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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자정작용 필요" vs "마녀사냥 우려" 체육계 '학폭미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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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학폭 미투' 확산 움직임

학창시절 피해 사실 인터넷 통해 뒤늦게 폭로

학폭 피해 초중고교 선수 79.6%, 피해 사실 숨겨

전문가 "체육계 내부 문제 임계점 지나"

"이번 사태 기회 삼아 쇄신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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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경기에 출전한 프로 배구선수 이재영·다영(25·흥국생명) 쌍둥이 자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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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체육계에서 잇따라 이른바 '학교폭력(학폭) 미투'가 나오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학창시절 선배나 관계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해도 이를 마땅히 신고할 수 없었던 피해자들이 뒤늦게 행동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학폭 미투가 국내 체육계 인권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한편으로는 자칫 근거 없는 '마녀사냥'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전문가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육계 내부에서 피해 신고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 지난 10일 한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프로 배구선수 이재영·다영(25·흥국생명) 쌍둥이 자매의 과거 학폭 사실을 폭로하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학폭 미투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폭로 이후 쌍둥이 자매의 학폭 관련 추가 폭로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이어졌고, 논란이 커진 가운데 흥국생명과 대한민국배구협회는 15일 이들 자매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했다.


학폭 미투는 여자 프로배구계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3일 남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 소속 송명근(28)과 심경섭(30)에 대해서도 과거 학폭을 폭로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OK금융그룹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구단 소속 선수가 학교폭력과 관련되어 팬 여러분들께 실망시켜드린 점 진심으로 사죄 말씀 드린다"라며 "피해자와 직접 만나 재차 사과하려고 했으나 현재 연락이 닿지 않아 문자메시지로 사죄의 마음을 전한 상황"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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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학폭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시인한 심경섭(왼쪽)과 송명근.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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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폭 미투가 배구계를 넘어 체육계 전체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초·중·고등학교 선수 시절 학폭 피해를 입어도 보복이 두려워 이를 알릴 수 없었던 피해자들이 인터넷의 익명성을 빌려 뒤늦게 고발에 나서고 있는 만큼 제2의 쌍둥이 자매가 언제 어디서 또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중·고교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권 실태 조사에 따르면, 코치나 선배로부터 신체·언어 등 폭력을 당한 학생 가운데 79.6%는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거나 신고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보복이 두려워서'(24.5%), '대처 방법을 몰라서'(13%)인 경우를 꼽았다. 학폭을 당하더라도 신고 방법이 마땅치 않다보니, 뒤늦게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폭로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시민들은 학폭 미투가 선수들의 인권 보호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A(29) 씨는 "예전 미투 운동 때도 사회 각계에서 '알아서 조심하자'는 취지로 자정 움직임이 있지 않았나. 학폭 미투도 체육계의 잘못된 부분을 쇄신하는 작용이 있을 거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대학생 B(26) 씨는 "위계질서가 너무 강하고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외부에서 고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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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체육계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 보호 등 신고 관련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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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학폭 미투 움직임이 오히려 일부 선수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장인 C 씨는 "학교폭력이 중대한 문제인 이상 징계, 심하면 형사 처벌도 받을 수 있는데 인터넷에 익명의 누리꾼이 폭로글을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며 "만약에라도 선수에게 악의를 품은 사람이 마녀사냥을 시도하는 경우는 어떡하나"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는 체육계 내에 내부 고발자 보호 등 피해 사실을 안전하게 알릴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6일 '연합뉴스TV'와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이 발고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며 "제도의 미비점 때문에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면 오히려 덮어버리면서 지금까지 발고가 잘 안 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발고(피해자나 고소권자가 아닌 제삼자가 수사 기관에 범죄 사실을 신고하여 수사 및 범인의 기소를 요구하는 일) 를 한 피해자에게 보복 폭행 같은 게 있으면 피해자의 안전을 도모할 수도 없다"며 "피해를 발고해 봤자 얻는 이득이나 실효가 없다보니 이런 문제들이 누적돼 있었던 것"이라고 관련 제도 수립을 촉구했다.


전문가는 마녀사냥을 우려하면서도 직접 폭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게 체육계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체육계 내부에서 곪아 있던 문제들이 임계점을 지나 폭발하는 국면으로 본다. 그동안 체육계에 많은 폭력 사태가 있었지만, 조치가 미흡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직접 폭로라는 강경책을 들고나오는 상황이 된 것"이라며 "물론 익명성을 빌려 하는 폭로인 만큼 마녀사냥 등 부작용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모든 해결책에는 명과 어둠이 있다고 봐야 한다. 체육계는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아 자정 및 쇄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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