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예산안 편성에만 3~4주 소요, 불가능한 일정"
文 대통령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기준제시
국회 보고서 "재정으로 선거운동은 범죄행위" 지적
더불어민주당이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을 이달 중 국회에 제출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물리적으로 힘든 일정"이라는 분위기다. 4월 재보궐선거 이전에 지급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3월 중순쯤에는 추경안 통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여당측 계산이지만 지원규모, 대상, 방식, 지자체 협조 등의 검토가 필요한 만큼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8일 기획재정부 간부회의에서 "피해가 심해지는 계층에 대한 추가 지원, 사각지대에 대한 보강 지원 등을 점검하고 검토하라"고 지시했지만, 검토 내용이 추경 편성 등으로 이어지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는 게 기재부 실무진의 이야기다.
여당이 구상하고 있는 ‘3월 추경안 국회 통과→3월 말~4월 지원금 지급’을 위해서는 지금쯤은 추경안 편성에 대한 대략적인 구상이 확정돼야 하지만, 아직까지 ‘선별지원’과 ‘보편지원’ 사이에서 접점을 못찾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작년 추경을 준비할 때, 보통 3~4주의 시간이 걸렸다. 설연휴 기간을 빼면 약 2주정도 시간에 수십조원의 자원이 투입되는 정책을 편성하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오른쪽 두번째)와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왼쪽 두번째) 등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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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대표 등 與 2월 중 추경 확정 압박에도 당정협의 잇따라 취소
이번 사태는 지난 2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늦지 않게, 충분한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토록 하겠다"며 보편·선별 지원 투트랙 전략을 발표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대표 연설 3시간 만에 "전 국민 보편 지원과 선별 지원을 한꺼번에 모두 하겠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당정의 불협화음은 당정 협의에서도 표출되고 있다. 지난 7일 고위 당정청 회의가 취소된 데 이어, 이날 오전 예정됐던 비공개 당정 협의마저 취소됐다. 이 자리에는 홍 부총리가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여당이)4차 추경을 강행하면서 내부적으로 부담감이 있었고 불필요한 논의를 자제하자는 목소리들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정당국인 기재부 입장에서는 신중하고 재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실제 민주당이 자영업자와 고용 취약계층 등에 대한 선별지원과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동시에 시행할 경우, 총 소요재정 규모는 25조 원 안팎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지급 중인 3차 재난지원금이 선별지원으로 9조3000억 원가량이고, 전 국민 대상으로 지원금이 지급됐던 1차 재난지원금이 14조 원 규모였기 때문이다. 만약 4차 지원금 지급을 위해 적자국채를 10조원 발행할 경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은 47.8%로 올라가게 된다.
추경 편성 작업이 본격화하면 선별지급이든, 보편지급이든 4월 보궐선거 전에 지급이 될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이미 홍 부총리는 "2월 검토는 어렵고 상황을 봐서 3월에나 검토를 시작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재보궐 선거 전에 4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돼야 한다는 야당측 계산과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급대상과 규모를 대폭 줄일 경우, 정책 난이도에 따라 편성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4월초 지급이 중요하다면 지급 대상을 대폭 줄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여당이 수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위기 극복방안을 강구하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지시하면서,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라는 조건을 제시한 것은 홍 부총리 등 재정당국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재정으로 선거운동은 중대 범죄행위"... 경제계·학계 "선별지원이 효과적"
이러한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이 "전형적인 인기엽합적 지출", "효과가 검증되지 않는 지출"이라는 정부 보고서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사무처 연구용역으로 작성된 ‘국가채무 급증에 따른 재정지출구조조정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재정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건 민심의 왜곡을 초래하고 민주주의 기반을 허무는 중대 범죄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는 4월 보궐선거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정의 정치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보고서는 "재난지원금의 논리는 간단하게 생각하면 국민의 소득에서 세금을 걷어 다시 나눠주면 소비가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라며 "전달체계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으로 오히려 경제가 침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효과에 비해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과 IMF 등 국책은행과 글로벌 경제기관에서도 전 국민 지원보다는 선별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15일 1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동결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의견을 전제로 "4차 재난지원금은 선별적 지원이 적절하다고 본다. (선별적 지원이) 효과도 높고 경기회복 속도도 빨라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IMF도 ‘2021년 IMF 연례협의 결과’ 브리핑에서 "선별적 지원이 소비 진작, 성장 도모에 효과가 크고 재정건전성 확보 측면에서 유용하다"고 제언한 바 있다.
학계에서도 재정건전성을 담보하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라는 비상시기인 만큼,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재난지원금은 상황이 악화된 사람들에게만 지급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성우 기자(foxps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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