 나선 상황입니다. 응우옌쑤언푹 총리도 박 감독의 격리 기간에 설 선물을 보내는 등 박 감독 거취에 베트남이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박 감독이 계약 중간에 베트남을 떠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는 최근 베트남넷과 인터뷰를 통해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은) 나만의 목표가 아니다. 모든 선수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월드컵 최종 예선 참가 자격을 얻어 베트남 역사에 남겠다"고 말하는 등 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박 감독과 베트남이 일군 성과는 어마어마합니다. 굵직한 것만 꼽아봐도 2018 AFC U-23 준우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위,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 2019 AFC 아시안컵 8강, 2019 동남아시안게임 우승이 떠오릅니다. 베트남을 세계랭킹 100위 안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2020년 8월 박 감독에게 2급 노동훈장을 수여하며 공을 기렸죠.

게다가 올해 10월부터는 2022 AFC U-23 예선이 열리고 AFF 스즈키컵은 일정이 밀려 내년 초에 개최될 예정입니다. 베트남은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합니다. 올해 열리는 동남아시안게임에도 베트남은 챔피언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처지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보다 내 것을 지키는 게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의 역대급 선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지켜야 할 게 많아진 베트남입니다. 한껏 높아진 기대 수준을 충족하려면 사실상 우승밖에는 답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을 떠받들어주는 만큼 실패에도 가혹하게 대합니다. 이미 지난해 코로나19가 발발했을 때 베트남 몇몇 매체들이 "박 감독은 왜 연봉 삭감을 하지 않느냐"는 뉘앙스의 기사를 올려 논란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사실 2019년 재계약 시점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과 재계약하지 말고 정상에서 물러나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당시 박 감독은 '내 축구 인생은 베트남에서 끝난다고 보면 된다'며 과감하게 재계약을 결행했죠. 당시 박 감독은 "처음 베트남에 갈 때는 1년만 버티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1년을 버티니까 계약 기간을 채우자는 욕심이 들었고 또 성과를 거뒀다. 지난 것은 추억이고, 새로운 도전 과제가 남아 있다. 그것이 감독의 인생"이라고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 감독은 "(한국 축구국가대표 감독직 제안이) 오지도 않겠지만 전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한국에는 나보다 젊고 유능한 지도자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베트남과 재계약을 맺었다"고 얘기하기도 했죠. 하지만 베트남 언론은 KFA와 박 감독이 의견을 조율한 것만으로도 '앗 뜨거라' 놀라고 있으니 새삼 박 감독의 위상이 도드라집니다.

박 감독은 '축구 철학은 어떤 것인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깊은 축구 철학이 있었다면 한국 3부 리그 팀을 맡다가 베트남에 갔겠는가"라고 답할 정도로 겸손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가식도 없고 자신을 치장하지도 않죠. 베트남이 없었다면 '페이드 아웃'되며 지도자 생활을 끝낼 기로에 서 있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대박을 치며 한 나라의 '국민 영웅'이 되었습니다. 올해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과 박 감독이 일궈낼 새로운 성과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또 한번 하노이, 호찌민 시내에 초대형 박 감독 얼굴 사진과 태극기가 휘날릴 수 있을까요.

[하노이 드리머(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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