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구체안 나오면 의견 낼 수도
국고채 단순매입 가능성은 열어둬
(한국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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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법 제75조(대정부 여신 등)
① 한국은행은 정부에 대하여 당좌대출 또는 그 밖의 형식의 여신을 할 수 있으며,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있다.② 제1항에 따른 여신과 직접 인수한 국채의 총액은 금융기관과 일반에 대하여 정부가 부담하는 모든 채무를 합하여 국회가 의결한 기채(起債) 한도를 초과할 수 없다.
③ 제1항에 따른 여신에 대한 이율이나 그 밖의 조건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다.
4차 재난지원금이 한국은행법 제75조를 소환하고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재원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담을 덜고자 한국은행이 국채를 직접 매입(직매입·인수)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내외적으로 중앙은행이 국채를 직접 매입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데다, 한은법 75조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도 만만치 않다.
◇ 민병덕 입법발의 이어 최배근 무이자로 직접 매입 주장 vs 한은 유보적 = 논란의 시작은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대표발의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안’ 부터다. 법안을 보면 ‘국가는 손실보상금 및 위로금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발행한 국채는 한국은행이 매입하며, 매입 금액은 정부 이관 후 소상공인 및 국민에게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그간 한은이 유통시장에서 국고채를 매입(단순매입)해 오던 방식과는 다른 발행시장에서 직접 국고채를 인수하는 방식을 규정한 것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최근 유튜브채널 ‘최배근TV’에서 “한은 발권력은 조세권을 바탕으로 하며 주인은 국민”이라며 “한은은 국채를 무이자로 직접 인수하라”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민생이 안정돼야 재정도 안정된다. 가계가 붕괴되면 재정도 붕괴된다. 없는 법도 만들어야 하는데 한은법에 (이미) 있다. 중앙은행 태동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한은 내에서는 한은법 제75조가 없어져야할 조항이라는 인식이 많다. 미 연준(Fed) 등 주요국에서 인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정부 여신을 허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인도, 필리핀 등 일부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인도와 필리핀은 대정부 여신 만기를 3개월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 ‘법으로 본 한국은행’이란 책을 낸 차현진 한은 연구조정역도 책에서 ‘이 조항은 한국은행법의 후진성을 상징하며, 가까운 장래에 삭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썼다.
한은이 양곡증권이나 재정증권 미발행 잔액을 인수해왔던 전례도 1998년 이후 사라진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차 연구조정역은 “1997년 이전에는 (직매입이) 굉장히 많았다. 양곡증권 등은 다 사줬다. 대한민국 채권시장이 이래선 안된다는 반성하에 당시 재정경제원 임종룡 증권제도 과장(후일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의기투합해 1997년 12월 정부보증채 7조5000억원을 사주는 것을 끝으로 직접 인수를 그만하자는 컨센서스를 이룬 실무 담당자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은 공식입장은 일단 유보적이나 속내는 부정적 기류가 강해 보인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개별 법안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며 “개별법안에 대해 평가하거나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여당에서도 개별법안에 대해 당론이 아니라고 얘기한 바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한은 국정감사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주요국 중앙은행의 경우를 보면 국채매입은 유통시장 매입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발행시장에서의 매입이라든가 또 직접 인수는 대부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직접 인수를 하거나 발행시장을 통해서 대량으로 매입하게 되면 그것은 재정확충 여력이 부족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정부부채의 화폐화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은행, 통계청) |
◇ 히틀러시대 연상·가격발견 기능 잃어, 차라리 통안채 발행 중단을 vs 돈 유통속도 낮아 하이퍼인플레 우려 없고, 시장기능 잃어 = 국고채 직매입을 꺼리는 이유로는 전례가 없다는 점 외에도 세 가지 요인을 꼽는다. 우선, 독일 히틀러시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유발했던 원인이라는 점과 자원배분에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균형금리를 발견하는 기능을 잃을 수 있다고 봤다.
차현진 연구조정역은 “한은이 적극적으로 돈을 풀라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웃음거리”라며 “전세계가 직접 인수하지 않는 것은 히틀러시대 나쁜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유통시장에서 경쟁입찰로 매입해왔던 것은 리스크프리(무위험)한 정부가 돈을 꾼다면 자원배분에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균형금리, 즉 시장 청산가격을 발견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며 “인수를 해버리면 중앙은행 스스로 가격발견기능을 없애는 것, 경제의 온도계를 스스로 부러뜨리는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시장 유동성 조절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한은 입장에서 풀린 유동성을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을 발행해 다시 흡수할 경우 충분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아가 직매입보단 통안채 발행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차 연구조정역은 “예를 들어 한은이 국채를 10조원어치를 사더라도 (유동성조절을 위해) 통안채를 10조원 발행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며 “국채를 사주는 것보다 통안채 발행을 둔화시키거나, 통안채 발행을 중단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그 효과를 낼 수 있다. 통안채 발행이 줄면 공급 진공상태가 발생해 국채 발행 환경은 더 좋아진다. 더 세련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최배근 교수는 “화폐유통속도가 0.6으로 일본(0.5)을 쫓아가고 있다. 외환위기 후부터 1 밑으로 떨어졌다. 통화승수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0.9배에서 작년 11월 14.4배로 절반이하로 떨어졌다. 지난해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상황에서 히틀러시대 하이퍼인플레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금융위기 이후 연준도 20년 30년짜리 MBS(주택저당증권)를 매입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제로금리까지 떨어뜨렸는데도 불구하고 장기금리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2000년 이후 장단기금리가 역전되기도 하는 등 시장기능이 작동 안된건 오래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이투데이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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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매입쪽으로 가닥 잡나 = 직매입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입법발의에 나섰던 민병덕 의원도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민 의원은 “국채를 발행해 민간시장에 팔면 민간의 돈을 국가가 쓰는 것이라 시장 전체 통화량은 그대로다”면서도 “한은이 국채를 발행시장에서 직접매입하든 유통시장에서 매입하든 그만큼 통화량이 많아져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채권시장과 한은은 단순매입 쪽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채권연구원은 “정부의 재정적자를 중앙은행이 인수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부채의 화폐화 문제가 있어 (직매입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시장 왜곡 문제도 있다”며 “유통시장에서 해도 별문제가 없어 단순매입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봤다.
앞선 한은 고위관계자는 “인수를 포함한 국채매입에 대한 기존 입장과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향후 논의과정에서 여당이나 정부에서 안들이 나오고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면 필요시 한은 의견이나 입장을 낼 예정이다”고 전했다.
한은은 지난해말 올해 연간 통화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단순매입과 관련해 ‘장기시장금리의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매입하고, 필요시 매입 시기 및 규모 등을 사전에 공표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한은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1조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했다. 특히 작년 9월초에는 사상 처음으로 연말까지 5조원 내외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매월말 실시키로 하겠다는 방침을 사전에 공고하기도 했다. 한은이 현재 단순매입으로 보유중인 국고채 규모는 24조82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이투데이/김남현 기자(kimnh21c@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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