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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입법 공백' 국회 방치에도...대법, 낙태죄 폐지 후 첫 무죄 판결 "낙태수술 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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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일러스트=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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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수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에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첫 판결이 나왔다. 낙태죄 효력 상실 이후 나온 첫 대법 판결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1월 28일 업무상촉탁낙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부인과 의사 A씨에게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13년 9월쯤 미혼 여성 B씨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성관계 후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수면제와 술, 다이어트 약물 등을 복용했다. 임신 사실을 인지한 이후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낙태를 결심하게 됐다.

B씨의 남자친구는 인터넷에서 낙태수술을 알아보던 중 낙태수술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소개해주는 브로커를 알게 됐다. 브로커는 A씨의 산부인과를 소개했고 "당일 즉시 수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B씨는 브로커가 소개해준 A씨의 산부인과로 찾아가 낙태수술을 위탁했다. 당시 B씨는 임신 5주차였다.

A씨는 B씨의 사정을 듣고 "사실 낙태가 불법이라 수술이 불가하나 다음에 아이가 생기면 꼭 낳으라"고 말하며 수술을 승낙했다. A씨는 상담, 간단한 초음파, 소변검사 등을 마치고 바로 B씨를 수술실로 안내해 마취 후 낙태수술을 했다. 이후 A씨는 업무상촉탁낙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한 선고를 유예했다. 원칙대로라면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는 게 맞지만 사정을 고려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아무런 전과가 없는 점, 임부의 요구에 의하여 이 사건 낙태 시술이 시행된 점, 이 사건 임부의 건강상태가 다소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피고인이 비록 이 사건 시술이 위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앞으로 의사의 본분에 충실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도 등의 사정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A씨와 검찰 양측 모두 항소장을 제출했다. A씨는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이유로, 검찰은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에 대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기 때문에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은 이유 없다"라면서 "검찰 측의 양형조건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고 이 사건 기록과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조건을 종합해 보면 원심의 형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음으로 검사의 주장도 이유 없다"고 했다.

A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에서 이 사건을 심리하는 동안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에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조항을 개정해야 했다. 그러나 기한 내 법 개정이 무산되면서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을 규정한 형법 조항이 2020년 12월 31일 자정을 기준으로 효력을 잃게 됐다. 하지만 법 개정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낙태가 ‘무법 지대’에 놓였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법원은 중대성을 고려해 이 사건을 직접 재판하기로 하고, 원심을 모두 파기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법 조항의 효력이 상실된 점을 고려해 "이 사건 헌법불합치결정에 의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선언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소급해 그 효력을 상실했다"며 "그러므로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했다.

강현수 기자(jia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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