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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취재파일 : 특파원이 전하는 월드리포트
하버드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 논문의 초안
위안부 피해자 역사 왜곡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램지어 교수는 UCLA, 시카고 법대, 하버드 법대를 거치며 수많은 학술 서적을 남겼습니다.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석사를 일본학, 박사를 법학으로 공부한 인물이어서 학문적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버드 교수 홈페이지에 보면 실적이 쭉 나와 있는데, 실제 상당히 많은 연구를 수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해 다른 연구가 있었나 찾아보다 2019년도에 제목이 <Comfort women and Professors>라는 논문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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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하버드 법대에서 낸 논문인데, 국제표준 간행물 번호가 매겨져 있었지만, 토론자료(Discussion Paper)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다소 생소한 개념이어서 하버드 대학 관계자는 물론 학계 전문가들에게 확인해봤는데, 이 논문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논문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의 초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Discussion paper도 논문으로 간주하기는 합니다. 다른 연구자들도 이걸 자신의 논문에 인용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하버드 홈페이지에서 파일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두 논문의 내용이 상당수 겹치는데, 이 토론 자료라고 이름 붙여진 초안을 기준으로 램지어 교수가 내용을 추려서 지금 문제의 논문을 출간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램지어 교수가 어떤 생각으로 논문을 냈는지 그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같은 저널리스트는 물론 학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강제 동원은 없었다"는 램지어 교수
제일 첫 장에 나오는 초록(Abstract)부터 도발적입니다. 서양 세계가 이상한 이야기(narrative)에 사로잡혀 있다며, 그것은 일본군이 20만 명의 한국의 소녀들을 강제로 끌어가 위안소라고 불리는 성폭행 수용소(Rape Camps) 넣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느 사람이라도 이 얘기에 의문을 제기하면 부정하는 사람(denier)이 된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사실 누구도 한국 여성이 위안소에 강제 동원됐다는 문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강조했습니다. (In fact, no one has ever located any documentary evidence that the Japanese military forcibly recruited any Korean woman into a comfort station) 이 얘기에 의문을 제기한 교수들은 6개월씩 감옥에 갔다고 한국 정부를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결론은 자신을 금기에 도전하는 학자처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성노예 담론(sex slave narrative)은 트라이 펙터(세 가지 경제 지표가 부진하게 나타나는 걸 의미하는 경제학 용어)를 불러오는데, 그건 성차별주의(sexism), 인종차별주의(racism), 제국주의(imperialism)를 한데 묶은 것이라고 기술했습니다. 성노예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는 화를 입는 걸 각오해야 한다는 뜻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성노예 서술은 그야말로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은 믿기 어렵고, 문서 증거가 없고, 확인되지 않은 구두 설명에 근거하고 있고, 그 진술도 금전적, 정치적 이해관계로 변질됐으며, 극좌파 단체들에 의해 추동됐으며, 이 설명이 아니라고 하는 교수들을 검사들이 기소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고 글을 맺습니다. (본문에는 이영훈, 박유하, 윤소영 교수 등이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며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결론을 내리기 위해 하나하나 소주제를 잡아 위안부 성노예설이 터무니없다고 주장하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부 진술을 추적하며 말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전체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사처럼 결론을 내립니다. 또 문서기록도 조작된 거 말고는 없어서 근거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일본과 한국 매춘부들의 역사적인 연원과 활동 등을 통계를 제시하면서 군대를 따라다니는 매춘부들이 항상 많았기 때문에 일본군은 더 이상 강제로 동원한 매춘부들이 필요 없었다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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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제 하에 매춘부들과 포주들의 계약 문제를 꺼내 듭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논문이 게임 이론에 근거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고 매춘부가 됐다는 주장을 해 문제가 됐는데, 이렇게 경제학으로 포장된 주장에는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게 전제로 깔려 있었던 겁니다. 학술지에는 그 주장을 노골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확인한 논문 초안에는 램지어 교수의 생각의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히 나와 있었습니다.
들끓는 미국 학계…"램지어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얼마 전 하버드 법대 석지영 교수와 인터뷰를 할 때 석 교수는 강압적인 상태에서 맺은 계약은 노예 계약이라며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는 결국 일제의 강압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거 같은데, 수많은 역사적 증거를 보면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석 교수가 짐작한 대로 결국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부라는 주장을 꺼낸 목적은 일제의 강제 동원이 없었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라는 게 확인된 셈입니다.
일본사와 한국사를 전공한 코네티컷 대학교 역사학과 더든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완전히 틀렸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인 희생자들이 위안소로 납치돼 끌려갔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며, 일본 정부가 승인하지 않았다면 14살, 15살 소녀가 어떻게 부산에서 동남아시아로 이동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당시 이동을 위해서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데 정부 개입이 없이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 소녀들이 자발적으로 간다는 것이 가능하냐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램지어 교수는 위안소가 설치된 역사적 현장에 가봤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만을 특정해 일본과 한국의 대결 구도로만 논문을 설명하고 있지만, 일본이 침략한 아시아 국가들에 존재하는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빼고 말하는 것에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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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든 교수는 이런 식의 주장은 일본 내부의 정치적 동기에서 나왔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인을 미워하지 않으면 진정한 일본인이 아니라는 극우 진영의 논리를 그대로 학습해 그걸 학술 논문으로 포장해 전파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노예 담론을 매도하며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더든 교수는 오직 강자만이 고통 받은 사람들을 착취하며 그걸 왜곡할 수 있다고 쐐기를 박았습니다.
더든 교수는 또 자연과학에서 연구 논문을 내고 실험으로 재연되지 않으면 그것은 연구 사기로 판정받는다는 점도 상기시켰습니다. 이 논문이 사회 과학 영역의 논문이기는 하지만 같은 원칙에 따라 근거가 없다면 그건 사실이 아닌 논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은 연구 사기의 또 하나의 예라며 정말 끔찍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영 김 의원 "램지어의 주장은 역겨워…교과서에 피해자 역사 넣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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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계 연방 하원 의원인 영 김 의원이 정치권에서는 가장 먼저 반응을 내놨습니다. 트위터에 램지어 교수의 사과를 요구하며, 그의 주장이 역겹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트위터를 올린 다음 날 화상 인터뷰를 했는데, 영 김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발언이어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한국계이거나 여성이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인권이라는 이슈이기 때문에 말을 꺼낸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영 김 의원은 이미 2007년 위안부 결의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에드 로이스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한 바 있어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 김 의원은 자신이 주 의원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6년 캘리포니아 공립 고등학교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역사를 기술하도록 한 교육안이 통과됐던 걸 자세히 설명해줬습니다. 자신은 비극적인 역사를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공화당 지도부와도 논의해서 연방 의회에서도 공론화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강제 동원까지 부정하는 램지어…음모론 신봉자 큐어넌과 무엇이 다른가
트럼프 시대를 취재하면서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느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사실이 분명한 팩트 대신 음모론으로 포장된 가짜 팩트에 속아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사실처럼 믿었다는 겁니다. 코로나 자체는 거짓말(hoax)이었고, 사망자도 의사들이 돈을 받으려 부풀렸던 것이며, 말라리아 약만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큐어넌(음모론자)들의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수많은 미국인들이 믿었습니다. 이 결정판은 대선 결과 부정입니다. 이미 확정된 결과조차 수많은 부정과 음모로 분칠 된 거짓말로 큐어넌은 사람들을 호도했고, 이에 현혹된 트럼프 지지자들은 지금도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선거 부정을 확정하려는 의원들을 응징하기 위해 의회에서 폭동까지 일으켰고, 그 사건으로 사람이 죽는 일이 벌어진 게 불과 얼마 전 미국 상황입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만나보면 음모론을 얘기하면서 때로는 영상을, 때로는 증언을, 때로는 통계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제가 듣기에는 모두 조작된 것이었지만 큐어넌 신봉자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믿고 싶은 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램지어 교수는 자신의 법경제학 지식을 이용해서 그동안 제시된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증거를 부정했습니다.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 측이 제시한 근거를 주요 논리로 삼아 약자의 용기 낸 증언을 부정했고, 이미 국제기구와 일본 정부조차 인정한 강제동원 사실조차 무력화했습니다. 자신의 음모론적 주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이슈화가 쉬운 한국만 대상으로 삼아 표적 논문을 써놨습니다. 이 논문의 논리대로라면 일제가 야만적인 힘으로 상대 국가의 주권을 짓밟은 역사적인 사실조차 문제 삼기 어렵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9.11과 미국 대선을 부정하는 큐어넌의 음모론적 사고방식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수형 기자(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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